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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흐름(時流)

◆ 천칭봉


1960년대 후반 내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화장실에 관한 야그를 하려는 참이다.
세월이 더하면서 화장실을 가리키는 말도 많이 늘어났다. 우리 클 때는 변소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소리였고 시골에서는 뒷간, 측간(間), 정방(淨房), 등으로 불렸다. 세월이 흐르며 점차 TOILET이라 총칭되는 수세식 화장실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올 100% 재래식 변소였다. 불교 쪽에서 쓰는 해우소(解憂所)란 말은 운치 있기까지 하다. 
정말, 엉덩이 까고 앉아 힘을 주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꼬물거리는 하얀
구더기 떼가 징그러웠지만 그립기(?)까지 하다.
그리고 생각도 많아지는 것이 앉아서 볼 일 볼 때가 아닌가?
또한, 배설의 즐거움을 맛볼 땐 세상만사 모든 것을 잠시라도 잊게 되니 해우소(解憂所) 그 말이 딱 맞는다. 先人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한다. 
이제 화장실이 어지간한 가정의 안방과도 맘먹을 정도로 정결한 문화공간으로 가꾸어지고 있다. '세상 참 좋아졌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공중화장실이 잘 꾸며진 나라도 없단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형식의 진짜 공중화장실은 더구
나 찾기 어렵다고 한다. 화장실에 관한 한 세계 여러 나라에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우리 화장실 문화를 벤치
마킹하러 왔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
아쉬운 것도 있다. 수세식 화장실은 말 그대로 물로 씻는 것이 아닌가?
물로 똥이 씻겨가면서 그 속에서의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과 배설의 즐거움도 물에 같이 씻겨 가 버리는 것 같다. 게다가 가장 즐겁고 신나야할 원초적인 본능인 배설까지도 그냥 의무로 해야 하는 어떤 일(의무방어전?)처럼 기계적이고 메마른 행위로만 의있는 것 같아 아쉽다.


나, 남의 말을 듣기 좋아한다.

책은 남의 말의 집합체다. 그래
서 책을 좋아하는데 듣기에 노력이
필요한 그 일에 좀 소
홀하다. 그것에 일조하
는 것이 내가 요즈음
주로 노니는 이 카페이
기도 하다. 밉다. 그러
나 예쁜 사람들을 만나
게 된 것은 좋다. 

'헤라/ 티아도라/ 풀잎 사랑/
청산같이/ 여우
님~~ 등' 지면관계로
일일이 출석 부르지 못
한 것을 용서하시고 이
해하시기 바란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고 음지와 양지가 같이 공존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 아닌가?  그런데 글 쓰다 말고 웬 아부? 
본론으로 들어간다.
옛날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똥을 치워야 했다. 이른바 똥통을 월남에서 쓰는 운반도구인 긴 나무를 세로로 대고 그 옆
에 그물 같은 것을
달아 물건을 운반하는 그런 게 우리도 있었다 우린 거기다 초롱 같은 것을 달아 똥을 주로 담아 날랐던 것이다. 이름하여 똥통 (똥오줌을 담거나 담아 나르는 통)인데 이게 (형편없는 물건이나 낡아 빠진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학교를 진학할 때 서울에 몇 개 학교를 빼고는 '똥통 학교'라고 불렀다. 그게 옳은지 그
른지는 차치(且置)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똥차가 들어올 정도로 행
정력이 미미하던 시절. 똥차가 들어오면 사람들은 이
리 뛰고 저리 뛰며 서로 모셔가려고 했으므로 (그때 못 치우면 똥이 변소 밖으로 흐르
는 일이 있을 정도로 곤욕을 치렀기
에 필사적이었다.) 그때는 온 식구가 나서 똥통 들고 뛰는 인부들을 모시느라 안달이었다. 마치 아이들
이 잠자리채를 가지고 고추잠자릴 잡는 풍경과 흡사했다. 때로는 한 사람을 놓고 두세 집이 서로 내가 잡았다고 다투다가 인부가 "내가
슨 강아지냐? 잡게." 하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머쓱해하던 풍경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의 사정은 사뭇 달랐다. 나가서 아우성을 치는 집과 달리 그리 도도하고 위세 등등한 똥 푸는 이들이 서로
우리 집을 찾아와 '아직 멀었나요?'하고 문안을 드리는
것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고 그냥 사람까지도 [똥 푸는 도구로만 인식하던]사람들과 달리 아버지는 마음에서 그 사람들을 대접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대접받기를 원하지 않는가?
온몸에 똥칠 하고, 신고 일하던 긴 검은 장화에 똥이 덕지덕지 묻은 상태의 사람을 개의치 않고 당신의 아침 진지 상에 겸상을 하여 같이 식사를 하셨던 것이다. 물론 어머닌 질겁을 하셨지만, 어머닌 두고두고 그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 어찌 그 사람들이 서로 우리 집의 똥을 못 쳐 안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근간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이웃의 어떤 카페의 똥강아지만도 못한 자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돌아가신 아
버지를 생각한다.

자동차에 둬서 화마를 피해 간 영영사전의 뒷장에 이런 글이 덕지덕지 쓰여 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모시겠다.
  1977년 10월 29일. 
  아버지를 묻고 온 이틀 후.
  육군 병참학교 이병 매조지』
 

200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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