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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주체/옷주제/잘 자고, 잘 놀기

*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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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카메라를 늘 가지고 다녔다.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엔 카메라도 고가였다.

학원을 하면서 행사 등을 찍어 홍보하는 데 꼭 필요한 기기이기도 했다.

8밀리 영사기도 있었다. 공개강의할 때 영사기로 영화 같은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직업을 바꾸고서도 영사기는 버리지 않았다. 아이들 클 때, 대문을 활짝 열어놓곤 맞은편 연립주택의 담벼락에 만화영화를 비춰주곤 했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신기해했었다. 그게 언제 어디로 갔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아내가 덜컥 병에 걸리고 일 년 후에 허망하게 떠나고 난 후에는 기억이 없는 것이 참~~많다. 자궁이 빠져나간 것 같은 세월을 어떻게 배겨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여의도에 있는 H 진흥회에 다니는 구*회란 놈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단짝이었고 제일 친했었다. 지금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죽을 때까지 친할 놈이기도 하다. 놈은 나보다 두 살 많은데, 경기도 광주의 실촌면 부항리가 고향이고 구씨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의 종손이기도 하다. 붓글씨를 기가 막히게 쓴다. 그의 아버님도 할아버지도 다 붓글씨를 잘 쓰셨다. 타고난 내력이다. 3남 1녀의 키가 비슷하다. 다 170 이 넘는다. 그 바로 밑에 동생이 나와 동갑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룬다.


놈이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제비뽑기로 떨려난 것이 전두환이 들어선 후의 일이다. 몇 년인가 우유배달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고생하다. 전두환이가 물러나고 '보상을 받을래? 복직을 할래?'라는 통고를 받곤 이내 내게 달려왔다. 난 그때 잘 나가고 있었다. 장사를 시켜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얀마, 넌 복직하는 게 옳다." 

그게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 회사에서도 상을 여러 번 탈 정도로 잘 적응한다. 수도경비사령부에 근무할 때도 상을 여러 번 탔었다. 체력이나 붓글씨나 그냥 필체도 힘이 있고, 끝내준다. 팔과 손목에 힘이 없으면 붓글씨도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 놈과 다니면서 글씨로 스트레스 좀 받았다. 엄청나게 노력했다. 타고나는 것과 노력해서 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노력해선 일정 수준 이상은 절대 나아지지 않는 한계 말이다. 평균이상은 쓰게 됐는데 컴을 일찍 시작한 여파로 필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 같다. 편지를 육필로 쓴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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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를 타선 큰 맘 먹고 100만 원이 훨씬 넘는 카메라
를 장만해선 기자 많이 쓰던 옆에 붙이는 플래시를 달곤 어디 가면 폼 잡고 사진을 찍곤 했었다.   

 CROSS에서처럼 택시 합승해서도 사진을 찍어주곤 그걸 구실로 멋진 여성을 꼬이고 오랫동안 사귈수 있었던 것도 카메라의 힘이 컸다. 구*회 이 친구 술과 담배만 젬병이고 팔색조였다.
 사진을 전문 다루는 잡지에 기고도 많이 하고 미치더니 작가 인정도 받아냈다. 낚시광이었고, 80년대 초엔 테니스에 미쳤었고, 한땐 열대어에 흠뻑 빠지기도 했던 놈이다. 이놈이 마눌과 한 8년 차이 나는데 이천인가에서 결혼식을 했다. 친구가 달랑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참석했다. 그것도 윤*룡이란 친군 나를 봐서 이천까지 내려간 것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 결혼 때 사진 찍은 친구만 50명이 훨씬 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교성 좋다. 술도 담배도 잘한단다. 나는 아낼 잃고는 세월을 거꾸로 사는데 이놈은 지금 붕붕 날아다니는 것이다. 이놈 결혼식 때 신부가 놈의 신부인지 내 신부인지 모를 정도로 신랑을 저리 밀쳐놓고 내가 어깨를 안고 사진을 찍으며 장난을 쳤다. 지금도 그의 아내완 스스럼이 없다. 아니, '없을 것이다.'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내가 목동에 사는 그 친구를 만난 지 오래되니까. 전화만 한다. 그것도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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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놈이 이것저것 할 때, 아이들 사진 찍어 준다고 카메랄 빌려가더니 도통 연락이 없다. (바로 전에 그의 집에 도둑이 들어 그의 카메라 등을 잃어 버렸었다.) 그땐 면목동에 친구가 살고 나는 묵동에 사는지라 자주 만났었다. 아내와 그의 집에 놀러 갔다가 카메라 생각이 나서 "얀마, 카메라 줘야지?"했더니 그제야 몸체만 들고 나오는데 렌즈 부분이 아주 망가져 못 쓰게 돼 있는 거였다. 카메라는 렌즈가 그 값의 대부분을 하는 물건이다. 미안해하는 놈에게 '그래, 그냥 둬라"하고 본체까지 주고 왔다. 그때도 아내는 내가 카메라를 아무 조건없이 포기하는 것을 보고도 단 한마디 불평을 한 적이 없다. 내 결정을 언제나 존중했다. 왜 아깝단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아내가 그러나 카메라보다 친구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내 마음을 알았을 터이다.

 몇 년이 지나서 그가 목동으로 이사했다. 놀러 갔더니 그땐 사진에 더 미쳐 있었다. 카메라 두 대를 아주 고가품으로 장만하고 있었다. 찍은 필름은 일일이 슬라이드로 만들어 놓고그때, 잠시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자~아식, 두 대씩이나 엄청난 고가로 장만하면서 나한테 카메라 한 대 사 줄 생각은 안 했네.' 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렸었다. 아주 잠시지만 사람 마음이 그런 거다. 난 작년까지 올림프스 디카를 썼었다. 근데 지금은 어떤 종류의 카메라도 없다. 딸이 호주에 가면서도 색깔 있는 장난감 같은 카메라를 가지고 갔었다. 그걸로도 사진을 잘 찍어 왔더라.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에게도 DSLR 디카를 하나 사 주고, 나도 마련햐여지. 사진을 전혀 올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6. 09. 24.


글:매조지   그림: 매조지 DB/ 클립아트 종합이미지(1)/클립아트 (가전제품)/소형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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