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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흐름(時流)

◆ 전화방

동생처럼 지내던 이가 있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육군 대위였다.
육군사관학교의 헌병보좌관을 하던 이다.

강원도로 전근이 내정된 상태였는데 아내가 강력하게 전역을 희망해 마음을 굳히고 있을 때쯤, 나를 만난 것이다. 육사 안에 군인 아파트에 살았다. 
당시에 육사 안에 매점 겸 식당을 거래하고 있어서 육사 안의 풍경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긴 했다.

그 덕분에 군인 아파트 뒤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군사 박물관이고 육사내의 여기저기를 그가 마치 상관에게 브리핑하듯 안내를 해 줬다. 그리 고 그때 힘겹게 혼자있던 내 집에 와서 아이들 김밥도 싸주고 그랬다. 그때까지 난 아이들에게 김밥을 사서 멕일 줄만 알았지 만들어 줄 줄을 몰랐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음식에 관한한 아직도 젬병이다. 

그 후론 나도 아이들에게 김밥을 손수 말아주었고, 아이들이 크면서 같이 말기도 했다.
헌병보좌관이 하는
일 중엔 인근 경찰서와 협조해서 해야 하는 일도 꽤 된다.
그건 내가 직접 한 일도 아니고, 여기서 굳이 밝힌 이유도 아니기에 지나친다. 직업군인을 꿈꾸고 오랫동안 군인으로 남았던 그가 전역을 하게 된 데는 구
조적인 문제가 있다.
아내의 어려움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료가 같은 계급일 수 없기에 겪는 고통은 군인가족의 애환이다.

물론 일반 사회에서도 나이에 따라 언니/동생 할 수 있지만,
이건 남편 계급에 따라 서열이 달라지고,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이건 개인의 문제이자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찌 됐건 그런 이유로 전역하게 됐고 전역하기 수개월 전부터 부대 측의 배려로 직업을 찾다 나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지만, 내 영업비밀을 원가부터 800~1,000가지가 넘는 종목의 1급 비밀을 통째로 넘겨주고 같이 다니며 일을 가르쳐주려 했다.

그러나 사람에겐 자기에게 맞는 일이 있는 거다.
'내가 잘한다고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못한다고 누구나 못하는 것도 아니다.'
우람한 체격과 오랜 군 생활로 다져진 체격과 체력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에 나중에 [전화방]을 OPEN했단 소릴 바람결에 들었다.
아마, 다른 업종이었으면 가까우니 가서 축하 해 줬을 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 직업관 중의 하나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모텔이나(이것 한때 많이 이용했음에도.) 물장사로 일컫는 술장사나 계집장사는 터부시하고 웃기지도 않게(?) 금기시하는 자의식이 있다. 아마, 잘못된 교육을 받은 결과이리라.

러나 인생은 정답이 없다.
그냥, 나는 싫어서 그런 것은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동생의 절박함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 후로 만난 적이 없다.
찾아 나서면 같은 구(區)였으니 금방 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내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더 급하다.


그림:D/고화질/고화질 디지털 이미지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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