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님 이하 모든 교육 관계자
새벽에 하릴없이 아들의 흔적이나 살피고 냄새라도 맡으려고 서성입니다.아들의 흔적이란 다른 훈련병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인지상정으로 거리에 군인만 봐도 내 아들 같은 심정인 것은 다른 어느 부모의 심정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야간행군 사진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들렀던 겁니다.
그러면서도 자대배치가 어떻고 하는 궁금함을 지그시 눌러둘 수 있는 것은 그 후의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 몇 개월 정도는 '아들을 잊고' 살고 싶습니다. 그게 어쩌면 아들과 나한테도 플러스 알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서도 하루에 네 댓 번을 들락거리는 심사는 무엇인가요?
내가 아들을 믿는 만큼, 내가 세상을 착하게 살아 온 만큼 아들도 그렇게 살리라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빠에 보다 너무 약해 보이고 착하게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겁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착해서는 안된다.'라는 내 주의에 비교하면 아들은 언제나 여리고 착하게만 보이기에 더욱 그런 노파심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고 착한 사람이 인정받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어쨌든, 한 과정은 끝났고, 그 한 과정을 끝내는 데 중대장, 보급관, 소대장, 조교님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빠의 삶이, 아빠의 군대생활이, 언제나 옳았고, 언제나 정당했던 것이 아니듯이 아들의 인생은 오롯이 아들 것이고, 아들이 헤쳐나가야 할 몫까지 챙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들을 막 보는 것이고, 아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아들의 인생을 대신 살려고 하는 월권행위이기에 그냥 묵묵히 지켜보렵니다. 아빠가 보기에 약하기만 한 아들이 뭇 사내들이 모인 군대란 사회에서, 군대란 집단에서 더욱 단련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훈련의 모든 과정이 끝난 파장이라고 분위기가 썰렁한 것 같아 말도 되지 않는 글을 하나 남깁니다.
장규환 대위, 중대장님!
훈련은 끝났고 애틋한 부모의 심정을 더는 내 보일 수 없겠지만 아들로 말미암아 인연이 된 당신과 나의 만남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소. 물론 이런 심정을 전하는 것은 개인적인 쪽지나 멜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아들이 장 대위의 휘하에 있을 때는 나의 진솔한 마음도 변질할 수 있기에 어떤 action도 취하지 않았던 겁니다.
참고로,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를 뻔질나게 드나들었음에도 심지어 스승의 날에도 박카스 한 병을 사들고 가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선 우리 아들, 딸을 잘 봐 달라는 말 대신 화장실 청소를 시키고 궂은 일을 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고 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 아들, 딸이 선생님의 영향권에서 벗어 나 나의 진심이 왜곡 될 일이 없을 때 몇 만원의 상품권 등으로 고마움을 表하곤 했었습니다.
중대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사택주소로 편지를 드릴 수 있음에도 내 뜻이 왜곡될 수 있기에 고마움마저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훈련의 모든 과정이 끝났으니 중대장 이하 조교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01/05
21사단 신병교육대를 마칠 때쯤 교육대 홈피에 적은 글 중의 하나다.
전방의 겨울은 내장까지 떨리는 혹한이 같이 한다.
지금은, 많이 투명해져 덜 떼어먹어 덜 춥겠지만 말이다.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쉬지 않고 흘렀다.
제대를 앞둔 아들이 불이익을 당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인생행로에 널린 자갈돌 하나 발에 챈 것이고
길가에 개똥 밟은 셈 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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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들이 영창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웬만한 억울함은 감수할 마음이 있지만,
지난달, 23일 이후 가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대가 열흘 늦춰지는 것도 그렇지만, 말년에 영창이라니
http://maejoji.tistory.com/entry/◆-영창營倉
12일 제대가 22일로 바뀌었으리라.
전화 오면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리라.
한국에서 군역은 빠지고 온갖 혜택은 누리며
무임승차하는 정치꾼을 비롯한 기득권자를 생각하면
아들이나 나의 군생활이 덜 보람차게 생각되기도 한다.
이젠, '구성원의 책임'뿐이 아니라 '구성원의 권리'도 누릴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