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전

돈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돈은 싫어하는 사람도 없다.
 나도 돈처럼 싫어하는 사람이 없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돈은 많이 가진 이도 더 갖으려고 아우성치는 유일한 물건이기도 하다. 이놈은 이름도 많아서 화폐. 전폐(錢幣). 전화(錢貨). 라고 불
리기도 하고 돈(豚)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긴 豚도, 돈의 상징이
기도 하니까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나도 돈은 좀 갖고 싶다. 아주 많이 아니고,
그냥 조금.., 한 몇십 억~몇 백 억정도.

오늘 돈을 갖고 놀려고 하는 것은
그놈의 이름이나 속성 등의 속살을 헤집자는 것 은 아니다.
다만,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매일 떡 주무르듯 하는 놈을 보면서도
놈과 얽혀 있는 추억은 잊고 지냈던 것을 잠시 들춰보려는 것이다.
이놈은 형제도 많아서 1원, 5원, 10원, 100원,500원 등 많기도 하다.
뭐 이젠 1원 막내에 비하면 형제가 아니라
고조 할아버지뻘인 5만 원 또는 10만 원 액면의 고액권을 발행하느니 마느니 공청회도 열렸던 것 같은데.., 내 의견은 발행 可다.

[100환 동전]

내가 처음 돈을 인식한 것은 네, 다섯 살 때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입구에 있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의
큰집에서 큰아버지가 주신 100환짜리 백동전이다.
그놈의 손맛은 아직도 손끝에 짜릿하게 남아있다.
고등학교 때 천마산에서 만난 여학생과 청량리 근처에서 헤어질 때
그녀가 건네준 빨간 무늬가 있던 손수건을 받는 순간
가슴은 콩닥콩닥 얼굴은 화끈거리던 좋은 느낌과 동격이거나 그 이상인 것 같다.
그런데 그 돈을 어머니가 가져가셨는지 내가 썼는지 뭐 그런 기억은 없다.
그냥 이팔청춘에 여학생의 손맛과 그녀의 마음을 전해 준 손수건의 느낌과
100환 동전의 필이 같을 정도로 오래 기억되는 마력이 있는 것이
[돈]이란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10원 동전]

1966년쯤 지금도 쓰이는 10원 동전이 처음 나왔다.
5학년이던 시절 동네에서 새 화폐가 신기해 친구들과 둘러서서
그 중의 한 놈이
(나인지 다른 아이인지도 기억이 안 나는 데 실루엣으로 남아있는 이런 기억이 신기하다.)
자랑하던 10원 동전의 느낌도 아직 생생하다.
이런 것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나도 돈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가 보다.
아닌 척하면서.., 그놈에 대한 기억은 또 있다
요즈음에 마케팅의 한 축이 되고 있는 복고풍의 상품중에
삼립 식품에서 만들던 크림빵이 있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그게 10원, 그놈과 바꿀 수 있었다.


[500원 동전]

1970년 중 3때, 라면 한 봉에 20원 할 때
중학교만 졸업하고 신문 배달을 하며 보급소에서 먹고 자며
어린 나이에 생활인으로 힘들게 살던 친구가 있었다.
내 어머닐 어머니처럼 생각하던 친구였다.
중국집 배달원도 하며 신문도 돌리고,
그랬던 친구가 한 주일씩 라면만 먹고 산 때도 있었다는 놈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침 일찍 건네 준 500원 동전.
그놈에겐 얼마나 큰 돈이었고
수학여행을 가는 내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런 아픔을 숨기고 피 같은 돈을 건넨 친구의 행위가
얼마나 큰 우정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었다.
1978년 군에서 첫 휴가 나와서 진해에 해군 중사로 있던
친구의 안내로 당시엔 큰 배였던
DD-96 함의 내부를 구경했던 적이 있다. 
(70년 대 중반 이배를 타고 친구는 유럽은 물론 중동까지
여러나라를 순항했었다.) 친구의 처남이라고 하면서
난 육군 일병.
친구는 72년부터 군 생활을 한 고참 중사.
이게 격이 안 맞았고 친구의 처가 마침 吳씨였다.

 [ 500원지폐]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둑질을 했던 큰 돈.
1965년 난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동네에서 제일 이뼜던 소녀의 집에서
숨박꼭질을 하며 놀다 그녀의 집 다락에 숨었는데 책 갈피사이에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이 수북했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한 20여장 쯤 된 것 같다.
그땐 은행거래보단 부뚜막 앞에 땅을 파고 묻거나
부엌 살강위의 종지 아래 돈을 놓곤하던 때였다.
견물생심이라고 순간적으로 런닝 속에 한 장을 넣고 나왔다. 
이건 언젠가 언급한 글이 내 플래닛에 있다.
소년 (조선/동아/한국)신문이 한 달 40원 할 때고
아이스케키가 1원에 두 개였던 시절이었으니
10살 소년에게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다.
그 돈으로 소년신문(동아?조선?)을 봤다.
그때도 문화에 대한 욕심은 있었나 보다.
이 사건은 내 생의 전반에 걸쳐서 가치관과 생활양식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라 몇 번인가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200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