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기지우(知己之友)

* 자위


구*회란 놈 나쁜 새끼다.
나도 물론 나쁜 새끼다.
왜냐하면, 우린 그날 저녁 이후 지금까지 서로 전활 안 했다.
나쁜 새끼가 되겠다고 작정을 한 거다.

 (
친구- 그 셋
) 
이 책임의 대부분은 사실, 나에게 있다. 구*회 이 자식도 내가 멀리 한 것은 아무리 친한 놈이라도 지금의 내 상태가 알려지면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매조지가 지금 어떻다더라.' 하는 말이 도는 것을 겁냈다는 것이겠다. 결국은 남의 이목을 전혀 개의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사기에 불과하였다는 거다. 아내는 자기의 생명만 잃은 것이 아니라, 내게서 일상에 아무렇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작은 부분까지 구속하며 간 거다. 처음엔 안 그랬지만, 아내에게 절을 한 기억이 오래됐다. 내가 얼마 안 있어 그녀를 다시 만난다 해도 그것에 대해 변명은 하기 싫다. 나는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니까.

 

서러움은 누구나 있다.
그래서 쉽게 내 설움을 이제는, 내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한참 지난 다음에 깨달은 거다.
'엄살은 금물이다.'라고 자신에게 다그치며, 늘 어금니를 꽈~ㄱ 물고 살았다.
그래도, 꽉~물은 어금니 사이로 설움이 새어 나올 때가 있다.
이럴 땐, 애들이 없으면, 좋았다.
혼자 마음 턱 놓고, 목 놓아 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잠 안 자고 있던 이유도 오늘은 실컷 울고 싶었던 거다.
놈들 다 잘 때, 그냥 소주 한 잔하며..
부러, 애잔하고, 슬픈 한네의 이별/ 김영동의 상여/ 상엿소리 등을 찾아 들으며
울고 있다. 예전보다 더 슬퍼서가 아니다.
만족한 섹스에서 시원함을 맛보면 생의 활력소가 되듯,
내 안에 설움을 나는 이렇게 뽑아 낸다.
울고 싶을 때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맘껏 운다.
슬픈 노랠 들으며, 맘 놓고 울고 또 운다.
나 말고 나를 마지막까지 지켜볼 인간은 살을 섞으며 산 년이라도 없다는 것을
이미 나는 조금 과장해 말하면 10대 때에 깨우쳤다.
실컷 울고, 난 거뜬하게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놈의 아들 대관이는 우리 아들 현수보다 한 살 많다.
아마, 대관이가 고1인가 고2인가 하는 때에 나쁜 새끼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야! 아들놈이 자위를 하는 것 같은데, 어떡해야 하니?"
역시 나쁜 새끼인 내가 받아서 말했다.
 " 별것도 다 걱정이다. 너 클 때 생각해 봐! 쨔샤."
 "휴지나 아들 방에 넣어 줘라. 임마, 모른 체하고, 플레이 보이 誌라도 살짝 넣어 줘"
자~식, 전화기 저쪽에서 머리통 긁는 소리가 들렸다.

[난 토토 디스크, 폴폴 등의 P2P를 일부러 코인 충전한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공갤하고 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거기엔 온갖 야동부터 유익한 자료가 공존하고 있다.
난 유익한 자료 99%, 야동 1% 정도 활용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어떤 부분을 활용하는진 모르지만, 난 놈들을 믿는다. 불과 3년 차이인 동생을 부모님 대신해서 학부모 입장으로 고등학교를 들락거렸던 나다. 모든 게 내 판단이 맞진 않을지라도 내가 아이들에게 보이는 처세는 옳다고 믿는다.]

그리고, 잘 커서 대학 3학년이다.
우리 아들은 공부를 못했든 지가 따로 원하는 것이 있든 대학진학을 안했다.
그 때, 큰 실수를 한 것이 하나 있다.
중학/고등학교 과정 내내 일관된 모습을 보이던 내가,
예비고사를 강요 (두 번인가 말했다.) 했던 거다. 그리고 결국 나의 강요에 의해 시험은 치루었는데 결과는 아들이나 나나 확인을 하지 않았다. 아들은 일본에 가서 가이드를 하겠다고 했었다. 지금도 그 꿈이 유효한지는 모른다. 얼마 전 뺑소니사고를 친 뒤에도. 아들을 믿는 것은 자기가 필요한 것은 제대로 해 낸다는 거다. 내가 나를 믿듯 아들을 믿는 것은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다만, 담력이 약한 것이 늘 걱정이다. 그건 어쩜 제 엄말 닮았는지  담력은 차라리 딸이 날 닮았다. 아니, 담력이라기보다 상황판단이겠다. 아들 이야긴 차차 자세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꼭지가 덜 떨어진 관계로..  

가치관의 혼동을 가질 때가 있다. 아들의 약점과 강점을 잘 알면서,
내가 군대에 갈 때는 다 큰 것 같은 생각에 부모님의 걱정을 무위 치며
오히려 부모님 걱정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제 아들을 군문에 세우려니
잊고 있던 군 생활도 파노라마로 재생되고 저놈이 잘할까 하는 노파심이 앞서기도 한다.
어차피 남의 일(?)인데 대신 살아 줄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 벌써, 3년이 더 지난 이야기이다. 세월은 빠르고, 누구나 제자리에서 제 능력과 처지에서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인생이다.

◇ 또 몇 년이 지나 일본계 회사에 다니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기지우(知己之友)'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욕(辱)  (0) 2010.06.16
* 춘설  (0) 2010.03.17
* 친구 1  (0) 2009.03.29
* Happy Birthday  (0) 2009.03.23
◆ 거리와 관계  (0) 200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