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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공공의 선

  아고라에 <나야 나>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가 있다. 노부부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건강한 가정생활을 소재로 맛깔 있는 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눈에 띄면 반갑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지만,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며 부부 사이의 자잘한 갈등마저도 보기 좋은 모습으로 꾸려가는 <나야 나> 같은 이가 많을수록 사회는 건강할 것이다. 존 듀이가 '철학의 개조에서 '사회와 개인의 긴밀한 관계를 말한 것.'을 빌려 오지 않아도 건강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개인이 많으면 사회가 성장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경제학의 필독 도서이기도 한 국부론에 보면 <공공의 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있다. 
요약하면, '우유 배달부와 빵집 주인이 새벽부터 우유를 배달하고 빵을 굽고 하는 것은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바로 그 이기심이 결과적으로 타인을 이롭게 하는 <공공의 선>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중에 <공공의 적>이 있다. 주인공인 강철중 형사(설경구 粉)의 연기에 대리만족을 느낀 관중이 많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공공의 선>이나 <공공의 적>이 고통과 쾌락이 한 핏줄이듯 <이기심>이 근원이라는 점이다. 칼이 쓰는 자와 쓰이는 용도에 따라 문명의 이기이자 흉기로 쓰이는 것과 같다. 

  <나>를 인식한다는 것은 개인이 우뚝 서기 위한 최초의 깨달음(自覺)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강력하게 유지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확고한 가치관으로 다지려면, 끊임없는 공부와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때쯤인가?
신문 기사에서 유명인의 사인을 받는 것이 생의 목표인 양 온갖 노력을 기울여 여러 사람의 사인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기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찬 적이 있다. '세상에서 자기보다 중요하고 귀한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에서였다. 


 1975년 2월 6일 

명동성당에서 민주 어쩌고 하는 집회가 있었고, 같은 줄에 김대중 선생이 측근들과 자리했는데, 행사 뒤에 싸인을 받겠다고 난리를 친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90년대 대선 때인가 상계동 중앙시장 근처에 삼오정이란 거래처가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다. 그런데 열광하는 군중에 비하면 나는 비정상인가 보다. 싸인 따위를 받고 싶단 생각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그렇다. 연예인 등에 무관심하고 TV에 잘 빠진 여자 연예인에게도 거의 관심이 없는 것은 화중지병이고, 어린 왕자에서 '내가 물 주고 키운 꽃 한 송이가 흐드러지게 핀 밖에 꽃보다 소중하다.'라고 잘 설명하듯 못났어도 내 손길 닿는 곳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단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시대의 마초는 아니라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귀해진다. 
'自信者 人易信之, 自疑者 人易疑之'라는 말처럼 자신을 믿는 자는 남도 믿는 법이니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야 나>라는 아이디가 미쁘게 보이는 이유이고 그 닉을 쓰는 사람의 생활이 글을 통하여 건강함을 확인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나야 나>는 자신의 가족을 위하고, 자신을 위한 '생활인의 도리'에 통함으로 <공공의 선>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특별하게 공공의 선을 행하지는 못한다. 
다만, <나야 나>처럼 내 생활에 충실하고 20대 이후로 꿈을 접고 목표로 삼았던 <생활인의 도리>에 통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공공의 선>을 행하려는 시도는 늘 한다. 

우리 모두 <공공의 선>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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