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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지우(知己之友)

*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서울역에서 너를 보내고 온 것이 조금 전에 일 같은데 벌써 3번째의 밤이 지나고 있구나.! 그래, 시간은 언제나 속절없이 흐르는 것이란다.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그냥 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디 우주의 삼라만상이 자신의 위치에서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는 것이 '생의 법칙'인 것이다.

우리가 속해있는 태양계만 하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지구를 비롯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등의 천체는 스스로 도는 자전과 태양의 주위를 도는 공전을 쉬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다 하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에서도 끊임없는 신진대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 현수는 '지금은 어디쯤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단다. 물론 아빠는 현수가 짜인 일정에 따라 하고 있을 일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날이 겨울 날씨치고는 따뜻한 편이다. 처음 힘든 경험을 하는 네게는 다행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아빠는 비교적 온화한 날씨가 조금은 불만스럽기도 하다. 네가 작년에 일본에 홈스테이 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마고또' 형을 비롯한 가족들이 칙사 대접을 해줬을 터이니 '진정한 야전생활을 경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네게는 네 인생을 통틀어 대단한 사건이며 큰 의미가 있을 것임을' 말하고 싶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빠는 네가 겪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체험기간에 좀 더 어려운 상황이 있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살아온 13년 동안의 경험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극히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란 것을 알고 이번 국토 탐험대의 탐사과정을 통해 '스스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는 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빠에게 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또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이율배반적인 두 가지 명제를 한 번에 말하는 것은 결국 '마음먹기 달린 것이 인생임'을 말하고 싶은 까닭이다. 아빠가 늘 주장해 온 터이지만 '어렵다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도 극복할 가치가 있는 것'임을 다시 말하고 싶다. 한 번에 현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으니까 이제 한계를 두어야겠다.

사실 네가 원하지 않은 이번 여행을 강요한 것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아빠가 믿는 아들이' 더욱더 강한 모습으로 남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강건한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건전한 사고방식은 무엇보다 우선하는 필요충분조건인데 이번 탐사여행은 그 세 가지를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井底之蛙(정저지와)라는 古事成語(고사성어)가 있는데,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이란다. 우물 안에서 보는 하늘(세상)은 얼마나 좁고 보잘 것 없는가? 우물 밖의 넓고 웅대한 하늘을 보지 못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볼 수 있는 하늘이 하늘의 전부인 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란다. 우물 밖의 변화무쌍하고 멋있고 때로는 힘에 겨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현수야! 

아빠가 지어준 네 이름의 뜻이 '세상에 나온 자랑스러움을 지키자!'라는 것이라고 일러준 것을 기억하고 있니.? 너희 세상에서나 어른들 세상에서나 지금 시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것이고 자기만 아는 세태란다.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법이란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자기와 같은 사람인 타인도 존중하는 법이란다. 인류애란 기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란다.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기본이 됨을 말하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싫든 좋든 사회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학교 등도 사회의 한 형태인데 현명하고 자기는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단다.
 아빠가 학교에서 반장이나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늘 일러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단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자기가 그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의 인정을 받는 것임을 다시 말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도 몸이 괴롭다고 꾀를 부리기보단 궂은 일일수록 앞에 나서는 솔선수범을 보여줄 수 있는 아빠의 아들이기를 바란다. 눈치 빠르고 영악한 것보단 괴롭고 힘든 것이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사는 것이긴 하지만 아빠는 현수가 후자를 지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서도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들아! 

이번 탐사 여행을 통해 조금은 깨달을 것이지만 세상은 따뜻하고 온화한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춥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더욱 많은 것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현명하고 단호하게 헤쳐나가는 것이 삶의 참모습인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토탐험을 끝내고 나면 '해 냈다.'라는 뿌듯함과 자신감에 크게 만족하리라 본다. 아빠가 19세 때 자전거로 전국을 무전여행을 했던 것을 말했든 적이 있지. 이번 국토탐험을 마치고 나면 네게 닥치는 웬만한 어려움은 네게 있어 이미 어려움일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불과 열흘 정도의 기간이지만 다시 만나는 우리 아들이 더욱 의젓하고 멋있는 사내아이로 다시 태어나리란 기대에 아빠는 가슴이 설렌다.

언제나 예의 바르고 착한 네게 하나 더 주문하고 싶은 것은 '맹목적인 착함은 착한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번 국토탐험을 주관하는 흥사단을 만드신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개인이고 국가고 힘이 있을 때 존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강한 자에 강하고 약한 자에 약하게' 처세할 수 있는 단단하고 야무진 젊은이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현수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착하다.'라는 친구와 선생님의 평가에 대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아빠는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착하게 살되 무르지 않는 남이 자신을 넘보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善(선) 함을 가꿀 수 있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새로운 많은 경험을 아빠와 현민 이에게 들려주기를 바란다. 현수는 충분히 해 낼 것을 믿는다. 또한, 이번 여행 중에 현수가 앞으로 중학교에 진학해서 나아가 그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골똘하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란다. 아빠는 현수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던 간에 적극적으로 밀어줄 것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기를 바란다. 김치도 잘 먹고 음식을 마구 먹기를 바란다. 食貪(식탐: 음식에 대한 욕심)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네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네게 대한 유일한 아빠의 불만은 음식에 대한 욕심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입이 짧아서는 건강도 장담하기 어려운 법이며 건강하지 않고는 다른 어떤 일도 마음껏 할 수 없음을 알았으면 한다.

 

1998년 12월 24일 새벽

현수를 믿고 사랑하는 아빠가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5학년 때, 어찌어찌 수소문하여 흥사단에서 주최한 [제주도 국토탐험]에 반강제로 보냈었다. 그리고 제주도에 있는 아들에게 쓴 편지다. 그럴 일이 있어 자료를 살피다 눈에 띄어 올린다. 잃었던 귀중한 것을 지리산 근처에서 주웠다.

 
이 글을 쓸 때 5학년이었고, 이 글을 딸의 학교 학부모 모임 동아리에 게시한 것이 고1이었는데 어느덧 세월은 흘러 아들이 한 주일 후에 입대한다. 세월 참~ 빠르다.
식당에 군복 입은 이가 앉아있는 것을 보아도 아들이 생각난다.

플래닛에 있는 글을 티스토리로 옮기는 작업을 틈틈이 하는 중이다. '아들과 딸은 평생 친구'이기에 <평생 친구>란 폴더를 따로 두고 있었는데 자기들, 사진 올리는 것을 싫어해서 (어쩌다 보곤) 티스토리엔 지기지우 난에 끼워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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