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RED BULL RAMPAGE

 

 

그럴 일이 거의 없지만,

생활이

따분하고 지루하며,

무료하고 심심하여

如嚼鷄肋, 닭의 갈비뼈를 씹는 듯 맛이 없을 때

이런 동영상이라도 보며 스릴을 간접경험하여

세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이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에 두루 쓸모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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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 장군

 

 

덕산 김재규님 옥중유언


김재규는 사형 집행이 되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23일에 자신의 사형집행이 바로 다음날로 다가와 있음을 직감했다. 당시 교도소 관계자들이 주요 재소자 관리를 위해 비밀리에 녹음기를 품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김재규는 유언을 남긴다.


[오늘 얘기는 이 세상에서 내가 남기는 마지막 말이 될 것 같군. 잘 녹음 했다가 역사에 전해주면 고맙겠소]


자신의 운명을 내다본 김재규는 사형당하기 이틀 전인 5월 22일 모친과 부인 등 가족들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면회를 했다. 김재규는 이날 부인 김영희 씨 등에게 <금강경>의 내용을 인용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당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낼 지니라--」이라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고 한다.


마지막 날인 5월 24일 새벽 4시쯤. 교도소 측은 달걀과 사과, 커피를 특별메뉴로 제공했으나 김재규는 손도 대지 않았다. 대신 쇠침대에서 뛰어내리면서 교도소 관계다들에게 손으로 권총 모양과 포승 모양을 지어 보이더니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교도소 측이 아무 답변을 하지 않자 그는 “안개 피우지 마라. 사나이가 가는 길은 알고 가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하고는 5분간 냉수마찰을 한 뒤 새옷으로 갈아입고 길을 따라 나섰다. 식사를 하지 않고 냉수마찰을 한 것은 이승에 남기고 갈 마지막 흔적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가 형집행 직전 비굴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는 일각의 소문에 대해 당시 관계자들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증언했다. 한 관계자는 “김재규는 전혀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끝까지 의연한 태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형 집행 직전 “남길 말이 있으면 하라”는 검사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훗날 전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전날 이미 자신의 유언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늘이 5월 23일, 이른 아침이군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길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최후의 날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내 소회(所懷)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나는 금번 1심․ 2심․ 3심, 즉 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 재판까지 세 번의 재판을 받았지만 나는 또 한 차례의 재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제4심인데, 제4심은 바로 하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어요.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그런한 재판만이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명확히 얘기 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 나는 이미 이겼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목격했던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가 회복이 되고 그것이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들 이렇게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물결은 세차게 흐르기 시작해서 이 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있다.’ 이것은 천하 공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어서 순조롭게 민주회복이 돼 나가지 못하고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며 천하의 대세는 사람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서 이런 비유를 하나 들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던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겠느냐.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회복에 있어서도 나의 희생 없이 이 나라의 민주회복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보장되었다’고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고마움을 애절하게 느끼는 부류의 국민들도 있고, 그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부류도 필요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부류도 없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죽음, 즉 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동시에 자유민주주의가 절대 필요하고 자유민주주의는 절대 회복돼야 하겠구나 하느 것을 전체 국민이 아주 확실히 깨닫게 되고 또 그것을 확실히 자기 몸에다가, 목과 자기 가슴에다가 못 박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번에 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한 민주주의 나무의 기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된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고 또 보람으로 생각하고 매우 즐겁습니다. 나의 심정을 바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나의 뜻을 바로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리고 내가 명확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집권욕을 가지고 10•26 혁명을 했다. 이러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사를 담당했던 분들이라든가 혹은 재판을 담당했던 분들, 또 일부 유신체제의 중요한 위치에 밀착되어 있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만 집권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직 대통령을 희생시키는 일을 하면서 그 국가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그 집권이라는 문제는 내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특히 나는 10•26 혁명을 사실은 1973년 10월, 즉 10월 유신이 반포되고 헌법이 반포된 직후에 그 헌법을 보고 그때부터 안 되겠다. 이 유신체제는 독재체제인데 이것을 깨야 되겠다고 이미 발상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나는 네 차례에 걸쳐서 여러번 이 혁명을 구상했었고, 또 이런 물리적인 혁명에 의한 방법이 아닌, 그야말로 박 대통령 스스로가 이것을 시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기 위해 수백 번 건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는 부득이 내 목숨 하나를 바치고 그렇게 해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추호도 집권욕을 가지고, 집권을 하기 위해서 나의 가장 가까웠던 대통령을 희생시켜 가면서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나의 진의를 그대로 파악하지 못한 인간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백 번 죽어가도, 내가 집권을 하기 위해 대통령을 희생시키고 혁명을 했다는 것은, 내가 하늘에 맹세하고 말하건대, 그러한 일이 없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고마움, 민주주의의 귀중함, 또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지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또 우리가 민주주의를 등한시 하면 꼭 민주주의는 우리 몸으로부터 멀어진다고 하는 것, 그런 경우에는 또다시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를 우리 국민들이 이해해주셔야 됩니다. 나는 국민들에게 이것을 간곡하게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이 대세가 어떤 일부세력에 의해 가로막힌다는 것, 이것은 국가적으로 볼 때, 국민 전체적으로 볼 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이분들이 빨리 눈을 떠서 감정을 초월하고 정말로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생각해서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어떤 길이 정도이고, 어떤 길이 진리인가 하는 것을 빨리 깨달아서 국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빨리 바로 잡아줘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정치적으로 혼란이 오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모든 발전의 저해가 되고, 또 국민의 마음은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나아가 어떤 불행한 결과를 자아낼지는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자유민주회복을 위한 우리의 대혁명을 가로막는 이러한 세력들에 대해 진심으로, 마지막으로 진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개인의 감정을 초월하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튼튼한 국기를 위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똑바로 파악을 하고 판단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안 되기를 희망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의 희생이 후일 또 다른 희생으로 파생될지 모릅니다. 그러한 불행이 제발 없어지기를 나는 진실로 바랍니다. 소위 민주회복을 하고 난 이후 이 나라의 민주회복이 무엇 때문에 이리 늦어졌느냐, 또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병들었느냐, 우리 국민들은 민주회복이 되고난 후에 이러한 여러 문제들을 심판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나는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이 재판의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참고적으로 하나 말씀 드리겠습니다. 뭐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일본에 과거 5•26 사태니 2•26 사태니 하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때 그 사람들은 장교들에게만 책임을 지웠지 하사관과 병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들이 잘하고 잘못하고 하는 문제를 초월해서 군대라고 하는 조직이 유지되는 데 있어서는 그 역경에서 전쟁을 수행할 적에 부하들이 명령을 선택적으로 받아서 수행한다고 하면, 만일 이러한 기풍이 있다고 하면 군대는 존립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서 부하라고 하는 것은,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런 관계가 아니면, 군대의 명령계통이라는 것은 존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상관이 명령을 했을 때에 이것이 정당한 명령인가 아닌가 판단을 해서 정당할 적에만 내가 이행을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해봅시다. 전쟁에서 만일 어떠한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적을 보고 총을 쏘라고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정신에 입각해 나는 총을 쏠 수가 없다고 해서 거절했다고 합시다.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조그마한 비유에 불과합니다만,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권을 가진 것이지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안 받아들여지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이번에 이 혁명을 결행하기 위해 내 부하 다섯 명에 대해 강력한 명령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명령을 100%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가지고 아주 완전히 자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나는 이것은 참으로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재판과정에 있어서는 이 문제에 대해 명령을 한 나와 명령을 받아 가지고 이행한 이 사람들의 관계는 충분히 정상참작이 돼 판결이 됐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금요일입니다만, 내 영감으로 마음에 잡히는 것은 내일 토요일, 내일이 오전밖에 일이 없으니까 내일 오전 중에 나의 형을 집행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내 영감으로 잡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염려 없이 아주 유쾌하고 명예스럽게,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자부와, 내가 이렇게 감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확실히 보장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즐겁게 갑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발전과 10•26 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1980년 5월 23일


김재규


 

[나와 자유]


나를 만일 신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의 수호신이라고 부르겠지.


나를 만일 사람이라고 부를 때는

자유 대한의 국부라고 부르겠지.


나 내 목숨 하나 바쳐

독재의 아성 무너뜨렸네.


나 내 목숨 하나 바쳐

자유민주주의 회복하였네.


나 사랑하는 3700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 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지도자

 

김재규


--그가 육군교도소에서 어머니께 전해달라고 강신욱 변호사에게 부탁한 시.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죽인날
70년후 1979년 10월26일 김재규는 일본인의 개, 박정희을 쐈다.

김재규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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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동진 부장판사가 작성한 글 전문이다.

법치주의는 죽었다

판사와 검사의 책무는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은 정권은 때때로 힘에 의한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추구한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국가의 핵심기능을 좌지우지하고,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마음 내키는 대로 통치를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아무리 다수결의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정신의 한 축인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유린하는 것이다.


헌법이 판사와 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면서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하라”고 하는 준엄한 책무를 양 어깨에 지운 것은, 판사와 검사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지 아니한 채 묵묵히 ‘정의실현(正義實現)’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전제돼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판사와 검사에게 ‘신뢰(信賴)’를 부여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들의 심연(深淵)에 있는 출세욕, 재물욕, 공명심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심(私心)을 떨쳐 버려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다.

2013년 9월부터 올해의 이 순간까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 정권은 ‘법치정치’가 아니라 ‘패도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한 소수의 양심적인 검사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관하여 의연하게 꿋꿋한 수사를 진행하였던 전임 검찰총장은 사생활의 스캔들이 꼬투리가 되어 정권에 의하여 축출되었다. 2013년 9월부터 10월까지 검사들을 비롯한 모든 법조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밝히려고 했던 검사들은 모두 쫓겨났고, 오히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덮으려는 입장의 공안부 소속 검사들이 국정원 댓글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이 한 편의 ‘쇼(show)’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각종 언론은 이런 상황을 옹호하면서 나팔수 역할을 하였다. 내가 바라본 2013년의 가을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죽어가기 시작한 암울한 시기였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다. 당연히 구조됐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었다. 인명구조를 담당한 해경의 대응에 직무유기적인 형사책임의 요소가 있었으므로, 마땅히 그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언론보도가 이루어져야 했고, 또한 검찰이 선장과 선원 등을 수사함에 있어서도 해경의 구조 담당자들을 아울러 수사했어야 했다.

그런데 법치주의 정신에 입각해 보면 당연히 진행돼야 할 이러한 과정들이 정권에 의하여 차단이 되었고, 국민들은 현 정권이 뭔가를 은폐한다는 의혹을 품은 가운데 사태가 커지는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에서 현 정권이 승리하면서 이런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아직도 민간기구(특별조사위원회)에게 수사권과 공소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어제 국정원 댓글 판결을 선고하였다.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개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개입’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공직선거에 관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위법적인 개입행위에 관하여 말로는 엄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동기참작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슬쩍 집행유예로 끝내 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판결문을 찾아 출력한 다음 퇴근시간 이후에 사무실에서 정독을 하였다. 판결문은 204쪽에 걸친 장문(長文)인데, 주로 개별적인 증거들의 취사선택에 관하여 장황하게 적혀 있고, 행위책임을 강조한다는 원론적인 선언이 군데군데 눈에 띄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선거개입의 목적』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공직선거법위반죄를 무죄로 선고하였다.

판결문을 모두 읽은 후에, 나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1) 2012년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인데, 원세훈 국정원장의 계속적인 지시 아래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인 댓글공작을 했다면, 그것은 ‘정치개입’인 동시에 ‘선거개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도대체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이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일까?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가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일까? ... 이것은 궤변이다!

(2) 판결문의 표현을 떠나서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독백을 할 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까?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니...』 허허~~ 헛웃음이 나온다.

(3) 재판장은 판결의 결론을 왜 이렇게 내렸을까? 국정원법위반죄가 유죄임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국정원장에 대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였으니, 실질적인 처벌은 없는 셈이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해에 국정원장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리고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 것인가? 이 판결은 ‘정의(正意)’를 위한 판결일까?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立身榮達)에 중점을 둔 ‘사심(私心)’이 가득한 판결일까? ...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다시 돌아와서, 판사님들과 법원 가족들에게 고사 성어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국의 고사 성어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시황이 죽은 후 환관 조고는 권력을 잡고서 허수아비 왕 호해에게 사슴(鹿)을 바치면서 "말(馬)입니다."라고 말했다. 왕인 호해는 "왜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합니까?"라고 말하며 신하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대부분의 신하들이 조고의 편을 들면서 "말이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단지, 몇 명의 신하들만이 "말이 아니라 사슴입니다."라고 진실을 말했는데, 환관 조고는 나중에 진실을 말했던 그 신하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한 마디로 말하겠다. 나는 어제 있었던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2012년 당시 대통령선거에 대하여 불법적인 개입행위를 했던 점들은 객관적으로 낱낱이 드러났고,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명(自明)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백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담당 재판부만 “선거개입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지록위마가 아니면 무엇인가? 담당 재판부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2013년에 형사정책연구원이 성인남녀 17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3%가 “돈과 권력이 많으면 법을 위반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법(法)”을 꼽은 응답자는 43%로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3년 전에 전국의 성인남녀 2937명을 대상으로 한 법률소비자연맹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2%가 “법을 지키면 손해”라고 대답해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4. 3. 26.자 세계일보 참조).

사법부가 국민들의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지록위마의 판결』을 할 때마다, 국민들은 절망한다. 지인들은 나에게 말하기를 “제발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국민들은 더 큰 “뭔가”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제발 상식과 순리가 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논어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이 있다. 신뢰가 없는 곳에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에 여당/야당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 누군가 “편 가르기” 풍조에 입각하여 나를 향하여 “좌익판사”라고 매도한다면, 그러한 편견은 정중히 사양하겠다. 나는 판사로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몰락에 관하여 말하고자 할 뿐이다. ... 법치주의 수호는 판사에게 주어진 헌법상의 책무이다!!!

각주1) 맹자가 ‘왕도정치’라는 개념과 대조해서 언급한 정치 유형으로 ‘패도정치’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권세와 무력으로 천하를 장악하고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를 말한다.

 

 환관 조고 같은 닭에 아부하는 이병균(범균) 판사 놈의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보고 가슴이 답답했는데, 김동진 부장판사의 시원한 글을 서너 번 읽으며 그래도 법조계에 사람이 있음을 확인하고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해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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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2014:05:03 01:25:54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 국민들에겐 “나도 서울을 지키고 있다”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거짓말이었다.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

 

자기만 먼저 탈출한 선장, 승객들에겐 “동요 말고 제자리를 지켜라”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다.

 

의주로 도망간 선조, 임진강변 건물과 배 다 태워버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 그 사건 현장에 당도한 그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애처롭게 죽어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호걸이란 성군문왕의 다스림이 없이도 태어난다고 맹자가 말한 그 리더십의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다.

 

이 시대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 맹자는 통치자가 진정 생도(生道)의 원리를 가지고 다스리면 죽는 사람도 죽음을 원망치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주류 언론들이 이 기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소재가 있는 모든 행정조직, 또 세모-청해진과 같은 음흉한 범죄기관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펴지만 이것은 사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박근혜에게 무소불위의 과거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활용하여 도덕적 제스처의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면 목전의 선거에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도올은 선포한다: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규제를 왜 푸는가? 그대의 규제풀음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

그대는 “국가개조”를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칙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창출한 새로운 기관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

김용옥 교수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낙문고언(樂聞苦言)이다. 쓴 말을 듣기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

 

* 위의 글은 오늘(2014. 05. 02. 금요일)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겨레 신문에 특별 기고한 격문(?)의 전문이다.

한겨레 신문에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 글을 쓸 수 없어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가져왔다. 이점 신문사 측에 미안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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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하야

 아랫글은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게시된 글입니다.

글쓴이는  <정송은 조회수 9131 공감수 1356 > 입니다.

다음 메인에 뜬 기사를 쫓아 봤는데 구구절절이 옳은 생각이라 퍼 왔습니다.

꽤 오래전에 블로그 활동을 접었음에도 이 글은 역사성(?) 있다는 생각에 티스토리에 보관하기로 마음먹었다.

복잡한 일상이 아니면, 조목조목 내가 할 말이었다.

 

 

숱한 사회 운동을 지지했으나 솔직히, 대통령을 비판해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 잘못을 요목 조목 따져 묻겠다.
지금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를.


대통령이란 직책, 어려운 거 안다. 아무나 대통령 하라 그러면 쉽게 못 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쉬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물러나라 라는 구호는 너무 쉽고, 공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아무리 무능해도 시민들이 정신만 차리면 그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임무를 수행 해야할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놓쳤다.

첫째, 대통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몰랐다.

대통령이 구조방법 고민 할 필요 없다.
리더의 역할은 적절한 곳에 책임을 분배하고, 밑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밑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아래 사람들끼리 서로 조율이 안 되고 우왕좌왕한다면 무엇보다 무슨 수를 쓰든 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행부 책임 하에서 잘못을 했다면 안행부가 책임지면 된다. 해수부가 잘못했으면 해수부가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각 행정부처, 군, 경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가 책임소관을 따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면, 그건 리더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다. 나는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모든 행정부를 통솔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딱 한 명 밖에 모른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했어야 할 일은 현장에 달려가 상처 받은 생존자를 위로한답시고 만나고 그런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 왜 못하냐, 최선을 다해 구조해라’ 그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잘 못하면 책임자 엄벌에 처한다’ 그런 호통은 누구나 칠 수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왜 쇼핑을 못 한답니까?’ 그런 말 하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공인인증서 폐기하라고, 현장에 씨씨티비 설치하라고, 그러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통령에 책임이 있는 거다. 대통령? 세세한 거 할 필요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일이 안 되는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는 일, 뭐가 필요하냐 묻는 일. 그냥 해도 될 일과 최선을 다할 일을 구분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포기할 일과 안 돼도 되게 해야 할 일을 구분해주고, 최우선 의제를 설정하고 밑의 사람들이 다른 데 에너지를 쏟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일, 비용 걱정 하지 않도록 제반 책임을 맡아 주는 일
영화 현장의 스탭들은 감독이나 피디의 분명한 요청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 돼는 일도 되게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어려운 일을 되게 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오버 된다. 이 오버된 제반 비용에 대한 책임. 그것만 누군가 책임을 져 주면, 스탭들은, 한다.

리더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안 돼도 되게 하려면’
밑의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것이 구조 작업이던 뭐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면 무조건 돈이 든다. 엄청난 돈이.
만약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건 대통령이 정말로 누군가의 말단 직원인 적도 없었고 비용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다는 얘기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 리더가 너 이거 죽을 각오로 해라. 해내지 못하면 엄벌에 처하겠다 라고 협박만 하고 비용도 책임져주지도 않고, 안 될 경우 자신은 책임을 피한다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구하는데 돈이 문제냐 하지만, 실제 그 행동자가 되면 달라진다. 유속의 흐름을 늦추게 유조선을 데려온다? 하고 싶어도 일개 관리자가 그 비용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누군가 그런 문제들을 책임져주면 달라진다
“비용 문제는 추후에 생각한다. 만약 정 비용이 많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
그건 어떤 민간인도 관리자도 국무총리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힘 없는 시민들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전혀 남 일인 것 같은 사람들조차 작게나마 뭘 할 수 있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었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접 시정할 수 있었던, 해외 원조 요청을 하건 인력을 모으건 해양관련 재벌 회장들에게 뭐든 요청하건,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그 많은 걸 할 수 있었던 대통령은 구조를 위해 무슨 일을 고민했는가?

둘째,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정부는 필요 없다

대통령은 분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왜 지휘자들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안았을까?
그것이 한 두 번의 명령으로 될까?

날씨 좋던 첫째날 가이드라인 세 개밖에 설치를 못했다면, 이러면 애들 다 죽는다. 절대 못 구한다 판단하고 밤새 과감히 방법을 바꾸는 걸 고민하는 사람이 이 리더 밑에는 왜 한 사람도 없었는가? 목숨걸고 물 속에서 작업했던 잠수사들, 직접 뛰어든 말단 해경들 외에, 이 지휘부에는 왜 구조에 그토록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는가?

밑의 사람들은 평소에 리더가 가진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급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리더가 원하던 성향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평소 리더가 어떨 때 칭찬했고 어떨 때 호통쳤으며, 어떨 때 심기가 불편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리더가 평소에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던 말 하지 않아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한다.

쌍용차 사태의 희생자들이 분향소를 차렸을 때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 한 중구청장은 그들을 싹 쫓아냈고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죽어가도 아무도 그걸, 긴급하게 여긴 적이 없고
모두 살기보다 일부만 사는 게 효율에서 좋고.
자살자가 늘어나도 복지는 포퓰리즘일 뿐이고.
세 모녀의 죽음을 부른 제도를 폐지하는 데에 아직도 대통령이 이끄는 당은 그토록 망설인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을 ‘징징대는’ 정도로 취급하고
죽겠다 함께 살자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뿌렸다.
이곳에선 한번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아직도 이들에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고, 대의가 더 많다.
‘사람은 함부로 해도 된다’ 는 이 시스템의 암묵적 의제였다.

평소의 시스템의 방향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던 상황에서
이럴 때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를 하면,
밑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진심으로 아이들의 생명이 걱정되어서 그런 지시를 내린 건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줘라 라는 뜻인지,
정부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구조를 하라는 건지,
여론이 나빠지지 않게 잘 구조를 하라는 얘긴지,
헷갈리게 된다.
대책본부실에서 누가 장관에게 전했다.
“대통령께서 심히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말이 ‘아이들의 안위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지
‘민심이 많이 나빠지고 있어 자리가 위태로워질 걸 염려한다는’ 건지
밑의 사람들은 헷갈린다.

대신 지시가 없어도 척척 움직인 건
구조 활동을 멈추고 의전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재빨리 대통령이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을 세팅한 사람들
대통령은 잘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라고 사설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
재빨리 불리한 소식들을 유언비어라 통제할 줄 알았던 사람들.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애를 쓴 사람들.
선장과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한 사람들과
순식간에 부르자마자 행진을 가로막고 쫙 깔린 진압 경찰들이다.

이것은 이들의 평소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소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내가 선거 때 박근혜를 뽑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가 친일파라서도 보수당이어서도 독재자의 딸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남일당 사태 때 보여준 반응, 자신의 부친 때문에 8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안타까움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 대해 그토록 가벼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리더의 잘못을 여기에 있다.
밑의 사람들에게
평소 사람의 생명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잘못된 의제를 설정한 책임.

셋째,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막대한 권한과 비싼 월급, 고급 식사와 자가 비행기와 경호원과 그 모든 대우는 그것이 [책임에 대한 대가] 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선 어떤 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알겠는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결정적으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덧붙임.
세월호 선장들과 선원들이 갖고 있다던 종교의 특징은
단 한 번의 회개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이라 한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거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내 댓글:

 나도 59셉니다.
물리도 깨우친 게 없고, 세상의 이치도 모르는 당신은 한국의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생명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도 없습니다.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국민과 자신을 위하는 길임을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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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시국선언

 

 

다음은 충남 금산 간디학교와 인천 강화 산마을고등학교, 충북 제천 간디학교,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학생회가 지난 29일 발표한 시국선언문 전문이다.

 


시국선언문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도난당해 여기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타인이 빼앗아 가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되찾으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의 물건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가져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열심히 쌓아온 것을 한순간에 도난당했습니다. 이번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온 국민을 상대로 한 엄청난 도난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리고 선거는 민주주의 꽃입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이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리고 교과서에서 이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과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더 했고, 공부하면 할수록 국가의 주인이자 주체로서 우리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쉽게 모인 것은 아닙니다. 학생회의 이름을 걸고 행하는 일인 만큼 가벼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학생총회 등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직접 참여를 하지 않는 학생들과도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려가 된다는 친구들의 말에 이번 선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습니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움직여야할 국가권력이,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될 국가기관이 특정 대선 후보의 지지와 다른 대선 후보를 깎아내리는 데 마구잡이로 동원되었습니다. 국정원 정치개입의혹이 대선 전부터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과 후보 측에서는 오리발만 내밀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의혹이 불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왜곡하여 이슈화시키며 국정원 정치 개입 사태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을 하루 앞두고서야 수사에 착수했고 경찰은 신속한 수사라는 명분하에 수사 규모를 축소했습니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하는 일, 더욱이 의도적으로 국민의 시야를 흐려 그 일을 은폐하려 드는 일은 민주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현 정부를 비롯한 집권 여당은 그런 만행을 버젓이 저질러 왔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을 완벽히 무시하는 행위이며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입니다.

예로부터 나라의 근간은 백성이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국민의 아픔을 치료하고 보듬어주는 의사여야 합니다. 국가를 위한다는 핑계로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알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연행하는 행위가 과연 국가를,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시국선언 준비를 하는 도중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습니다. 고등학생이 시위 중 최루액에 맞았다는 내옹의 기사였습니다. 순간 4·19 혁명의 불씨가 된 김주열 열사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1960년대 수준으로 퇴보하려는 것일까요?

대학생, 교수, 퇴직 경찰, 시민 단체 등이 연이어 시국선언을 하였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여당은 국회에서 그제야 국정조사 실시를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여태껏 공공연히 행해져 왔던 국정원 정치 개입을 이제는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요구합니다.

- 국정원 사건 관련자들을 지연, 학연, 기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수사하여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합니다.
- 국정원이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대통령 차원의 예방책을 마련하고 국정원을 개혁할 것을 요구합니다.
-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빼앗긴 것은 민주주의입니다. 국가와 국민은 민주주의라는 꽃을 함께 키우고 피워 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가 권력이 민주주의라는 꽃을 짓밟아 시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론을 조작하고 사건을 은폐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권력의 등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

 

1960. 04. 19.

수송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위.

 

 

 

 

 

 

 

 

 

 

                                                                      

 

                                                                             故 진영숙 (한성여중 2학년)

                                                      4.19 미아리 시위 중 총상 사망.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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