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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흐름(時流)

◆ 대동강 맥주


 

               북한 대동강 맥주 광고 동영상입니다.
('저작권 제한으로 회원님의 국가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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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먼 북쪽 지방에서 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는 언제 물러갈지 모릅니다.

 먹을 것도 점점 떨어지고 땔감도 점점 찾기 힘듭니다.

 “이대로 더 가다간 한두 달 이상 더 버티지 못할지 몰라.”

 밖에서 쉽게 눈에 띄는 얼어 죽은 까마귀를 봐도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갑자기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폭설이 내려도 ‘이 겨울이 물러갈 생각을 않는 군’하고 속으로 걱정은 좀 되지만, 이것 역시 그렇게 신경이 많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개나리 가지에 파릇파릇 봄독이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실개천 얼음 밑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죽은 까마귀를 봐도, 눈바람이 치고, 폭설이 내려도 쿨쿨 잘 자던 사람이….

 

 # 따뜻한 남쪽 지방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사는 곳은 늘 화창한 날씨입니다. 길가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들에는 오곡이 무르익고 나무에는 온갖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그러니 먹을 걱정도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갑자기 어두컴컴해지더니 싸락눈이 쏟아졌습니다.

  남쪽 사람은 몹시 겁이 났습니다. “이러다 겨울이 오는 것은 아닐까.”

  추운 곳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는 상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주위의 아름다움에 가슴 한번 설레 본 적이 없는 이 사람이 싸락눈에 잠자리에서 뒤척거렸습니다.

 

 # 북쪽 사람이 보고 그토록 감격한 개나리 가지에 망울이 진 모습은 남쪽 사람에겐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남쪽 사람에겐 얼음 밑에 물 흐르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남쪽 사람이 그처럼 걱정이 된 싸락눈은 늘 눈바람과 폭설에 시달린 북쪽 사람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사는가에 따라 희노애락을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 3일 북한 조선중앙TV에서 대동강 맥주 광고를 방영했습니다. TV에서 특정 상품을 광고한 것은 북한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2분40여초짜리 이 광고는 형식도 자본주의 광고와 똑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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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쾌한 경음악에 맞춰 카피에 시각적 효과까지 자극한 이 광고는 우리가 보기에는 매우 촌스러운 것이지만, 북한 사람들의 눈을 동그래지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 자본주의에서 늘 광고 속에 파묻혀 성장한 남쪽 사람들에겐 북한에서 이 광고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광고가 방영된 사실도 단순 간단하게 보도하고 넘어갔습니다. 일부 매체는 아예 보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에겐 핵무기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말입니다.

  남쪽 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사인 북한 관련 뉴스는 “북한이 핵실험했다” “미사일을 발사했다” 등의 보도입니다.

  따뜻한 남쪽나라 사람들은 언제 추위가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한 것입니다.

 

 # 반면 북한 사람들에겐 핵실험이니 미사일 발사니 별로 놀랍지도 않은 뉴스입니다. 이런 뉴스는 추운 북쪽 지방에 눈바람이 한 번 더 휩쓸고 지나간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들에겐 이런 눈바람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뜩 TV에서 나타난 광고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들이 알고 있는 '광고'란 단어는 자본주의에서만 쓰는 단어지 사회주의에서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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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도 자본주의로 가는 걸까.”

  “이것만 보고 개혁개방이라고 떠올릴 순 없지만 그래도 계속 청개구리 짓만 하다가 오랜 만에 남 하는 대로 따라하네.”

  적어도 이번 광고를 본 북쪽 사람들은 머리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 복잡할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오랜 만에 얼음장 밑에서 물소리를 들은 격입니다.

 

 # 북한에서 살았던 나 역시 거기서 광고를 보았더라면 가슴이 설레었을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듯이 그 광고에서 뭔가 희망을 찾으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북한 관련 문제에 대해 이런 저런 진단을 자주 내놓곤 했지만 이번 맥주광고는 솔직히 정말 종잡기 힘들었습니다. 북한이란 나라에선 맥주가 없어서 못 마시지, 저렇게 광고를 해야 팔릴 그런 나라는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생뚱맞게 광고라니요...

  여기 북한 전문가들은 ‘주민들에게 신심을 주기 위해 또는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맥주 광고를 방영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광고가 나간 뒤에 북한 주민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아니, 갑자기 끈금 없이 웬 광고냐”고 묻자 북한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잘 살게 될 거니 희망가지라 이런 소리 아니겠습니까”하고 대답하더군요. 여기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과 일치합니다. 진실 여부는 여전히 알 순 없지만 만일 북한 당국이 이런 식으로 신심이나 희망을 주겠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환영입니다.

 

 # 이번 광고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또 다른 생각도 해봅니다. 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예전에 이런 글을 보셨을 것입니다.

  1992년에 개혁개방을 찬양하는 ‘여인은 달이 아니라’라는 중국 드라마가 평양에서 상영되다가 김정일의 진노를 사 도중에 방영중단이 됐다는 내용을 말입니다. 이처럼 북한이 김정일에게 완전히 장악돼 있는 듯해도 그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개혁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번 광고도 혹시 그런 현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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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눈바람, 칼바람, 폭풍우가 몰아치던 북쪽만 바라보다가 오랜 만에 맥주처럼 ‘시원한’ 소식을 접해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설사 북한 당국이 주민을 상대로 펴는 심리전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심리전은 남쪽나라서 사는 나까지 기분이 좋게 만드네요.  

글 출처: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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