장면 하나,
저녁이었다.
컴을 하고 있는데 딸이 내 방으로 건너왔다.
"누구세요?"
정색을 하며 내가 묻는다.
"이웃집 사람이에요."
딸이 능청스레 대답한다.
"이웃집 사람이 노크도 없이 남의 방에 막 들어와도 돼요?"
내가 따진다.
"제가 보이세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대꾸한다.
저녁이었다.
컴을 하고 있는데 딸이 내 방으로 건너왔다.
"누구세요?"
정색을 하며 내가 묻는다.
"이웃집 사람이에요."
딸이 능청스레 대답한다.
"이웃집 사람이 노크도 없이 남의 방에 막 들어와도 돼요?"
내가 따진다.
"제가 보이세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대꾸한다.
장면 둘,
주방에 있던 딸이 내게 와서 그런다.
"아빠, 밥통이 이상해요?"
내가 대답한다.
"뭐가?
이어지는 딸의 말.
"고장이 난 것 같아요."
어제는 프린터가 이상하다고 하더니 오늘은 밥통이란다.
딸이야말로 밥통인가 보다. 뭐든 손만 대면 작동을 안 하거나 이상해진다.
내가 만지면 금방 괜찮아진다. 뭐, 만진 것도 없다. 그냥 보통대로 스위치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서 모니터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場을 주시하는 내 어깨에 손을 걸친다.
내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손 치워라!"
"왜요?"
내가 마저 말한다.
"네가 손대는 것은 다 고장(?)이 나니 아빠도 고장 날라."
둘이 마주 보며 박장대소한다.
주방에 있던 딸이 내게 와서 그런다.
"아빠, 밥통이 이상해요?"
내가 대답한다.
"뭐가?
이어지는 딸의 말.
"고장이 난 것 같아요."
어제는 프린터가 이상하다고 하더니 오늘은 밥통이란다.
딸이야말로 밥통인가 보다. 뭐든 손만 대면 작동을 안 하거나 이상해진다.
내가 만지면 금방 괜찮아진다. 뭐, 만진 것도 없다. 그냥 보통대로 스위치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서 모니터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場을 주시하는 내 어깨에 손을 걸친다.
내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손 치워라!"
"왜요?"
내가 마저 말한다.
"네가 손대는 것은 다 고장(?)이 나니 아빠도 고장 날라."
둘이 마주 보며 박장대소한다.
장면 셋,
늦잠.
딸이 늦잠을 잤다.
매일 늦잠을 잔다.
늦잠 정도가 아니고 일어난 시각이 정오경이었다.
그것도 오늘 하루뿐이 아니다. 새해 들어서 거의 매일 이다.
몇 번씩 깨우지만, 무지막지하게 야단을 하진 않는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란 태도다. 그게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는 나는 무지렁이다.
딸이 내게 "자기관리를 못 하고 밤에 아무 때고 무얼 먹는다.'라고 타박하던 것이 작년이었다.
아침에 도서실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곤, 저녁엔 꼭 동네를 큰 걸음으로 걸으며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던 작년 이야기이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계획을 세운다던데 아빠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올해는 반대로 '자기관리가 아닌 자기 파괴를 목표'로 세웠나 보다.
20대 때, 밤을 낮 삼은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고, 이제야 늦잠도 자고 하는 것을 보며, 성장의 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은 생각에 부지불식 간에 인정하는 꼴이다. 지독한 음치인 아빠가 자장가 불러주며 재워주던 딸이다. 요즈음엔 아빠가 컴을 하며 어쩌다 흥얼거리면 노래도 못하며 시끄럽다고 일부러 와서 아빠 방에 문을 닫고 간다. 그럴 적에 딸에게 그런다.
"주워온 아빠,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라고.
가끔, 아빠라 하지 말고 이웃집 아저씨라 부르라고 하는 때가 있다.
내가 쫌 삐쳤을 때이다. 아빠보고 삐돌이란다. 천연덕스럽게 "아저씨! 라고 부른다.
지난번 마트에 갔을 때 또 그랬다.
이번에도 서슴없이 팔짱을 끼며 아저씨라고 부르기에 누가 보면 "원조교제 하는 줄 알겠다."라고 그랬다. 그러곤 딸과 낄낄거렸다.
어느 시대이고 아버지란 신분이 쉽지 않았겠지만, 아버지 역할 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 아이와 의견 충돌 등으로 아빠인 나도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땐, 아이들이 태어나서, 또는 어렸을 때 재롱을 피우며 기쁨을 주던 때를 생각한다.
어쩔 땐, 아들에게도 그런다.
네가 어렸을 땐 아빠 앞에서 요렇게 했는데 하면서 시범을 보여 준다.
좋았던 장면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응석(?)을 부려 본다. 아깝다. 잘 찍고, 잘 나온 사진이 많았는데 사진이 좀 남아있으면 여러 장 올릴 텐데, 오직 머릿속에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불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늦잠.
딸이 늦잠을 잤다.
매일 늦잠을 잔다.
늦잠 정도가 아니고 일어난 시각이 정오경이었다.
그것도 오늘 하루뿐이 아니다. 새해 들어서 거의 매일 이다.
몇 번씩 깨우지만, 무지막지하게 야단을 하진 않는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란 태도다. 그게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는 나는 무지렁이다.
딸이 내게 "자기관리를 못 하고 밤에 아무 때고 무얼 먹는다.'라고 타박하던 것이 작년이었다.
아침에 도서실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곤, 저녁엔 꼭 동네를 큰 걸음으로 걸으며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던 작년 이야기이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계획을 세운다던데 아빠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올해는 반대로 '자기관리가 아닌 자기 파괴를 목표'로 세웠나 보다.
20대 때, 밤을 낮 삼은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고, 이제야 늦잠도 자고 하는 것을 보며, 성장의 한 과정을 거치는 것 같은 생각에 부지불식 간에 인정하는 꼴이다. 지독한 음치인 아빠가 자장가 불러주며 재워주던 딸이다. 요즈음엔 아빠가 컴을 하며 어쩌다 흥얼거리면 노래도 못하며 시끄럽다고 일부러 와서 아빠 방에 문을 닫고 간다. 그럴 적에 딸에게 그런다.
"주워온 아빠, 너무 구박하지 마세요."라고.
가끔, 아빠라 하지 말고 이웃집 아저씨라 부르라고 하는 때가 있다.
내가 쫌 삐쳤을 때이다. 아빠보고 삐돌이란다. 천연덕스럽게 "아저씨! 라고 부른다.
지난번 마트에 갔을 때 또 그랬다.
이번에도 서슴없이 팔짱을 끼며 아저씨라고 부르기에 누가 보면 "원조교제 하는 줄 알겠다."라고 그랬다. 그러곤 딸과 낄낄거렸다.
어느 시대이고 아버지란 신분이 쉽지 않았겠지만, 아버지 역할 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 아이와 의견 충돌 등으로 아빠인 나도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땐, 아이들이 태어나서, 또는 어렸을 때 재롱을 피우며 기쁨을 주던 때를 생각한다.
어쩔 땐, 아들에게도 그런다.
네가 어렸을 땐 아빠 앞에서 요렇게 했는데 하면서 시범을 보여 준다.
좋았던 장면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응석(?)을 부려 본다. 아깝다. 잘 찍고, 잘 나온 사진이 많았는데 사진이 좀 남아있으면 여러 장 올릴 텐데, 오직 머릿속에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불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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