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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 봄 눈

눈이 온다.
책을 보다 깜박 잠이 들었다.
유쾌하지 않은 꿈에서 벗어나 눈이 떠졌다. 21:30 분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간 딸에게 "눈이 하얗다!"라고 문자 보내고는 눈 쓸러 나갔다.
평소처럼 골목 어귀까지 다 쓸고 들어 왔다.

봄눈은 확실하게 다르다. 겨울 눈처럼 속살이 뽀얗지 않다.
하얀 겉모습과 달리 속은 질척하게 녹으면서 얼어 있다. 쓸기도 나쁘지만, 빗자루 끝을 통해 전해오는 느낌도 별로다. 쓸고 돌아서면, 눈 쓸은 것이 무색하게 다시 소복하게 쌓인다. 전방에서 지겹게 쓸었던 눈에 대한 추억이 정겹게 되새겨진다. 세월이 지겨웠던 일상도 예쁘게 포장을 한 탓이다. 사실, 지겹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정말로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무릎까지 빠지는 산에서 마구 굴러도 다치지 않던 푸근한 느낌이 좋은 기억만 있다. 온천지가 하얗게 덮인 속에서 발목까지 빠진 눈을 배경으로 방한모 쓰고 딸이 그린 전봇대 그림 같은 전주를 배경으로 김치를 들고 있던 풍경이 머릿속에만 있다. 사진은 물론, 필름까지 몇 년 전 화재로 다 잃었기 때문이다.

딸이 롯데마트 사진부에서 알바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26일이었다.
어찌 인터넷 검색하여 집 근처 롯데 마트에 가서 이런 문자가 왔다.
 "딸 면접 붙었고, 식권 받아 밥 먹고 있습당. 아빠도 밥 드시고 시험 잘 쳐서 일자리 얻어 갈게요.ㅋ" 그걸 아직도 안 지우고 있다. 3개월 동안 알바하여 300만 원을 벌었다. 학교에 가면서 캐논 DSLR 450D를 사 가지고 갔다. 패키지로 98만 원 줬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여 현상하는 것을 배우고, 수정하는 것이 즐겁다고 조잘대던 딸은 들어가서 2주 만에 가족사진을 찍고, 외국인도 자연스레 응대할 수 있다며 자랑했다. 딸이 콤팩트 카메라를 산다는 것을 카메라나 컴퓨터 같은 내구성 제품은 언제나 부담이 가도 좀 나은 기종을 선택해야 한다는 내 지론을 강조하여 설득한 결과다. 40만 원은 아빠가 보조해 주마라는 미끼를 던져서 CALL 사인을 받아낸 것이다. 

 

  아들이 카메라를 산다고 알아봐 달라고 하여 딸이 산 것과 같은 기종을 권했다. 둘이 합의를 봤는데, 다시 올림프스 콤팩트를 산단다. 딸과 통화했는데, 싼 것 사서 자기하고 바꿔 쓰자고 꾀었단다. 여우가 따로 없다. 
 
 눈 쓸고 들어 와서, 뜰에 내리는 눈이 보기 좋아
←요놈으로 사진 한 장 찍었다. 직접 사진 찍은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예전에 학원 할 때는 영사기까지 갖추고, 카메라는 늘 메고 다녔는데, 카메라 잊고 산 지 오래된다. 불나기 전인 2005년까진 이미 단종됐지만, 그땐 그래도 쓸만했던 올림프스 2000 계열을 썼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필름 카메라를 썼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내가 컬러 사진에 처음 찍힌 것이 1970년 중3 때, 경주 수학여행 중, 국어 샘이 다보탑을 배경으로 찍어준 사진이었다.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사진이 새삼 아깝다. 머릿속에만 가득하니까.

 

 




나는 내년쯤 일이 잘 풀리면, 보급형 중급기로 EOS 50D나 EOS 7D 정도와 백통 하나쯤 장만하고 싶다. 
 



 백통도 하나 껴서 말이다.(다나와에서 200만 원 하더라.) →

OT에 가있는 딸에게서문자가 왔다. '입학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라고.
어찌하다 보니 대꾸를 못 했는데. 몇 시간 지나 다시 문자 하기에 전화했다.

생뚱맞게 그랬다.
아빠, 나이쯤 되면, 엄청나게 기쁘거나, 크게 슬픈 것도 실제 이상으로 기쁘거나 슬프지 않은 것이라고.
물론, 기쁘지만 제 말마따나 후진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여 계속 장학금 받겠다고 할 적마다 "잘 놀기나 하라.'라고 중학교 때부터 하던 말을 했다. 대학 개나 소나 다 가는 세태에서 정말 공부가 목적으로 가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잘 노는 것이 공부 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공부 잘하면 좋기는 하다. 딸을 믿기에 짐짓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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