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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11.21 * 안철수 詩
  2. 2008.11.30 * 노가리가 웃더라.
  3. 2008.10.26 ◆ 쓸만큼 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안철수는 오늘부로 정치를 그만둬라!

 

 무릇 정치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나는 한하운의 시도 좋아하고, 이성부나 김수영도 좋아하고, 김춘수의 시론도 읽었고, 젊어서 心象이란 월간지도 정기구독했었고 간혹, 낙서는 했어도 詩를 써 본적은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한때는 한국일보를 보다가 끊어야겠다고 작심하고 1면에 시를 싣는 것 때문에 최소 1년을 더 본 적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도 지하철 슬라이드 도어에 새겨진 시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꼭 읽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詩 비슷한 작문이나 낙서를 했어도 詩라고 우긴 적이 없는 것은 시인을 욕보이기 싫어서였다.

시는 삶이요. 삶이 생각이고 느낌이라면 시는 한 번 더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동력이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터넷에 보면, 시 같지도 않은 것으로 시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많기도 하듯, 詩를 정치판에 끌어내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철수가 싫다. 정말 싫다. 시는 시이고 정치는 정치일 뿐이다. 정당한 욕심은 많고 클 수록 좋다고 보는 내 시각에서 볼 때, 안철수의 욕심은 정말 안(不) 철수를 지향하는 것 같다. 철수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양하고 있다. 철수야 자네 아이덴티티를 지향하거라. 그런 게 있기나 했었는지?

 

  전에 노무현이 옥탑방에 관해 전혀 몰랐는데, TV를 보다가 옥탑방의 존재를 알았다고 하더라. 그때, 대선 주자였던 그에게, 측근이 <이미 알았었노라.>라고 하라고 했음에도 자식들이 보고 있는데 거짓말을 창피하여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몰랐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안철수에게는 이런 진정성이 없다. 온당하지 못한 권력 욕심으로 가득한 모습이 보기에 안쓰럽다.

 

 윤여준의 증언에 의하면 서울 시장에 무한한 욕심을 가졌던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양보한 것은 한계를 느꼈고 되지도 않게 대통령을 꿈꿨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은 안철수, 자네 개인의 명예를 충족하는 것으로 끝나는 자리가 아니다.

6,000만 겨레의 삶과 가치에 엄청나게 크게 작용하는 자리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에 나타난 현상으로 자기 자리에서 묵묵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패배감을 맛보게 한 일일 것이다.

 

 안철수,

자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말 끝마다 <국민을> 들먹이는 자신의 양심과 대화하라!

자네는 새누리당에서 주장하는 불쏘시게 역활이 딱이다.

절대로 준비된, 능력있고 역량있는 대통령 감은 아니다.

대통령은 인기투표나 잠시의 이미지로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6,000만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다.

좀 더 솔직해져라. 안철수.

 

 

 

'나 하나 꽃피어'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산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가 누군지 몰랐다만

조동화가 시를 통해 말하려는 뜻은 충분하게 헤아리지만,

안철수, 자네가 6,000만 사람을 이끌 재목은 아닌 게 너무 뼈저리게 느껴지네.

 

나 초저녁에 잠을 자 뒀고, 02:00 시에 버냉키 만나려고 기다리는 중이라 하릴없어 내용 없는 글을 남기는 것이라 더 자세하게 내 생각을 나타내지 않아 미안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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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ejoji
자동차가 퍼졌다.
지난 금요일 '크르릉`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금속류를 아스팔트에 질질 끌고 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마후라가 떨어졌나 갸우뚱하며 보니 엔진룸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홴 크럿치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더니 이내, 타임 벨트와 워러펌프 쪽에 문제란다. 가볍게 생각했더니 중증이란다. 용마산역 근처의 S 카센터에 맡기곤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사가정역-면목역-동원 시장을 관통-상봉동 E마트-망우사거리-망우리고개-교문사거리-농수산물센타-동구릉-사노동까지. (사후에 위성지도를 켜고 거릴 재 보니 10km가 좀 넘는다.) 망우역 근처에 오니 벌써 양쪽 사타구니가 아프고 망우리 고갤 넘는 중에 발바닥이 화끈거리더라.
평소에 걷기에 소홀했단 증거다. 기껏 팔굽혀펴기 몇백 개 하는 것이 다였었다. 완전군장을 메고 10km 산길을 구보해도 50분 정도 걸리던 20대가 그립다. 살다 보니 망우리 고갤 걸어서 넘는 날도 있구나 !!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망우리 고갤 향해 오르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순서 없이 되새겨졌다. 고개 중턱에 초소가 있는 곳 근처에서 '명순이'와 차에서 데이트하던 생각도 났고, 춘천가도 쪽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에 그녀가 운전하는 옆에 누워 귀경하던 날도 생각났다.
 망우(忘憂)는 '잊을 망 근심 우'의 한자가 말해주듯
'근심을 잊다.'라는 뜻인데 근심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지난 일이 생각 키워 진다. 생각을 틀어보면 인생에서 <쓸데없는 일이란 없다.>고 믿는다.
<忘憂 !> 무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의 이름으론 참으로 근사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장사익이 <무덤>이란 노래에서        [##_Jukebox|nk050000000000.mp3|무덤.mp3|autoplay=1 visible=1 color=black|_##]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 / 더없이 편안해 보였는데>라고 소리치고, 이어지는 가사가 좋아 수도 없이 듣는다. <무덤 앞에는 비석 조차 없이/누구를 사랑했는지/누구를 미워했는지/알 길도 없이/새소리만~새소리만 들리는 것이/더욱 맘에 들었네>
22:00가 넘은 공동묘지 입구의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뜬금없는 생각을 이어갔다. 저기 어디쯤에서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 거적을 깐 움막을 거처 삼아 서러운 밤을 보냈다고 했었지.
그가 생각났고 그의 시 전라도 길 이 생각났다.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근데, 왜, 걸어오시는 거예요 ?"
망우사거리쯤에서 망우리 고갤 쳐다보며 '계속 걸을까? 말까?'를 잠시 생각하는데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걷는 것이 삶이기에 걷는 거란다."
답을 보냈다. 주춤하던 것을 일시에 날려버리게 한 것이 딸의 문자 내용이었고 이어진 내 답신이었다. 그냥 걸었을 뿐. 걷는 이율 명확하게 몰랐던 터에 걷는 이율 스스로 자신에게 납득하게 해 준 딸의 문자 메시지였다. "걷는 것이 삶이기에 걷는 거란다."라고 딸에게 문자를 보내곤 피식 웃었다.
 '내가 진정 그 뜻을 알고서 하는 말인가 ?' 하고.., 
교문 사거리쯤에서 버스를 탈까 하다 2시간 반을 걸어온 것이 아까워(?) 집에까지 걷기로 했다.
목이 말랐다. 핑곗김에 목 좀 적시고 싶었다. 동구릉 못 미처 호프집에 앉았다.
생맥주를 3잔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노가릴 집어들고 대가리부터 으적으적 씹었다.
세월을 씹듯, 지난 기억을 씹듯..,
노가리가 씨~익~ 웃고 있다. 씹히면서도 웃고 있는 놈을 어금니로 느끼며 나도 웃었다.
씹히는 너나, 씹는 나나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생명과 무 생명의 차이. 나 또한 머지않아 너와 같은 처지에 이를 테니..


 

                                                      

 

1,500CC의 생맥주가 목구멍을 미끄럼타듯 미끄러질 때 노가릴 씹으며 '노가릴' 깔 수가 없었다.
혼자였기에..,
 <인간이기에 외로운 것이다>는 말에 <외로우므로 인간이다.>라고 댓구를 달며 여러 번 써먹었는데 인간이기에 외로운 것이 아니고 혼자이기에 외로운 것임을 새삼 느꼈다. 짧지 않은 거릴 걸으면서 풋사랑(?) 시절엔 꽤 먼 길도 이야길 나누며 걷다 보면 왜 그리 빨리 닿는지.., 아쉽기만 했었는데, 그래도 둘이면서 혼자라 느끼는 사람들보단 덜 외롭다. 

'걷는 것은 인생이다. 
걷는 것은 삶이다. 
살아 있기에 걸을 수 있고 걷고 있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생각하며 걸었지만
오늘 난 왜 4시간을 걸었는지 나도 모른다.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사타구닌 양쪽이 다 아프다. 
다만,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음을..,> 새삼 갖고 싶었을 뿐이다. 


                                                                                                           2008/08/01  23:56   


  그림: 매조지 DB Clip Art/1151111653 ,  DC022 Foods and Dishes (음식과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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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ejoji

'대표적인 형이하학적인 물건이면서
형이상학적인 깊은 곳까지 관여하는 마력을 지닌 것.'
이것이 돈에 대한 경험칙에 의한 나의 평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큰돈은 아니라도 돈을 버는 일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피와 땀을 흘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쓸 만큼 번다.'  

이것이 돈에 대한 나의 소신이라고 큰소리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요즈음 깨달고 있다.
아니, 소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돈에 대한 나의 가치평가가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잘못된 것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후반, 아니 40대 초반까지 저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며 올라오던 주체할 수 없던 자신감도 지금은 없다.

다만, 팍팍한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 말처럼
막연하게 예전의 기백은 맥을 잇는 것 같은 감은 있다.
그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다.
 

예전에 음식점 같은 곳에 가면 세종대왕이나 퇴계 선생을 코팅해서 벽이나 문 위에 걸어 놓은 곳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좀 친한 주인에게는 그 천박함을 탓하기도 했었다. 그땐 그들의 절박함을 몰랐던 것 같다.

돈이 주는 삶의 무게를 침잠沈潛)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는가 보다.

자다 일어나서 '돈 벌 준비를 했다.'

간단한 광고를 작성했다. 오전 중에 인쇄소에 넘기고 머릿속에 있는 다른 아이디어도 구체화 시키고 이제 예전처럼 뛰어야겠다.

 나일 먹으면서 직업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전업투자가'가 꿈이지만 아직은 준비를 더 해야겠다.
임계점이란 닉을 한시적으로 쓰게 된 투자도 아직 몇 날의 시한이 있긴 하지만 실패다. 김정일이 힘을 보탠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무리하게 대박을 노린 결과이다. 승복한다. 갈 길이 바쁘다고 한목에 큰 것을 노
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뻔히 알면서 내린 결정에 후회나 이
견이 있어선 안 된다.
한 번 고꾸라지고 2~3년간 한하운 시인이 겪은 인생 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
혈이지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어려운 일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도 극복할 가치가 있다
'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스스로 자신에게 채찍질하f려고 스스로 만든) 금언도 헛되게 생각되기도 했던 시기였다. 그런 고통 끝에 자리잡아 가던 2005년 12월 발생한 화재는 모든 걸 다 가져 갔다.

'그래, 제기랄! 맞으려면 아주 혹독하게 맞아야 해.'

시청에서 난민 지원용 모포와 라면, 쌀, 개스버너 등으로 마을 회관에서 며칠 기거하던 중 자위하며 씨부렸던 말이다. 호주에 가 있는 딸이 전화 했다. 

 "아빠, 목소리가 피곤해 보여요."
 "아니, 뭔 소리"

하고 대꾸를 하면서도 뜨끔하다.
내가 이렇게 죽어 있음에. 이젠 행동해야 할 때다.


                                                                                                             200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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