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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 봉지


세탁소에서 문자가 왔다.
 '세탁물 있어요. 찾아가세요.'
세탁물을 맡긴 기억이 없는데, 뭔 소리?
세탁물 맡기면, 제때 칼 같이 찾지 차일피일 미루며 오래 두는 성격이 아닌 데 말이다.

한 사장이 딸 기숙사에서 쓸 컴퓨터 구매하는 데 봐 달라기에 라면 끓이려고 렌지에 물 얹다 말고 테크노마트로 달려갔다. 16시 30분이었다. B 컴퓨터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세탁소에 들렀다. 아줌마가 세탁물을 얼른 찾지 못한다. 내가 맡긴 것이 없을 거라며 
 "어차피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니 나중에 찾아서 연락 주시지요. 맡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랬다. 세탁소 아주머니 曰, 
 "세탁물 바로바로 찾아가시는 분인 것은 아는데, 
분명하게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세요." 그런다. 아줌마가 다시 컴을 두드려 확인하고 나서야 바지를 찾을 수 있었다. 

 "1,700원 벌었네요." 아줌마가 그랬다.
 "바지 하나 벌었군요." 내가 그랬다. 이거야말로 윈윈이다. 너도 이익이고, 나도 이익이니.
작년 10월에 마트에서 바지 하나 사서 기장을 줄인다고 마트 내에 세탁소에 맡기고,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마침 입을 철이기도 하니, 어쨌든 누군가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마트에 들른 김에 뭘 살까? 하다가 아들이 우유 사오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여간해서 비닐봉지를 받아오지 않는데, 아들은 가끔 봉지를 들고 온다. 그것 꽤 귀찮다. 비닐봉지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꼴이 보기 좋진 않다. 상자를 사용할 만큼 물건이 많지 않으면, 1층 A/S 창구에 들러 종이 봉투를 달래서 쓴다. 우유와 요플레 그리고 두부, 막걸리 한 병이 산 것의 전부라 늘 하던 것처럼 봉투를 달래러 갔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하여 직원에게 그랬다.
 "봉지 한 장 주세요."
말을 못 알아듣고, 눈이 동그래진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여직원에게 장난스럽게 그랬다.
 "내가 벙어리거든요." 이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장난이 이어졌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세요. 내 입을 쳐다보세요. 나 벙어리라고요."
 "예?, 반문하며 당황해 어쩔 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리 내지 않고 말을 했던 것이다.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눈을 가리키고 입을 다시 가리키며 입 모양을 보라고 손짓을 하며 입 모양을 정확하게 만들며 말했던 것이다. 
 옆에 직원을 살짝 부르는데 그제야 소리 내어 그랬다.
 "내 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요? 내가 벙어리라고요. "하며 시원하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옆의 고객들은 뭐 이런 사람이 있어? 하는 뜨악한 표정을 짓고, 응대하던 여직원과 동료 직원들은 곤란한 지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드는지 나를 마주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계산대에서 계산하며, 돌아보니 옆에 직원 한 번 보고, 나 한 번 보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비닐이든 종이든 봉투와 봉지라는 말을 같이 쓰지만, 나는 비닐은 봉지(封紙)라 부르고, 종이는 봉투(封套)라고 부른다. 봉지는 여성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 비닐이 스적거리는 소리는 가을바람에 낙엽 구르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기야 봄날인 지금 현관 밖에서 바람을 안고 뒹구는 낙엽이 같은 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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