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불탄 버린 앨범에 1971년 꿍친 여학생 사진이 줄기차게 꽂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강미자(특별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강씨의 강한 이미지와 미자란 일제의 영향을 받은 '子'자가 이름 끝 자에 흔했던 우리 시대 비애의 역사 잔재 때문이다. 고교 1학년 때, 실력도 없으면서 처음 과외 지도를 했었다. 개인지도를. 당근 초등학생이었다. 뭐 한 4학년쯤 되었는데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초등학교 과정 가르치기가 고등학생이나 일반인보다 몇 배 힘든 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10년도 더 지난 후에 알았지만. 어쨌든 가르치던 아이의 누나였던 그녀는 야간부였는데 내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그때 가방을 들고 나가는 그녀와 마주치곤 했다. 내가 동생인 제자를 꼬여서 사진을 입수했는지, 아니면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것을 슬쩍 넣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른다. 거짓말 아니다. 기억이 안 난다. 믿어 주시라!!
어쨌든 시대를 한 35년은 앞서 갔는지 살짝 웃는 미소의 옆모습을 찍은 건데 요즈음 말로 하면 그야말로 얼짱 포즈 그대로다. 지금, 앨범은 불탔어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진 중의 하나인데 생각을 해 봐라. 8년을 살고 하늘나라로 간 아내보다 잠시 잠시 애인했던 그네들보다 무려 35년을 함께한 그녀니 그녀의 얼짱 미소를 잊겠는가? 내가 아무리 돌이라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추억이 두엇 더 있다.
하나는,
하루는 아이를 지도하고 있는데 말만 한 처녀가 수업료인가 학교에 낼 무슨 돈인가를 안 준다고 아무리 내가 못 생겼다고 명색이 자기와 같은 학년의 남학생인데 엄마한테 떼를 쓰고 발광을 하며 징징 울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모습이 정겹고 부럽다. 도대체 철이 일찍 나서 좋은 게 뭔가? 철이 일찍 나면 그놈의 '무거운 철'을 들고 있느라고 정말 힘들다.
그래서 아들에게 한 번에 가르쳐 줄 것을 때론 몸으로 겪으며 알아 가라고 내심 모른 체하는 때도 있고 세상을 잘 아는 방법의 하나는 여행이고, 연애이며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것임을 잘 알기에 지가 알바를 하여 일본을 가든, 차를 빌려 놀러 가든 가만 지켜만 본다. 큰 틀만 잡아주고 내가 나를 믿듯 아들을 믿고. 아직까진 기대에 못 미치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빼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알아서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필요한 것은 일본어고 운전이고 뭐든 찾아서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우리가 이미 먼저 산 경험을 통해 보면 잘 노는 것이 공부 잘하는 것보다 중요하고 단어 하나 외는 것보다 중요함을 잘 알지 않는가? 물론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내 생각의 기본은 그렇다.
두 번째는,
그 집에 가는 길이 좀 가파른 언덕길이었는데 안 하던 짓을 한 거다.
앞에 참한 여학생이 가기에 계속 말을 붙이면서 수작을 했는데 어라! 내가 가는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녀는 가르치던 놈의 둘째 누나였던 것이다. 그날의 얼굴 화끈거림이 오래도록 갔다. 아마, 그녀는 자기 동생을 가르치는 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속으로 웃었을까? 아니면 모르는 오빠였다면 대꾸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 지금은 아련한 추억 속의 일이다. 그야말로 이팔청춘 16세 때의 추억이다.
고등학교 때 남산 음악당에서 여학생들 단체사진 찍는 한 중앙에 떡~ 앉아 항의하는 여학생들을 무시하고 친구들에게 사진 찍으라고 성화를 했는데 이놈들 맹해 가지고 사진 찍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일행도 아니고, 아는 여학생들도 아닌 사이였었다. 난 지극히 정상인데 내가 밝히는 건가? 난 지극히 순수하게 그녀들과 친해지려고 했을 뿐이다.
2006/07/02
출처:http://planet.daum.net/maejoji/ilog/4356819 그림:출처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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