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돌마낫적~땅보탬/가고문헌(價考文獻)

◆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이 땅에 목사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목사님은 몇 분 안 된다.
내가 아는 목사는 없다, 하물며 목사님은 아는 분이 있을 리 없지.
아니, 나는 고명한 이름이라도 알고 있지만, 그분이 모르시는 것이리라.

이 땅에 독재 정권이 서슬 퍼렇던 시절.
맨 앞에 서서 온몸으로 맞섰던 이 중에 '문익환 목사님과 장준하 선생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장준하 선생님은 먼발치로도 실물을 뵈온 적이 없다.
문익환 목사님은 먼발치로 몇 번 뵈온 적이 있다. 물론 선생님이 나를 아실 리는 없다.
명동 성당 등의 집회에서 일방적으로 뵈었을 뿐이다.

3월 22일 지난 일요일이었다.
연예 기사를 일부러 클릭한 적은 없다. 뉴스 등에 끼어 있는 것을 무심코 클릭하는 수는 있어도.
그만큼, 연예계에 대한 관심은 멀다. 그런 내가 '무릎팍 도사'를 찾아보았다.
문성근이가 출연했단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그렇다고, 문성근 씨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문익환 목사님의 자제이고, 그래도 뭇 연예인에 비해 호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우리 역사의 한 가닥 굵은 선을 그은 분들이다.
일제에 맞서 싸운 방법이 각자 달랐지만, 그 혼은 많은 사람이 우러르게 한다.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유명한 것은 그의 맑고 곧은 정신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장준하는 사상계의 지면을 김지하에게 내어 주어 '오적'이란 담시를 발표하게 했었지요. 
을사오적 이완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이지용을 연상시키는 박정희 정권의 부패한 오적촌을 풍자한 詩 말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이미 1989년에 '통일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는 신념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하고 돌아와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옥살이 하였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무미건조한 일요일에 위 세 분의 이야길 들은 것은 유익했다.
* 문익환 선생님은 함석헌 선생님을 함석헌 옹(翁)이라 부르는 것처럼
    옹(翁)을 붙여 부르는 것이 왠지 낯설다.

                   
                동주야


                                                          -문익환-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으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돌마낫적~땅보탬 > 가고문헌(價考文獻)'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역사 2  (0) 2008.10.29
◆ 역사 1  (0) 2008.10.29
◆ 아부  (0) 2008.09.26
◆ 오사카 상인들  (0) 2008.09.20
◆ 환율  (0) 2008.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