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쯤의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굴린 車가 12~13대쯤 된다.
학원 할 때 기아의 봉고차를 사용한 이후 나머진 모두 대단한(?) 현대차를 샀다.
그것도 새 차로만, 지금은 큰 집, 작은 집이 되어 굳이 현대/기아를 구분할 이유조차 없어졌다.
두 번째 장만한 차가 현대 그레이스 6밴이었다. 하얀색이었다.
그런데 정말 걸려도 왕 가시가 걸린 거다.
생업을 바꾸고 전혀 모르는 분야로 혈혈단신 뛰어들어 무진 고생 끝에 차츰 안정 되어 거래처가 꽤 늘어 있었는데, 새 차를 뽑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길에서 퍼진 것이 서너 번째였다.
전기 배선의 문제라는데, 이건 대책이 없었다. 급기야 3개월 동안 10번 이상을 견인하고 현대서비스센터 동부와 북부 그리고 시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협력업체인 정비공장을 출근하듯 들러야 했다.
업무의 성격이 요식업소나 대학 등의 구내식당 등에 납품하는 일인데 특히, 냉면/막국수 등은 계절상품이며 여름 한 철에 한 해 먹을 것을 벌 정도로 수요가 많기도 했었다. 게다가, Rute Sale의 특성상 내가 하기 싫다고 문을 닫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쏠쏠하게 벌리는 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만 와도 수요가 급전직하하는 성격의 일이며 어쩌다, 차량의 고장 등으로 한 번 못 가면 곧바로 경쟁사에서 꿰차고 들어올 정도였다. 업소 입장에서도 그때, 그 순간에 팔지 못하면 다시 수요를 일으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새 차를 뽑아서 3개월 동안 10여 번 이상의 견인을 했다면 그 심정을 어찌 다 토하랴!
그러던 중 저녁 어스름에 (대략 6~7시쯤) 용두동 동아제약 뒤에서 또 퍼지고 말았다. 그때, 방학동에 있는 현대차 북부서비스센터에 연락했는데, 책임자인 양 반장과 직접 통화가 되었다.
"알았습니다. 조치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답변을 듣고 마냥 기다렸다.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일명 삐삐라고 불리던 무선호출기가 전부였다. One Way의 갑갑함이란!
어렵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결국 그날 새벽까지 고생했었다.
동아제약 바로 옆에 H(ㅎ만 생각 난다.) 정비공장이 있었지만, 모두 퇴근한 후라 조치할 사람이 없었다. 지금처럼 경험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겨우 현대차에서 해준 조치는 2년/20,000km 인 보증기간을 배(倍)인 4년/40,000km로 늘려주는 것 외에 없었다. 그것도 계동 본사에 쫓아가 높은 자를 만나서 얻은 것이었다. 오늘날, 현대차는 나와 같은 국민의 피를 빨아먹고 큰 회사이다. 국민에게 베풀어야 할 만큼 컸다.
양 반장은 그 후 시말서를 쓰고 징계를 먹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을 수 있겠지만, 고객이 계속되는 고통을 당하는 중에 (하도 들락거리고 견인되어가서 서로 이름을 알 정도였었다) 그냥 무심히 퇴근하고 마는 그런 정신상태로 현대차가 굴러갔었다.
2006/10/13
그림:D/ArtVile/Artville_IL.125.Living.Together/LRGCNVS/LRGLO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