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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저문강 ◇ 30년 전 군대에서 끼고 살았던 정희성 님의 시집 '저문 강~' 아! 그때가 그립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박통 시대만도 못한 쥐새끼 시절이라니. 그 옛날 아버지가 앉아있던 의자에 이렇게 석고처럼 앉아 있으니 즐거웠던 지난날에 모든추억이 내 가슴 깊이 밀려들어요 언제였나요 내가 아주어렸을적에 아버지는 여기 앉아서 사랑스런 손길로 나를 어루만지며 정답게 말하셨죠 그리울 때 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때 말씀이 들릴 듯 해요 이렇게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어머니 눈시울은 젖어 있어요 아버지는 의자하나 남겨놓은채 지금 그 어디로 떠나셨나요 여기 앉아서 나는 꿈을 키워 왔어요 아버지의 체온속에서 따스했던 말씀과 인자하신 미소를 언제나 생각했죠 그리울 때 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때 그 모습이 보일듯해요 더보기
* 친구 1 먼저 머리모양을 이야길 하면서 거론했던 윤*모를 친구소개에 첫손가락에 꼽은 것은 그때가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친구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보여 준 것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서다. 놈은 대전에서 D일보 지국장을 하는데 그건 그의 천직이다. 중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하고 고등학교 땐 태권도 도장의 사범을 하며 신문과 인연을 맺더니 평생을 신문보급소에 매진한다. 나도 직업을 정하기까진 이것저것 많이도 해 봤지만 일단 직업을 정하고는 그냥 한 길로 쭉 내달렸다. 죽을 때까지 하겠단 마음으로... 1972년 여름 이맘때였다. 장맛비가 쉴 새 없이 주룩주룩 내렸으니 7월의 끝 자락이었는지도모르겠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연상의 여인을 사귀는 것이 낯설 때였고 사회통념으로도 용납되지 않던 때였는데, 고2였던.. 더보기
* 대화 장면 하나, 저녁이었다. 컴을 하고 있는데 딸이 내 방으로 건너왔다. "누구세요?" 정색을 하며 내가 묻는다. "이웃집 사람이에요." 딸이 능청스레 대답한다. "이웃집 사람이 노크도 없이 남의 방에 막 들어와도 돼요?" 내가 따진다. "제가 보이세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대꾸한다. 장면 둘, 주방에 있던 딸이 내게 와서 그런다. "아빠, 밥통이 이상해요?" 내가 대답한다. "뭐가? 이어지는 딸의 말. "고장이 난 것 같아요." 어제는 프린터가 이상하다고 하더니 오늘은 밥통이란다. 딸이야말로 밥통인가 보다. 뭐든 손만 대면 작동을 안 하거나 이상해진다. 내가 만지면 금방 괜찮아진다. 뭐, 만진 것도 없다. 그냥 보통대로 스위치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서 모니터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場을 .. 더보기
*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모시겠다.' 아버지를 묻고 온 10월 29일 새벽에 쓰다. 육군 병참학교 이병 매조지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지금, 자동차에 있는 英英사전 맨 뒷장에 [아직도 선명하게] 쓰여 있는 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없이 덧칠해서 써 놨으니.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머닐 제대로 모시지 않고 있다. 못하고 있다. 한 때는, '내 어머니가 비록 문둥이 일지라도 클레오파트라하고 바꾸지 않겠다.'라는 김소운 님의 글에 크게 공감하고 그리 살려 무진 애를 썼었는데, 앞서 쓴 글이 어머닐 모시는데 소홀해진 계기가 되었다. 다시 아버지에 관한 추억을 돌아본다. 1977년 나는 중화동에 살았다. 학원과 체육사를 한 정거장 사이를 두고 운영하고 있었다. 점심은 자전거를 타곤 집에 가서 먹곤 했었다.. 더보기
◆ 김장 40년쯤 전의 이야기다. 그때는 김장이 큰 연례행사였고 각 가정의 가장 중요한 부식이기도 했었다. 연탄 몇 백 장, 김장 한두 접이면 웬만한 가정에서 겨울 준비는 한시름 놓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요하고 고민도 많았던 김장에 얽힌 이야길 하려 한다. 동생과 세 살 치이다. 동생이 3학년쯤 때의 일인 것 같다. 명절 같은 때 가끔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다시 어머니께 확인 해야 정확한 시점을 알 것 같다. 근데 그 1~2년, 시차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용이 중요한 것이니 그냥 진행한다. 8식구의 김장으로 거의 2접(200포기)의 김장을 소금에 절여놓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소를 넣는 작업을 하는 어머니께 용돈을 달라는(사실 그때는 용돈의 개념도 없었다.) 필요하면 떼쓰고 그러면 야단이 돌아오거나 야단을 칠.. 더보기
*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모시겠다.' 아버지를 묻고 온 10월 29일 새벽에 쓰다. 육군 병참학교 이병 매조지 지금, 자동차에 있는 英英사전 맨 뒷장에 (아직도 선명하게) 쓰여 있는 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없이 덧칠해서 써 놨으니.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머닐 제대로 모시지 않고 있다. 못하고 있다. 한 때는, '내 어머니가 비록 문둥이 일지라도 클레오파트라하고 바꾸지 않겠다. '라는 김소운 님의 글에 크게 공감하고 그리 살려 무진 애를 썼었다. 앞서 쓴 글 (나는 에이즈 환자였다.)이 어머닐 모시는데, 소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시 아버지에 관한 추억을 돌아본다. 1977년 나는 중화동에 살았다. 학원과 체육사를 한 정거장 사이를 두고 운영하고 있었다. 점심은 자전거를 타곤 집에 가서 먹곤 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