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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구두


구두를 닦았다.
실로 몇 년 만이다.
"나도 구두를 닦을 줄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묵동에 자주 가던 사우나에 구두 닦는 이가 19시면 칼같이 퇴근하여, 구두를 닦을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거기 사우나에 간 기억도 한참 된다.
일체의 업무를 중단하고 오직 주식에 올인!
One way 길을 걷는 7월 이후엔 그쪽에 갈 일이 없었다.

지금 나가는 사무실에 김 사장이 구두 닦는 이에게 선금을 줬는데 코빼기도 안 비춘다고 투덜거릴 때, '좀, 가봐. 그자 오면 나도 구두 좀 닦게."
채근한 것이 한 주일도 더 지났다.

모름지기 아무리 빼어난 옷을 입어도 구두가 반짝이지 않으면 멋진 옷의 값이 반으로 절하되는 것인데, 구두를 닦은 지가 한참 되는 것은 예쁜 여인을 안는 것보다 더한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는 말이겠다. 사무실이나 사우나 탕이 아니면 그나마, 구두 닦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길에 서서 구두를 닦고 싶진 않다.

 지난주에 강남 차 병원 근처 이사 갈 사무실 옆에서 사우나를 하는데 먼저 챙긴 것이 구두였다. 애석하게도 구두를 닦을 순 없었다. 이미 퇴근했기에. 동네 사우나는 올라서 5, 6천 원 받는데, 강남이라고 만 원 받더라, 그런데 십만 원을 받아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김 사장과 나 외에 나중에 들어왔다 나간 단 두 명이 손님의 전부였으니.
 탕은 화려한 것이 동네 사우나와 달랐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사우나가 아니라 계집 장사하는 것 같았다. 사우나는 다만, 형식상 갖춘 것이란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모르겠다. 50미터도 안 떨어진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면 스포츠 마사지가 아닌 윤락을 전문으로 하는 사우나 아닌 사우나를 이용할지는. 다만, 사우나 본연의 목적으로만 이용한다면 시설 좋고, 몇천 원 더 줘도 맘에 쏙 드는 것이 좋긴 하다.


어려서 구두 닦는 것은 좋았다.
아버지 구두를 닦으면 몇 푼의 용돈을 주셨고, 칭찬도 이어졌으니까.
형과 동생과 경쟁한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을 보니, 그냥 닥치면 했던 것 같다.

학원 할 때, 구두 한 켤레 가지면 2~3년을 신었던 적이 있다. 서너 켤레니 더 오래 신었겠지. 출근하고 나면, 슬리퍼 신고 있는 것이 태반이었고, 밖에 나갈 때만 신발을 신었기에 그렇다. 구두가 더러워진 지 꽤 오래되는데 직접 닦을 생각을 안 한 것은 오랜 습관 때문인가 보다. 내일은, 내일은..., 하며 미루다. 사무실을 나서며, 오랜만에 구두를 직접 닦았다. 그 시간이 아까워, 하나, 둘, 셋 세면서 네 번째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을 되풀이하며, 구두약을 칠한 솔로 구두를 수십 번 문질렀다. 특별한 기술이 아닌지라, 오래 문지르고 예뻐하니까 구두에 광이 나더라. 역시, 구두는 광이 나게 번쩍거려야 제구실을 하는 것이다.

 

  



생도, 이왕이면 광나게 사는 것이 좋으리라.
구두 닦듯, 내 인생을 공들여 닦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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