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같은 모텔도 참으로, 정말로 많다.
호텔을 별로 가 본 적이 없어서 그 시스템이 어떻고 그런 것을 말할 처지는 아니다. 다만, 은행카드(신용카드를 초창기엔 그렇게 불렀다. 별도 법인으로 카드회사가 생기기 전이었다.)가
처음 도입된 시점에 (기억에 1982~83년쯤 같다.) 카드를 쓸래야 써먹을 때가 없었다. 고급
(비싼) 술집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나 사용 가능한 정도였다.
그때, 한두 번 이용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1985년 초여름이었다. 아내의 이종사촌 언니가 소방서 뒤에 살았기에 거기서 만난 거다. 장모님과 이종사촌 언니와 상견례를 끝내고, 태능푸른동산엘 데리고 갔었다. 참 순진하기만 했었다.
원래 숫처녀를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고많은 사람을 사귀었는데 결혼은 그런 이와 했다.
제주 그랜드호텔에서 첫날밤을 비명(?)과 흔적으로 새우고 말았다.
첫날밤 재미는 별로 없었다. 다만, 일부러 첫날은 그랜드에서도 좀 큰 방을 얻었다.
좀 오래 기억하고 싶었고, 거기서, 결혼 몇 년 차에 이런 규모 이상의 안방을 가지게 해 준다
는 약속을 했었다. 다음 날인가? 다음다음 날인가? 모텔로 옮겨 편하게 운신했었다.
첫 만남이 있고 두어 번 더 만난 후에 일이다. 그때도 대천에 있던 그녀가 올라와 만났는데,
경남호텔 부설 나이트클럽에 데리고 갔었다. 5~6시쯤이었나?
좀 이른 시간이라 홀에 달랑 우리 둘만 있었다.
그리고 웨이터들이 우리 좌석 가까이에 우르르 몰려 있었다.
식사하고, 맥주인가 위스키인가 생각이 안 나지만, 반주로 하고 있었다. 참고로 총각 땐 주로
위스키나 진 종류 또는 빼갈. 일식집에서 따끈하게 데워 먹던 정종을 특히 선호했었다.
어쨌든,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내에게 그랬다.
뽀뽀할 거라고.
당연하게 안 된다고, 소리 지를 거라고, 그랬다.
바로 가까이에 우르르 몰려 잡담을 하는 웨이터들을 의식한 거고, 그전에 손만 잡았기에 더
욱 펄쩍 뛰었다. 웃으며 그랬다. 소리 지르라고, 아니, 내가 먼저 소릴 질러 주겠다고. 숫기없
던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내와의 첫 키스는 관중이 꽤 많았었다.
내일 할 일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오늘은 그냥 잠자기가 싫다.
산유화와 한네의 이별과 상엿소리에 취해 그냥 밤을 새우고 싶다. 작년까지 아내에게 처음
보냈던 엽서가 남아 있었다. 첫 키스를 하고 난 후의 일이다.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전문이다.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희망은 오래전에 절망이 되었다.
2006/10/03
* 이 글을 옮기는 지금 코스피 지수는 1,392.88, 1,400대도 깨졌고, 환율은 6원 30전 올라
1121.80 원을 가리키고 있다. 정부에서 '9월 위기는 과장됐다.'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전혀 무게가 실리
지 못 하고 국민은 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6.25 때, 한강 다리를 끊을 때도, 97년 IMF 때도 정부는 언제나 국민을 배반했다. 병자호란 때 선조도
백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그 이북으로 홀로 도망쳐 명에 망명을 십여 차례가 넘게 애걸했다.
강만수가 사실을 인정하면 내부에서 먼저 무너지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다면 좀 더
솔직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장중에 플래닛 글을 옮길 정도로 엉망
이다.
2006/10/03 |
글: 매조지
그림:D/[고해상도] 사랑,커플 이미지, D:\Data Craft\DC116 Wines, Foods & Table [와인, 음식, 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