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 파리

저 작은 파리야
여름날 네 노는 것을
無心한 내 손이 쓸어 버렸구나
나는 너 같은
파리가 아니냐
아니면
네가 나 같은 사람이 아니냐
그 어떤 앞 못 보는 손이
내 나래를 쓸어 내는 날까지 나도
춤추고 마시고 노래 부를지니
생각함이 삶이고
힘이고 숨결이라면
죽음이라면..,
그렇다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는 행복한 파리


- William Blake-



월리암인지 얼리암인지가 어느 나라 파리인지 나는 모른다.
소시적에, 어디에서 베껴 놓은 것이 굴러다녀 옮겼을 뿐이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리

작성자 매조지 (prop2047)                                             번호 243               작성일 2002-04-13 오전 1:48:32

운전 중이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파리 한 마리가 핸들에 사뿐하게 앉는다. 거의 같은 찰나에 조건반사로 가히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놈을 낚아챘다. 그러나 놈이 한 수 위였다. 어쩌면 년(a bitch)일지도 모른다. (때로 파리를 잡아 세밀하게 관찰을 해도 암, 수를 어찌 구분하는지 잘 모르겠다. 누구 아는 사람?) 차비도 안내고 내 차에 동승한 이놈은 내 차에 왜 탔을까?
조금은 털털한 내 성격과 지저분한 곳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과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리했는가? 여름엔, 에어컨을 거의 쓰지 않고 창문을 열어놓고 다니는 관계로 놈들이 내게 접근할 기회는 수시로 있다. 자동차의 좁은 공간에 파리가 윙윙거리면 신경이 안 쓰일 턱이 없어 밖으로 쫓아내면 나갔다가는 용케도 잽싸게 되돌아오곤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운전 중에 파리를 잡는다고 손을 휘휘 젓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낸 적도 있다. 

두어 해 전에, 아주 외로웠을 때(물론 지금도 외롭긴 하지만) 지금처럼 내 차에 무임승차한 파리도 소중하게 생각된 때가 있었다.
어느 영화에선가 감옥에 갇힌 죄수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너무 그리워 바닥을 기어다니는 곤충을 잡아먹기도 하고 키우기도 하며 (살아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장면이 되새겨지기도 했을 정도로 외로웠으며 그렇게 외로운 것이 무엇보다 두렵기도 했었다.
그땐! 파리도 크나큰 위안이었다. 그러나 파리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생물 중의 하나이다. 장티푸스·콜레라·소아마비 따위의 병원균을 매개하고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그놈과 친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의 결과이리라.

1972년. 난 고2였다.
여름방학 때.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에 있는 친구의 집에 갔었다.
거긴 구씨의 집성촌이었는데 친구가 종손이다.
한가하면서도 분주한[靜中動] 농촌의 풍경과 분위기에 취해 참으로 보람 있고 유익한 방학을 보내려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파리였다. 생활의 한 귀퉁이를 파리에게 할애한 농촌 사람들의 무덤덤한 반응과는 달리 나는 온통 파리에게 신경을 쓰느라 한참 때의 식욕도 꾹~꾹 눌러야 했었다.

상추, 오이, 토마토 등을 비롯한 푸성귀 [풋채소:菜蔬]에 입맛이 마구 동하던 때 밥상을 차려놓으면 그놈들이 먼저 달려드는데, 마치 중공군의 인해전술 같았다. 처음엔 그놈들이 떼로 엉겨붙어 있는 것을 콩밥으로 알았다. 콩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가 가까이 가서 보니 이건 콩알보다 더 큰 파리들이 새까맣게 밥사발을 덮는 거였다. 평소에 파리가 앉았던 곳은 떼어버리고 먹던 나였는데 마구 동하던 식욕을 억누르고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 먹으며 한 주일을 보냈던 것 같다. 우습다. 이미 파리가 빨아 먹고 남은 것이라면 한 숟갈을 먹으나 한 사발을 먹으나 무엇이 다른가.?

물론, 이건 지금의 생각이고 그땐 그랬다.
겨울 파리는 여름 파리와 다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고 겨울까지 살아남는 놈은 강하고 민첩한 놈이다. 우리도 좀 더 강해져야겠다. 감기 따윈 근접하게도 못하게 하고 피폐해지기 쉬운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는데 조금 더 신경을 기울여야겠다.
-----------------------------
잃어버린 50년의 기록 중 일부를 찾았다. 내용이야 뭐 별것 있겠느냐마는 그냥 기쁘다.

 


글: 매조지.   그림: 인터넷 검색 Corel로 작업

2006/11/21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심심하다.  (0) 2008.09.18
* 가난뱅이  (0) 2008.09.14
◆ 추억  (0) 2008.09.12
* 경남호텔  (0) 2008.09.02
* 여인!  (0) 200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