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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주체/옷주제/잘 자고, 잘 놀기

* 니들이 조퇴를 알아!

살다 보면 스스로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이 기억되고 구별될 것이다. 내가 살면서 잘한 일도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으뜸으로 꼽으라면 학교 다닐 때 만화에 빠져서 일주일씩 학교에 가지 않은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과 고2 때 이유 없이 조퇴한 일이다. 군사문화가 팽창하던 시절. 이후락이 김일성을 만나고 남북공동 성명을 발표하던 때쯤이다. 
 그때, 난 광주 중앙여고의 유정심이와 편지 나부랭이를 소위 펜팔이라는 이름으로 교환했으며 편지 내용시사문제를 자주 올렸기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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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고2 때. 뜬금없이 조퇴하고 싶었다.
교실의 딱딱한 의자도 질렸고, 숨도 쉴 수 없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교실이 갑자기(?) 세상을 뒤덮는 먹구름보다도 어둡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학생부, 당시에는 정말 학생이란 오직 사육돼야만 하는 모로모토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지옥의 문 같은 학생부를 노크하고 담당인 주씨(생활지도주임 100kg도 넘는 거구에 밤에 마누라에겐 힘도 못 쓸 위인이 학생들에겐 神처럼 군림했다.) 조퇴를 청했다. 이유를 대란다. 
 
 "어디 아프냐?"
 "아픈 곳 없습니다."
 그럼, 집에 뭔 일이 있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뭐~~냐?, 이유가 뭐냐고?"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조퇴하고 싶은 게 이윱니다"

그때나 이제나 거짓을 말하느니
불이익을 감수한단 미련한 처세는 어쩔 수가 없다.
꼬장을 부리고 부리다 보니 주씨도 승낙했다. 고교 3년 동안 통틀어 잘한 일 중의 하나다. 아니, 인생 50년을 살아오면서 잘한 일 중의 하나다. 그날, 그 시간에 학교에 앉아서 단어 몇 개 외우고 책 몇 줄 읽어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이유 없이 조퇴한 덕에 평생을 가치 있는 날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빠란 작자가 툭하면 아이에게 물어봤다. 
  "학교에 가기 싫으니?" 
  "학교에 가기 싫으면 언제든 안 가도 된다."
홈스쿨이나 뜻 맞는 다른 이들과 학교를 세울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언제나 마음만 앞서 갔다. 아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학교는 착실하게 잘 다녔다. 난 오히려 그게 불만이었다. 파출소고 경찰서고 힘은 들겠지만 부르는 그런 놈이면 하고 내심 마음 한 편에선 바라기도 했었다.

 

나 아빠, 맞나?
그러나 그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진실이다. 조퇴하고 20분쯤 걸리는 집에 일없이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느꼈던 고적함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아이들은 다 학교에 있고, 또래의 학교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공장이나 집에 있을 시간. 거리에 자동차와 사람들은 붐볐지만, 느낌에 거리가 터~엉 빈 것 같았다. 그게 지드의 영향인지, 말로의 영향인지, 카프카의 영향인지, 존 업다이크의 영향인지, 제니친의 영향인지, 이어령님의 영향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러나 반나절의 수업보다, 반나절의 일탈은 나의 인생에서 정말 값진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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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했지만, 아들은 선택되지 않았고, 딸은 내 선택에 의해 지금 다니는 학교에 가게 됐다. 정말 어려운 과정을 거쳐 최종 단계에서 딸과 동생의 딸이 그랬다. 
 
"아빠, 이 학교 안 다니면 안 돼?" 내가 답했다. 
 
"이제까지는 학교가 너희를 선택했지만, 마지막 과정을 거치고는 (선발 인원의 배수를 뽑아 며칠간의 예비학교 과정을 거치고 그 반만 최종 선발을 한다.) 정 싫으면 너희가 학교를 선택하면 된다."라고. 설득을 했다. 그랬다. 일주일인가를 거치고는 오히려 아이들이 학교에 남기를 원했다. 
 그 학교의 샘들은 특별했고 아이의 반은 세월이, 그 반은 샘들이 길렀다. 아비인 나는 한 것이 하나 없다.
조퇴든, 자퇴든 학교에 맹목적으로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

대학은 왜? 가는가? 취직하고 시집 장가 잘 가기 위해서.

일전에 언론에서 보도한 것을 보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의 한 과정을 더 거칠 적마다 급 차이가 월 100여만 원 난다고 하는 것 같더라. 통계란 것처럼 불확실한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그 기사가 100% 옳다고 하더라도, 그게 옳은 일인가? 평생직장 개념도 아닌 지금 왜? 직장에만 목을 매는가?

 자기의 길을, 그게 돈을 밝히는 길이든, 가치를 찾는 길이든, 찾아보질 않는가? 집 밖에 당장 나가보라. 길은 수없는 갈래 길을 만들고 있다. 남이 몰려가는 길이 언제나 옳지도 않다. 조금 쉬울 수는 있어도. 한가지 더하면, 남자고 여자고, 자신의 건강은 늘 체크하라.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없어지는 자신보다 남은 인간의 삶은 매우 팍팍하리라. 그건 권장사항이나 옵션이 아니고 의무며 충실히 인간으로서 이행해야할 책무이기도 하다. 건강엔 당연하게 정신건강도 중요하다. 지금 당장 자신을 체크해 보라.

                                                                                                             2006. 08. 23.

 

그림: 매조지 DB/ DC152 Women - Holidays in the meado/ [여자 - 전원속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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