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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M)스트리트/돈

* 노프-터널

터널 속을 걸으며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생각이 많은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란 것은 알지만, 그래도 삶이 생각의 연속이고 그로 말미암은 행동이 수반되는 것이라면 깊은 생각이란 것이 그리 쓸모없는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니겠다. 지금은, 생각이나 행동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열악한 지경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태도가 돋보이고, 빛을 발한 날이 있을 것이란 자위를 한다. 자위? 손가락 다섯 개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럴 땐, 좋다.

이윽고 터널 끝이 보였다. 벗어난 시각은 19시 10분.
밖은 온통 암흑천지였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오래 신은 등산화는 터널 중간에서 밑창이 떨어져 나가 밖에 나오니 물구덩이를 밟은 탓에 바로 양말을 적시고 있었다.

작년 4월쯤, 그녀와 욕실에서 격렬한 정사를 하고, 방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고 그걸 바라보던 그녀와 바로 앞의 식당에서 식사하고 사진 찍은 추억이 있던 양수리의 동*장이란 모텔에


하필 일용 잡부를 요구하는 현장 소장(하청이 아닌, 기묘한 형태의 동거) 이하, 최*호 팀장/소장 이하 몇 놈이 묵고 있다. 난 일용 잡부의 신분으로 터널 속에서 작업 보조를 한 터이다.


단둘이 작업하는 내내 되먹지 않은 팀장 겸 소장이라는 최*호의 무식함을 고함으로 질타를 하곤 했다. 일용 잡부의 처지에서 내게 일당 8만 원을 주는 사용자를 질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들보다 많이 깨어 있거나, 실력이 있다든가 사회적인 약자가 아니란 자의식이 강한 탓이리라. 하기야, 나이 50이 넘어 어떤 처지이든 세상에 꿀릴 것이 무엇이고, 사그라질 일이 무에 있겠는가? 이미 죽음까지도 친한 친구로 받아들일 나이에..,

돈山(노가다의 내 표현)에 오른 지 꽤 됐다. 9월에 3번 10월에 11번. 100번은 채우고 말리라.
주식 시장이 곤두박질 칠 때, 한 걸음 멀찍이 떨어져 볼 필요를 느껴, 토요일과 일요일에 도서실에 짱 박혀있는 것을 잠시 바꿔 토, 일요일과 공휴일엔 노가다 현장을 철저하게 경험하리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새삼 젊어서 노가다를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었다.
그렇긴 해도, 그땐, 도리어 어떤 상황이라도 유유자적 즐길 수 있는 경륜이 없었기에 견디지 못했거나 얻는 것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작년에 신문 돌리기를 딱 100일 동안 했듯, 이번에도 100일을 유효 시한으로 정해 놓고 있다.
나중에 몇백억의 재산가가 돼도 노가다 판을 어쩌다 슬쩍 기웃거릴 마음을 다잡는다. 몇 날 겪지 않은 경험에서 느낀 것을 어지간히 핍박하고 일용 잡부를 무시하는 최 팀장 겸 소장에게 쏟아 부었다.
"노가다는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있었고, 현대 직업이 수십만 가지라고 해도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진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계속 돼도 존속할 직종이고 직업이다. 그것을 좀 더 고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KT의 광케이블을 터널에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집에 전기 관련 일은 전구를 갈아끼거나 간단한 전기용품을 마구잡이로 뜯어고치는 일 정도만 했고, 할 수 있는 나였는데, 처음 작업인 터널 안 광케이블 공사에 당연하게 기구의 이름이나 작업 순서(속칭 일머리)를 모르는 것이 당연할 터. 생긴 것도 유격장의 조교 같은 최 팀장이 내게 육군 이등병보다도 못한 대우를 하기에 도리어 심하게 야단을 했다.

"최 팀장, (때론 최 소장이라고도 불렀다-그의 명함에 팀장/소장이라고 적혀 있기에..,)
이봐, 당신은 이게 일상이지만, 그리고 20년 가까이해 온 일이라며, 난 이게 처음이야, 그럼 좀 더 친절히 설명하는 게 옳지 않아! 당신이 작업하는 만큼 수입이 있다고 했지. 난 일용 잡부에게 맞는 만큼의 일을 하면 되는 거야. 물론, 내 의식으로 당신의 일에 최대한 협조하겠지만 말이야."

 그런 큰소리 후로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일반적인 잡부는 그가 뭔 소릴 해도 그냥 참거나, 나중에 씨부렁거리는 것이 태반이었다. 나도 노가다 판에서 어지간하면 참고 마는 미덕(?)을 가질 각오였다. 최*호를 비롯한 하청 소장이 함부로 된 언어를 남발하는 것은 그들의 단조로운 작업과 누군가의 위에 서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의 발산인 것 같다. 본사의 김 부장은 그래도 말이 통했었다. 매조지 별 볼일 없어도,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서도 한 달만 같이 생활하면 그들에게 끌려가기는커녕 내게 동조하거나 아주 반감을 갖게 할 수 있다. 설사, 이번처럼 그들이 돈을 주는 처지라도.

어제 터널 벽에 드릴로 앵커 구멍(wall  anchor) 뚫는 작업을 하는데, 시작할 때(이것도 전에 경험이 없는 첫 작업이었다.) 같이 간 동료가 드릴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고 하여 무조건 바꿔 주고 동작을 해 보니 안 되었다. 하여, 최 팀장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소리소리 질렀다. 이것도 못 하느냐고, 알고 보니, 스위치의 위치를 하나 바꾸면 되는 거였다. 일반 드릴과 암벽을 뚫을 수 있는 기능의 차이였다. 무안할 정도로 상대의 인격은 왕 무시하고 소리소리 치는 최*호 팀장에게 맞고함을 질렀다. 그보다 더 큰 목소리로 "드릴 써 본 사람도 공구에 따라 사용법을 모를 수 있는데, 뭔 벼슬이라고 마구 소릴 지르고 난리냐? 그것 알려주는 데 30초가 걸리느냐? 1분이 걸리느냐 단 몇 초면 되는 것을..," 하고
변명 비슷하게 하는 말이, 사용법을 안다고 하지 않았느냐? 솔직하게 말했으면 내가 그렇게 화내지 않았다고?
내가 그랬다. "난 군대 졸병도 아니고, 무조건 안다고 한 적 없다. 하지만, 해 보니 되었는데 동료 것을 바꿔주고 보니 작동을 안 하더라. 비겁하게 그런 식으로 넘어가지 말고, 자지 단 놈들끼리 솔직해라." 그리고 하루 일과가 끝나고 같이 간 3사람 중 낼 자기와 작업할 사람으로 날 지명한 거다. 그가 되지 않게 마구 소릴 지를 땐 그랬다. 다 듣고 있으면서 대 놓고 "더 큰소리로 말해라.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라고.., 그냥 해도 알아듣기 어려운 경상도 오리지널 사투리에 상대를 안중에도 없이 떠드는 꼴을 고이 봐 줄 수는 없었다.

같이 작업 나간 국방부 군무원 출신이며 나보다 한 살 적은 '정'과 노가다 판에 상대적으로 오래된 '박'도 찍소리 못하고 있음에도, 나는"도 아니면 모이듯" 그 정도는 말발로든, 행동이든 컨트롤 할 자신이 있었고, 그랬기에 나중엔 부러 반말을 일삼았다. 존중을 받고 싶으면, 상대를 존중해라!
대인 관계의 첫 번째 수칙이다.
터널 길이가 4.4km였다. 작업시간과 트레일러에 공구 싣고 이동하는 시간이 비슷했다. 작업 중간마다 최 팀장에게 정신교육(?)을 시켰다. "아무리 무식하다는 노가다 판이지만, 노숙자들이 될수록 노가다라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이해하겠다. 무시로, 인격을 무시하는 노가다 판이 싫은 거란 것을 최 팀장을 보며 알겠다."라고도 했다.

그리 따지면, 노숙자들은 대단한 자존심의 소유자들인가?

소위 3D 업종이란 곳에 사람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은 인간적인 멸시를 견디지 못하거나 타고 넘을 지략이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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