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에 겪은 경험 중에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누구나 한두 개씩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여럿 있는데 아마, 내가 머리가 비상해서 다른 이보다 기억하는 게 많거나
반대로 머리가 더럽게 나빠서 더 발전이 없이 지난 일에 집착하여(?, 이것 맞는 표현인가)
다른 이보다 기억하는 게 많은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진위야 어떻든 기억하고 있는 것을 몇 개만 풀어보자.
어려서 집에 닭과 오릴 키우고 있었다. 닭장 청소를 하는 게 일이었는데
6남매 중 내가 도맡았던 것 같다. '잘한다, 잘한다.'하는 추임새에, 그랬던 것 같다.
그것뿐이 아니다. 몇백 미터 떨어진 공중수도에서의 물지게로 물긷는 것도
1965년 10살 때부터 한 것 같다. 비록 반 통이나 3분지 2를 채우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유추해보건데 어려서 '잘한다'는 꼬임에 빠져(?) 무거운 물통을 도맡다시피 하여
내가 짜리하게 짧아진 것 같다.
닭이 알을 낳고 '꼬꼬댁 꼬~꼬~ 꼬~꼭~' 하고 울던
정겨운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하루에 몇 알 생산되는 달걀은 아버님의 전용 보신제였는데
어느 날, 닭이 알을 낳고 홰를 치는데 불쑥 달걀을 챙겨서는 바짓주머니에 넣곤
구슬치기하는 아이들 노는 곳에 합류해 놀다 그만 달걀이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주저앉았다가 주머니 안에서 달걀이 터진 기억이 있다.
옷을 버린 것보다 귀한 달걀이 깨지 것을 못내 아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장닭이 사나운 것은 웬만한 개보다도 사나워 낯선 사람이 오면
모질게 좇아가 쪼곤 했던 것도 인상에 깊다.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것은 아버님 친구 분들이나 손님이 오면
기르던 오리의 목을 도끼로 쳐서 잡곤 했는데 몸뚱어리와 대가리가 따로
한참을 바동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 그런지 요 2~3년 전까지만 해도
오리도 잘 안 먹었다. 개의 생간도 먹을 줄 알면서도
'몸에 좋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행태가 역겨워' 보신탕도 특별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곤' 입에 대질 않는다.
무릇 모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것이 밝히는 사람들의 정력에도 좋은 것이지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을 빨아먹는 짓을 하는 잘난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잠잘 시간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이 짓을 하는 것은 습관이냐, 의지냐, 병이냐
답이 없지만 터무니없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세상에 온갖 일이 다 일어나지만,
만약에 전쟁터 같은 곳에서 최악에는 동료를 잡아먹지 않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무슨 전쟁 다큐멘트 같은 것을 보면, 실제로 동료의 시체나 인육을 먹은 기록물을 보고 한 생각이다)
조금 더 살기 위해서 남의 살을 씹느니 기꺼이 내 살을 씹혀주는 길을 택하겠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상상과 달리 현실이 닥친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모든 액션은 생각의 바탕 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취해지는 법이니
평소에 생각한 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크겠다.
원래 조리가 없지만, 자정 넘어 밥을 또 먹곤 잠이 안 와 시작한
이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니 눈꺼풀이 심히 무겁다.
제목을 도루코 면도날로 쓴 것은 아래에 말하고자 하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앞에 이리 긴 서설을 늘어놓은 것이다.
도라무깡(드럼통의 일본식 발음)의 뚜껑까지도 계단 등으로 쓰고, 통조림 깡통도 일일이 펴서 연탄아궁이 환기구 등으로 재활용하던
지금의 북한처럼 궁핍이 도처(곳곳)에 흐르던 시절에 유리로 된 창문을 깬 것은, 사건이 보통 큰 게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도 해결책을 궁리하던 끝에 닭장 근처에 깨진 유리가 있는 것에 착안하게 되었다.
그걸 지금은 보기 힘든(지금도 있기는 하더라.) 한쪽에만 칼날이 있는 면도날을 시멘트 바닥에 갈아 조심스럽게 유릴 잘라 결국엔 창문을 원상복귀하여 위기를 면한적이 있다.
아마, 지금 한다 해도 제대로 유리가 잘라질지 자신 없는, 그 일은 불가사의하기도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절박함은 때로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 기적을 만들어야 할 위치에 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 밥을 먹어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무의식 중에 요즈음 많이 노는 것에 대한 자기경계가 한몫을 하는 것 같다.
2006. 07. 20.
그림: http://www.dor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