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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M)스트리트/돈

◆ 내가 한 도둑질

 문득 잠을 깼다. 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한 중에 반딧불인 양 컴퓨터의 랜과 공유기, 오디오. 시계 등의 LED 창에서 노랗고 빨간 불빛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잠시 고민하다 불을 켰다. 세수를 하고 왔다. 3점이 조금 지나고 있다.

자다가 깨면 어김없이 3시~4시 사이다. 자다가 깨는 때가 왕왕 있는데 그땐 주로 11시~12시 전후에 잘 경우다. 자정을 넘겨 새벽 1시~2시 사이에 자면 아침 6~7시까지 단잠을 자는데 오늘은 영화 “공공의 적”을 보곤 01시30분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깬 것이 예사롭지 않다. 어제도 꼭 이 시간에 깼지만, 아침 일과를 생각해 그냥 내처 자지 않았던가. 서설이 긴 것을 보니 時流에(**학교의) 걸맞지 않은 맺힌 말을 풀어쓰고 싶긴 한가 본데 첫 말을 뱉기가 쉽지 않다.


 

 자라면서 몇 번인가 도둑질을 했던 기억이 있다. 주로 도적질의 대상은 내가 돼지 저금통에 저금했던 돈을 넣었던 구멍으로(어머니의 허락 없이) 철 핀 등으로 후벼 파 꺼내던 것이었고 부엌의 살강(시렁, 선반) 위 사기그릇 밑에 어머니가 두었던 동전 몇 닢을 훔치는 정도였다. 그땐, 은행도 흔치않았고 문턱도 높아 부엌 아궁이 앞에 단지에 돈을 묻고 장판 밑에 돈을 깔고 자고, 책꽂이 따위의 책 사이에 돈을 보관하던 시절이었다. 간이 조금 커진 후론 앉은뱅이 책상 서랍에 새끼손가락만 한 자물쇠를 채우고 동전 따윌 넣어 두셨던 아버님의 서랍을 방바닥에 엎뎌 아래로 손을 넣어 털기도 했었다. 오래가지 않아 아버님께 발각되어 경을 치곤 다시 할 수도 없었지만...


이쯤에서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적질에 대한 고백이 2학기에 새로운 도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빌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밝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0년 전이었다. 1965년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니 꼭 10살이었지.

만나면 괜히 마음이 설레던 ♣임이네 집에 놀러 가서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했었다. 다락에 숨어 무심코 앞에 있는 종이 박스에(사과상자 같은 BOX: 그땐 밀가루 포대는 물론 시멘트 포대까지 맨 안쪽은 버리고 크고 작은 봉투를 만들어 팔 정도로 재활용을 했을 만큼 물자가 귀했던 시절이었지.) 눈길이 갔다. 숨어 있으며 심심하던 차에 무심코 들춘 BOX 속엔 책이 가득했다. 책을 들추다 한 뭉치의 오백 원 지폐를 발견하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장을 런닝구 속에 집어넣었다. 見物生心(견물생심)이고 條件反射(조건반사)였다.

그리곤 이내 술래에게 들켜 다락을 내려오고 말았다. 더 놀다 헤어졌는지 바로 집에 왔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어린 나이에도 다음 날인가 알리바이를 만든답시고 런닝구에 감췄던 돈을 아이들 두엇이 보는 곳에서 땅에 살짝 흘리곤 주우면서 “돈 주웠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스케끼가 1원에 두 개였고 만화가 1원에 6~8권을 보던 시절 500원은 정말 큰돈이었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10원 구리동전이 66년인가 처음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삼립식품에서 나온 크림빵이 10원이었다. 
 

南山(남산) 등으로 아이들을 몰고 다니며 인심을 펑펑 쓰며 돌아다녔다. 한 달 구독료가 40원이었던 어린이 신문(조선, 동아)을 2~3개월 보았던 것 같다. 일본말로 ‘소사’라고 불리던 수위가 신문을 각 교실로 배달하곤 했는데 신문을 보는 문화적인 사치를 구가하던 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이 안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재됐던 만화에 혹해서 신문 구독을 바로 그만두지 못하고 두어 달을 더 본 것 같은데 결국 신문대금을 내지 못했다. 졸업을 할 때까지 거의 2년 동안을 아침마다 소사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하며 신문 값 독촉을 받았다. 머리카락을 잡아 흔들면 한 움큼씩 머리가 빠지기도 했고, (그때 여파로 대머리가 되었나?) 귀를 잡아당기며 폭언을 퍼부었다. 학년이 바뀌면 바뀐 교실까지 찾아와서 그랬다.

마치 악마 같았다. 그럼에도, 부모님께 말씀드려 해결할 엄두는 내질 못했다. 작은 거짓말이 꼬리를 물고 큰 거짓말이 되듯, 내가 지은 죄와 당시의 時流(시류)가 엄격하고 무서운 것이 부모의 도리로 부각되고 마치 신 같은 존재가 아버지란 이름이었지 않은가? 우리 아버진 인정도 많고 자상한 편이었는데 그땐 왜 그리 무섭기만 했는지 모른다.


역사에 만약(IF)이 없다지만 그때, 술래에게 조금 늦게 발각됐다면 아마, 숨을 돌렸을 테고 순식간에 메리야쓰 속에 넣었던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제자리에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몇 년이 흐르고서 불쑥 하곤 했다.





※ 이건 딸의 학교에 기숙사에서 잇따른 도난사고가 있을 때 되풀이하여 못된 짓을 하여 딸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과 샘들에 심적 고통을 주고 학교의 정체성마저 위태롭게 하던, 
도둑질 한 학생에게 호소하기 위해 썼던 글이다. 
 

                                                                                                                       2006-09-11 00:15:03

D:\Data Craft\DC057 Foreign currencies [각국의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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