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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주체/옷주제/잘 자고, 잘 놀기

*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01


4일간의 외도를 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이하 메디슨)의 주인공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달콤한(?) 4일을 보냈던 것과는 격이 다른 것이지만, 일상 탈출이라는 일맥 통하는 바는 있다. 4일간의 외박이기도 했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7시까지 고강도의 육체노동을 한 것이다. 평소와 같이 일과는 지속하면서. 

 주식쟁이 일과 끝내고 대충 정리하면 15시 30분. 18시 20분쯤 출발하여 19시쯤 일과 시작하면 자정에 야식하는 시간 외에는 휴식시간 없이 연이어 이어지는 일은 택배 회사의 물건 상, 하차하는 일이다.

enjoy surfing 중에 뜬금없이 알바 사이트를 검색하였는데, 내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야간에만 할 수 있는 일은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려웠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할 수 있는 일이면 아주 좋겠다.' 라는 생각이었으니 그런 일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원 자격이 25세~50세라는 곳에 대뜸 전화했다. 연령에서 자격 미달이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표면에 나타난 것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라는 것은 경험칙에 의한 판단이었다. '나이보다 무언가? 하려는 의욕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들이댐이 받아들여져 첫 출근을 한 것이 3월 14일 월요일이었다. 경매일이기도 했는데, 결국 유찰되었다. 12시간이란 근무 시간에 질리긴 했지만, 해이할 대로 해이해진 육체와 정신을 다잡을 필요성이 절실했기에 어느 정도의 체력의 한계는 극복할 마음가짐이 있었다. 

11톤 윙바디 카고 트럭에 분류된 택배물을 싣는 것이 첫날 한 일이다. 서류봉투에서부터 30kg이 훨씬 넘는 물건까지 다양한 물건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꽃샘추위의 새벽 공기는 겨우내 실내에서만 지낸 내가 버티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콧물의 원인이 급강하한 새벽 기온 탓으로만 생각했지, 아랫도리를 골덴 알바지 하나만 입고 있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째 되는 날에서야 목도리를 두른 근무한 지 좀 되는 이에게서 내복까지 챙겨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흘린 콧물로 코밑이 헐었다.  

강도가 워낙 센 터라 체격 좋은 30~40대 젊은이들도 하루 나오고 마는 수가 대부분이다. 일이 험한 것에 비하여 일당 65,000원은 턱없이 적은 것이 원인이겠다. 하차는 상차보다 힘이 더 드는 데, 첫날 빼곤 계속 하차 쪽의 일을 자정까지 하고 자정 뒤로는 상차를 했는데, 목요일은 내리 하차를 하게 됐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하루 2~3시간을 잔 수면부족으로 멍하기도 했다. '그래도 10번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과 다시 나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싸움하는 중에 내일(금요일)과 모레는 쉬고 월요일에 나왔으면 한다. 굿~ 당연히 좋다고 할 수밖에. 먼저 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한 달에 한두 번이든, 일주일에 한두 번이든 그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사흘째 되는 날인데, 그러면 자기들도 좋단다. 기숙사에 기숙하는 아랍인 포함 10여 명의 고정 인원 외에는 하루하루 사람을 모집하여 소형버스로 실어 나르는 그들로서는 소위 땜방이 고정으로 확보되면 좋다는 말이다. 책 보는 것도 지겨울 때, 하도 오래 앉아 있어 눈이 침침하고 허벅지가 스멀거리며 물러 터져 통증을 느낄 때, 알맞은 육체노동은 늘어진 세포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효과가 크다.  

어쨌든, 콧물은 멈추지 않고 있고, 어깨와 허리를 비롯하여 온몸 구석구석에 심한 통증이 있다. 다음 주부터는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로 뻘짓을 줄일 생각이다. 작년에 노가다를 2월과 3월에 각 두 번씩 한 것이 다였는데, 다시 나가지지 않더라. 3~4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 100번을 목표로 했었는데, 5~60회 정도 한 것 같다. 가수 송창식은 방을 빙빙 도는 운동을 하며 최소한 일만 일(10,000번)은 해야 무어든 했다는 소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더구먼, 난 100번 채우기도 어렵다. 유일하게 신문 돌린 것이 100일을 꼭 채운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문 돌린 것은 진짜 미친 짓이었다. 얻은 것은 탄탄한 종아리 근육이었고, 잃은 것은 너무 많았다. 김포로 이천으로 연애질 한 새벽에도 신문 배달은 해야 했었다. 그땐, 정말 미친 짓이란 생각이 들었었지. 

이번 주에 저지른 일도 멀지 않은 앞날에 <미친 짓>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미친 짓>만은 아니리라!   

* 전태일이 쓰러진 지 40년이 지났는데, 노동자의 권리 신장은 아직도 멀었더라. 시스템 자체도 문제지만 노동자 스스로 전태일의 사상의 만분지 일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문제이기도 하다. 12시간 동안 식사 시간 외에 쉬는 시간이 전혀 없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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