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여인! 만나고 싶은 여인!
상계역에서 마들역 쪽으로 약 1km쯤 가면 보람아파트 2단지가 있다. 그 앞에 약수터 갈비가 있었다. 한 15년쯤 전의 일이다. 지금은 생각나는 것이 남편의 성이 洪이었다는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장사를 하든 목이 중요함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목이 좋은 가게를 발견하기는 남다른 안목이 있어야 한다. 노원역 근처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대형백화점 등이 위치하여 유동인구가 강남역 근처와 방불하다. 유심히 보면 그런 곳에서도 위치가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곳에 있는 가게임에도 인파가 흐르기만 하는 곳이 있고위치가 상대적으로 열악해 보이는 곳에 있는 가게임에도 인파가 꼬이고 몰려드는 곳이 있다. 약수터 갈비는 주변의 보람아파트 1,2단지와 일반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을 주로 상대하는 이른바 동네장사의 경우이다. 보람 1단지 쪽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위치이긴 했다. 한 집을 5년 이상 거래해 보면 같은 주인이 운영함에도 기복이 심한 경우를 자주 본다. 길이 바뀌거나 하는 일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고 주변에 경쟁업소나 비슷한 업종의 개체 수가 늘어나 한정된 고객을 나눠 수용하게 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약수터 갈비도 처음 개업했던 때부터 거랠 했었다. 그땐 이른 바 블루오션(Blue Ocean) 이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막 주변상권이 형성되던 시기였었다. 당연하게 장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그런 것이 2~3년 지나면서 유사한 업종도 하나 둘 늘고, 레드오션(Red Ocean)으로 양상(樣相)이 급속도로 바뀔 때였다. 처음 문을 열었던 이는 약삭빠르게 가겔 처분하고 돌아섰고 그걸 인수한 사람이 洪 사장 내외였다. 음식장사 경험도 없었으며 洪 사장, 이 사람은 사람만 착했지 생무지였다. 갈빗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내 역시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생수(生手)였다. 아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비롯해 삼 남매와 같이 그 건물 옥탑방을 얻어 생활했다. 당연하게 가게운영은 힘들어지고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疲弊)해져 갔다. 그런 중에도 洪 사장 아내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1년이 못 가 다른 이에게 가게를 넘겼다. 불과 1년도 거래하지 않았음에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洪 사장의 아내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단 한 번도 찡그린 모습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무능력한 남편을 존대하고 마음에서 공경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가히 천사가 따로 없었다. 부부가 함께 영업을 할 때에 아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대하며 게다가 홍 사장처럼 사람만 착했지 실질적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기본에선 많이 부족할 적에 부부관계는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되고, 아내가 남편을 하인만도 못하게 대하는 것을 셀 수 없이 봐온 터였다.
Core Draw 작업l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방송통신대학에 적을 두고 공부하고 있었다. 갈빗집을 하기 전에 했던 보험외판도 짬나는 대로 하고 있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여느 때와 같이 수금을 하려고 점심때를 비켜 들렀는데, 왼쪽 다릴 손에 들고 손질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의 다리가 의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무릎 아랫부분을 잃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가슴이 싸아하면서도, 生을 껴안는 모습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註:껴안다-혼자서 많은 일을 한데 몰아서 맡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것을 온 몸으로 깨우쳐 준 사람이기도 했다. 당시엔 한 곳에 몇 백만 원의 미수금이 있던 집도 여럿 있었지만 규모에 비해 몇 십만원의 적지않은 외상 값이 있었다. 음식값이 지금의 반 정도였던 시절의 몇 십만 원은 내게도 큰 돈이었다.
수금을 갔다가는 아무 말도 못 꺼내고 온 것이 수도 없었다. 이쪽 업계가 아침에 물건을 돌리고, 오후에 수금을 다니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지만 난 이 업계에 뛰어들면서 수금을 따로 다닌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홍수를 이뤄 밀리는 상황이 아닐 때도.., 그건 시간낭비로 치부했다. 그 시간을 영업이나 공부 등의 생산적인 곳에 돌리겠딘 방침이 있었다. 나름대로 내 기준을 정해 영업활동을 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가게를 정리하던 날 전화가 왔다. 일부러 전활한 것이다. 이보다 상황이 훨씬 나아도 '내일 모레 오라'고 하고 '다음 날' 몸을 피하는 경우를 수없이 봐 온 상태였다.
그녀가 그랬다.
"사장님 아시다시피 우리 사정이 이러니..," 하면서 그녀가 내 놓은 돈은 받아야 할 돈의 절반가량이었다. 성에 차지 않고 마뜩찮았지만, 이내 수용했다. 그것도 고마웠다.
사람이 된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기억에 남는 이유이다.
앞에 예를 든 전과28범 장재철과는 (http://maejoji.tistory.com/entry/◆-정장에서-맨발까지) 비교가 되는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그 후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그녀가 보고 싶다. 이런 기록들이 온전했으면 그녀의 이름이나 그 간의 사정을 좀 더 자세하게 기술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쉽다!
2006.10. 01
그림: 매조지 DB/ 블업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