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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지우(知己之友)

* 친구 1

먼저 머리모양을 이야길 하면서 거론했던 윤*모를 친구소개에 첫손가락에 꼽은 것은 그때가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친구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보여 준 것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서다. 놈은 대전에서 D일보 지국장을 하는데 그건 그의 천직이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하고 고등학교 땐 태권도 도장의 사범을 하며 신문과 인연을 맺더니 평생을 신문보급소에 매진한다. 나도 직업을 정하기까진 이것저것 많이도 해 봤지만 일단 직업을 정하고는 그냥 한 길로 쭉 내달렸다. 죽을 때까지 하겠단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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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여름 이맘때였다.
장맛비가 쉴 새 없이 주룩주룩 내렸으니 7월의 끝 자락이었는지도모르겠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연상의 여인을 사귀는 것이 낯설 때였고 사회통념으로도 용납되지 않던 때였는데, 고2였던 녀석이 고3 여학생을 사귀고 있었다. 먼저 글에서 밝혔지만, 친구 넷이서 방을 얻어 아이들 과외를 시작하고 얼마 뒤의 일이었다.

지금도 술을 몇 잔 못하는 놈이 소주 한 병을 사왔다. 나야 뭐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에 술 찌게미에 일상의 음식은 아니었지만, 면역체계가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가 라면을 끓여 먹는 사이 앞에서 그의 이야길 들으며 홀짝홀짝한 것이 혼자 2홉짜리 두꺼빌 다 먹은 거였다.

사달은 여기에 있었다.
아무리 면역 운운한다고 해도 고 2때 소주 한 병은 치사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따로 어디에 나가서 술을 마셔 본적 없고 증 3 때 이모님 댁에 갔다가 이종사촌인 영화와 영선이 그리고 동네 친구인 종원이와 종원이 누나가 끓여준 추어탕 (논 물구덩이를 품어 직접 잡은 미꾸리로) 에 막걸리 두 어되 나눠마신 것이 유일하고 화려한 경력이었으니, 술을 마셨으니 당연하게 집엔 못 들어갔고 과외방에서 뻗었던 것이다. 잠결에

"뭐, 이런 자식이 있어"

하는 소릴 들은 것 같다. 그리고 한참 후에 비는 억수같이 오는 데 누군가가  담요와 침구 등을 빨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내가 먹은 걸 확인해 놓은 것을 외출했다 돌아와 잠자던 다른 두 친구는 '뭐, 이런 자식이 있어.'하고
돌아누우며 외면했는데 윤*모 이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오물로 범벅된 담요를 그 빗속에서 빨고 있었던 거다.

그런 친구였다. 그는...

이튿날, 집에 가서 아침상을 마주했는데 도통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이미 다 아실 터인데 헛기침만 몇 번 하시곤 이내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닌 뭔 큰일을 했다고 시원한 국을 끓여 주셨다. 지금의 아버지상(像) 과는 다른 절대군주의 모습이었던 아버지가 그렇게 날 믿어 주셨던 거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가 된 지금 아들을 믿어 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떤 잘못을 해도.. 아버지가 내게 그러셨듯 아들을 믿고 싶다.

 




D:\보충대\투명 수채화 모음 (투명하고 아름다운 풍경 꽃 그림 - 바탕 화면 짱)\수채화모음_1
    200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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