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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 친일파 원조 최고의 친일 매국노 - 이성계 가문 해방이 된 지도 63년이 지나 친일파들은 다 죽어 나자빠졌는데도 친일파 논의는 정략적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한국의 친일 논란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최고 친일파인 이성계 가문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면책시켰기 때문이다. 반민특위는 처음부터 일본 왕족이 된 이성계 가문을 배제하였다. 이는 마치 광주사태 책임을 물을 때 전두환을 면책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보듯이 이성계 가문은 외적이 쳐들어오면 만 백성을 버리고 도주하는 것 이 특기였다. 이재황(고종)이란 자는 마누라가 왜놈들 칼에 맞아 죽었는데도 복수할 생각은 하지 않고 1896년 러시아로 망명했다. 아관파천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임금이 처소를 옮겼다는 뜻인데 치외법권 지대인 아관(러시아 공사관.. 더보기
◆ 조선왕조실록 고종 44권, 41년(1904 갑진 / 대한 광무(光武) 8년) 1월 24일(양력) 4번째기사 평안북도 관찰사 이도재가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다 평안북도 관찰사(平安北道觀察使) 이도재(李道宰) 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앞서 올린 소장(疏章)에서 이미 무엇을 할 만한 재주가 없음을 아뢰었습니다. 하지만 성은의 헤아려 주심을 받지 못하였고 신에게 부임할 것을 재촉하였기 때문에 민망하기 그지없어 두려움을 무릅쓰고 시세로 보나 형편으로 보나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외람되게 거듭 아룁니다. 지금 두 이웃 나라 사이에는 알력이 생겨 당장 전쟁을 할 듯이 서로 노려보고 있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담장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우는 것 같으니 그 포효하는 기세와 격투하는 근심은 반드시 우리에게까지 미칠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