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유행했던 '말광량이 소녀 삐삐'를 말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휴대폰이 일반화 되기 전에 있었고, 지금도 십만이 넘는 사람들이 쓰는 '삐삐'라 불리는 무선호출기를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무선호출기를 쓴 것은 아마도 1985년 말이나 1986년 초쯤 일 것이다.
당시에 학원을 하다가 결혼하면서 직업을 전혀 생소한 지금 하고 있는 일로 바꾸고 얼마 안 되어 영업활동에 필요
했기 때문이다. 그때만해도 을지전화국에서만 취급을 했으며 신청하고 평균 3개월을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오던
시절이었다.
일명 삐삐가 처음 사용되던 초창기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친구
의 이야기다. 믿어 주라!) 유흥업
소에서 아가씨를 끼고 술을 마시
던 차에 장난기가 발동한 친구가
술을 마시던 중 울린 '삐~삐~"
하는 소리에 놀라고 신기해했던
아가씨에게 한 수작이다. 아가씨
의 밑에 대고 전원을 슬며시 껏
다 켜며 '삐~삐~' 울릴 때, "네
가 이제까지 '에스이엑스'를 몇
번을 했는가를 측정할 수 있는
기구"라고 설명을 하며 이실직
고 하기를 추궁했단다. 순진한
(?) 그녀가 처음한 때를 토로하
더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내가 쓰던 번호는 205-0698이었다.
지금도 아마, 그렇겠지만, 참 한심한 생활을 했다.
작은 매형이 그때, 전국을 떠돌며 건축업을 했었다. 방통(이것 맞나?)이라는 시멘트를 높이까지 올리는 기계를
가지고 인부 십여 명을 부리는 일을 했는데 어느 날, 매형 집에 갔는데 이야기 중에 매형이 '삐삐가 꼭 필요한
데'라며 애로를 말하더라.
당시엔 을지전화국에서만 삐삐를 취급했고 신청을 후, 3개월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 차례가 왔었다.
영업을 하는 놈이 주저없이 그 자리에서 삐삘 작은 매형 쓰라고 주고 왔었다.
그 후에..,
매형이 아파트 입주를 하게 됐는데 (내게 손을 내민 것도 아닌데) 부족한 입주금으로 고민을 하기에 나도 큰 장사
를 하던 시기도 아니엇는데, 현금 960만 원을 (장사 밑천의 거의 다였다.) 조건없이 줬다.
그리고 거의 일 년 후에 끝전 60만 원은 떼고 900 만원만 받았다. 이해타산을 따졌다면 형제라도 그렇게 할 수 없
었을 것이다. 나의 강점미면서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하다못해 우리 먹을 고기 한 근을 살 때도 가까이(평균 3k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있는 어머니, 막내누나, 동생 생
각을 하며 따로 따로 사서 갖다 주곤 했었다. 그래도 죽은 마누라도 빙신(?)이었는 게 한 마디 불평을 한 적이 없
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제 욕심 차리는 것이 미쁘게 보이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재작년 12월 화마(火魔)를 만나 속옷 바람으로 탈출 했을 때 형제들이 모여 지금의 방을 얻어주고 세간살이를 마
련해 줄 때도 작은 매형이 따로 100만원을 줬는데 전혀 미안한 감이 없었다.
내 마음 깊이 안 따진다던 '이해타산'이 있었는 가 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2007/02/21 |
그림:D/PhotoDisc/PhotoDisc Designer Tool - Circuits and Electron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