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고1 때
지금처럼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새 책상을 샀다. 그때, 금호1가 금호 극장 뒤에 살았는데,
극장 앞 가구점에서 집에 까진 언덕길을 좀 올라가야 했다.
3,000원을 치렀다. 그때 학원 한 달 수강료가 1,000원을 넘지 않았다.
가구점 아주머니가 책상을 머리에 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뒤따르고
친구인 인회와 난 맨손으로 앞서고 있었다.
이윽고.
집에 당도한 난 새 책상에 빨리 앉아 보고 싶은 맘이 앞서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엄마! 책상이 마음에 들어요.'
하며 뛰어드는데.
뒤따라 책상을 머리에 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서는
아줌마를 본 어머닌 버럭 소릴 지르신다.
'아니, 얘들이, 너희는 빈손으로 오고.'
그제야.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미안함에 송구스러웠다.
지금 시대의 잣대로 보면 돈 치르고 물건 배송받는 것은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겠지만
그 시대엔, 상거래에도 情이 통했다. 정을 통하는 것! 그것,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만 나눌 수 있는 것이란 건 우리 나이엔 다 안다.
그 후 물건을 살 때,
'내 돈 내고 내가 사는데.'
이런 의식을 앞세운 적이 없다.
아버지가 되어 아이를 키우게 된 후엔 아이들에게
백화점 같은 그럴듯한 매장에선 깎는 시늉이라도 할지언정
난전 같은 곳이나 손수레 등에서 물건을 살 땐 되도록 깎지 말고
후하게 굴라고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