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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흐름(時流)

◆ 부국론(富國論) 01

8월부터 읽은 11권과 지금 보고 있는 3권의 책이 유감스럽게도 사회과학분야로 쏠림현상이 심하다.
아래 내용은 20년도 더된 1985년 이후에 故 이병철이 쓴 부국론(총 6회인데 다 옮겨 놀 생각이다.)인데
아담스미스의 국부론과 케인즈의 미녀투표보다 현재의 한국 경제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될것 같아
직접 타이핑하였다. 보통사람의 시선을 가진 내가 20년도 더 된 시차와 재벌회장의 입장에서 기술한 내용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곱씹어볼 내용이 꽤 된다.

제 1회-환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되자.


먼저 결론부터 분명히 밝히면 한국은 '환태평양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유력한 위치를 굳혀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은 이와 같은 올바른 시대 인식을 확고히 견지하는 동시에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책임과 역활을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대 역사학자 토인비의 문명주기설에 따르면 인류 문명의 성쇠는 800년을 주기로 하여 그 주축이 서양과 동양 사이를 오간다고 한다. 기원전 그리스 로마 문명시대가 성쇠하자 중국의 수* 당 시대를 정점으로 하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 문명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이어 다시 영국 중심의 유럽문명이 개화했지만 그것도 금세기가 마지막이다. 앞으로 28세기까지 800년간은 재차 아시아 문명이 지구의 주역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정설이 되어 있으며 현재 세계경제의 실태도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첫째로 지적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일본, 호주, 대만, 싱가포르 등 태평양 연안 제국 즉, 환태평양 지역이 지난 4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해왔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에는 세계의 총 GNP에서 겨우 2퍼센트밖에 점유하지 못했던 것이 오늘날 10퍼센트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 그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들도 세계가 주시하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4반세기 동안 국민 총생산이 23배나 늘어 'GNP 1,000억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전세계가 한국의 경제발전을 주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엔 소련과 중국마저도 한국경제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태평양 연안의 한국을 비롯한 14개국 GNP 총계는 세계 총계의 절반에 가까운 44퍼센트(1984년 현재)를 차지하며, 영국, 프랑스, 서독 등 유럽공동체의 그것은 1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두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환태평양 지역 내에서는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가 매우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의 무역은 15년 전인 1970년만 해도 미국과 일본 사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컸지만 1980년에 접어들자 일본과 신흥공업국 사이, 그리고 미국* 신흥공업국 사이의 무역 비율이 두드러지게 높아지고 있다. 이 상호의존 관계의 심화는 비단 무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의 한 저명한 경제학자는 '비교우위의 이론'과 함께 산업의 수평적 국제분업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자유세계 제 1위인 미국경제, 제 2위인 일본경제, 그리고 아시아, 태쳥양 지역 제국의 경제가 서로 보완하면서 긴밀한 협조,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중대한 변화로 평가된다.

 때마침 일본 경제기획청이 발표한 '태평양 시대의 전망'이라는 보고서도 21세기의 세계경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공업국과 일본, 중국 등 태평양 지역제국이 주도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재작년 여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백곽관에 환태평양 협력위원회를 설치할 때, 대서양이 '현재의 바다'라면 태평은 '미래의 바다'가 되었다고 했었다. 물론, '환태평양의 시대'를 단순히 GNP의 크기나 무역의 양만으로 말할 수는 없다. GNP나 무역을 지탱하는 사람, 즉 사람의 힘이야말로 모든 가능성의 원천이 되는데, 우리 한국은 그점에서도 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교육수준이 높고 근면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 국민성, 어려운 일에 맞서는 용기와 인내심도 뛰어날 뿐더러 예의와 의리, 신의를 존중한다. 이것들은 모두 오랜 역사와 전통과 문화에서 배양된 우리의 더없이 소중한 인간적 자산이며 또한 한국의 크나큰 강점이기도 하디. 원로 사학자 이선근 박사는 우리 민족이 4,000년의 역사상 1,000회으ㅔ 가까운 전란을 겪으면서도 단일민족, 단일언어, 단일문화를 유지하며 국가를 발전시켜왔다고 했다. 그 강한 정신력과 왕성한 생존력이 있는 한, 불가능한 일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잠재력을 가진 국민이다.

석유나 금광맥 같은 지하자원이 있어 요행으로 치부하는 경우와는 달리 국가의 경제건설에는 '힘'이 필요하다. 환태평야시대라고 말하는 것도 한발 앞서 경제대국이 된 일본과 그 일본을 뒤쫒는 아시아 신흥공업국이 이미 충분한 힘을 갖고 있거나 착실히 힘을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의 힘으로 만든 철이나 선박이 세계시장에 힘차게 진출하고 있으며, 우리 손으로 만든 자동차는 이미 캐나다 시장에서 수출차 제 1위의 자리를 쟁취하고, 심지어 자동차의 나라인 미국시장에서도 상당한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 반도체 생산국이 되었으며, 한국의 컬러 TV나 VTR이 선진국을포함한 세계의 여러 항구로 쉴 새 없이 실려나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5개년계획으로 본격적인 경제건설에 착수했던 25년 전만해도 이와 같은 일을 어느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신흥공업국의 선두주자로서 기개와 자부심, 그리고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확고한 자신감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대를 올바르게 인식하면서 무엇이 긴급하고 불가결한 과제인가를 규명하고, 적확하게 대처해가는 것이 긴요하다.

 물론 국방은 우리나라 최우선의 과제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호전적인 북의 공산세력과 지금도 대처하고 있어 국방에는 일각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 국방력이 상당히 강력하다고는 하나 아직 미국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 독자적인 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민생의 안정 또한 국방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이다. 의식주의 일정 수준이 확보되고, 국민 대부분이 일상생활에 만족하면서 근면,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저절로 애국심도 고취되고, 국방력도 보완되어 안정보장상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방력을 강화하고 민생의 안정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대의 열쇠는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경제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시대인식에 바탕을 둔 국가 지도자의 탁월한 지도력과 추진력이 요구되며 선견지명 있는 완벽한 정책, 그리고 국민의 일치단결이 필요하다.

 방대한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미국'의 기치 아래 SDI(우주전략방위) 구상을 펴면서 대 소련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한편으로는 인플레와 불황을 동시에 극복하고, 과감한 세제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민간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은 레이건 대통령,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폐허에서 조국을 훌륭히 부흥시킨 아데나워 서독 수상, 허다한 저항을 무릅쓰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단행하여 경제활동을 효율화함으로써 30년에 걸친 고질적인 영국병에서 나라를 소생시킨 '철의 여인' 대처 영국 수상, 이들은 모두 미래를 적확하게 통찰하며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회당을 이끄는 미테랑 대통령은 도리어 민영기업을 차례로 국유화하는 등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정책으로 경제는 활력을 잃고 침체를 자초하고 말았다. 무역적자의 증대, 실업자의 급증이라는 사태에 직면하자 결국은 뒤늦게나마 시장경제원리와 경영합리ㅘ를 주장하기에 이르렀지만 이미 그 손실은 너무도 컸을 것이다.

 이 네 지도자의 치적은 국가 지도자의 지도력과 국가, 민족의 운명과의 상관관계를 여실히 밝혀주고 있어 매우 시사적이다. 지금 우리는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창조적 에너지를 폭발시켜 번영을 확고히 다져야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데, 과연 그 기회를 살리는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가.

 우리 현실은 이런 질문에 얼마나 자신 있는 답변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모처럼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 이유로 우선 작금의 정계 혼미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헌법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건국 후 40여년 동안 8회나 거듭된 개헌은 명분이야 어쨌든 부끄러운 일이며 아직도, 확고한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한 채 당리당락에만 치우쳐 혼미가 계속되고 있다. 근대국가로서 참으로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다. 영국 같은 나라는 명문의 헌법 없이도 250년 동안이나 똑같은 권력구조와 정부형태를 유지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혼란은 경제를 비롯한 다른 모든 중요과제를 상대적으로 등한하게 만들어 국가와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손실을 끼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전세계가 저마다 경제발전에 몰두하고 있는데 우리만 유독 정치에 관심을 쏟으며 혼돈에 빠져 있다. 학생 중심의 과격한 반체제 시위도 우려된다. 자유를 부르짖는 것도 좋지만 자유는 항상 절도와 책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서 국가, 사회에 대해 어떤 책임과 역활을 하고 있으며 또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고대 아테네의 쇠퇴는 아테네인이 자유를 추구하는 데만 성급하여 개개인이 희생할 책임을 잊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식과 정신의 해이도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공연히 축제분위기에 들떠 근검절약을 잊고 유흥이나 낭비를 좆는 사회 풍조가 일부 만연하고 있음을 우려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무엇보다도 먼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사안일이나 사심을 극복하여 작은 이해관계를 버리고 대도에 따르는 이해와 관용의 국민정신이다. 우리는 지금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등 삼저(三底)의 순풍을 맞고 있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서양 격언이 있고 '행하는 자는 늘 이루고, 가는 자는 항상 닿는다.'라는 동양의 명언도 있다. 좋은 기회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은 굳은 의지로 단합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자. 나는 거듭 이렇게 강조하는 바이다.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상은 과연 '환태평양 시대의 도래'라는 번영을 이룩할 절호의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우선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기업이나 기업가 또는 사업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좀더 깊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제정책에 아직도 보환애햐 할 점이 많이 남아 있다든 것이다.

 첫째 문제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업과 기업가의 역활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빈익빈(貧益貧)의 논란이 있는 것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절대적 궁핍론'에서 자본과 자본가는 이윤만 추구하고 노동자는 노동력을 항상 착취당해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봉기하여 자본가나 자본주의는 파멸된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붕괴가 멀지 않다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있은 지 1세기가 지났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는 붕괴하기커녕 오히려 번영일로를 걷고 있다.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60년대의 소련 공산주의 경제정책을 '근거없는 환상'이라고 비판하면서 생산수단의 무조건적인 국유화나 생산과 소비의 평균화는 국가 발전의 장애요인임을 지적하며 최근에 29개 업종의 사기업 활동을 인정하는 법률을 연방최고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의 '신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측의 솔직한 일대 반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소련이나 중공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가 그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자유경제체제의 배울 것은 배우고 그 장점과 이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현실은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더구나 한반도 남북의 경제 격차는 이것을 뚜렷이 말해주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분배문제가 제기되고 잇는 사실은 주목할 일이다. '대기업은 분배에 무관하다.'라는 논의도 그 일례이다. 기업의 분배에는 사원, 종업원의 급여나 상여라는 형태로 지급되는 직접분배와 납세라는 형태의 간접분배가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간접분배에 대한 이해가 적다. 직업안정, 의료보험, 서민주택건설, 근로자 복지, 극빈자 보호 등의 사회보장을 비롯해 의무교육을 하는 초등학교에서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투입되는 교육비 등 간접분배는 1985년의 경우 국가 예산의 약 30퍼센트인 3조 3,000억 원이 넘는데 그 재원은 국민소득세 1조3,000억 원을 비롯하여 기업의 법인소득세 9,800억 원 등 갖가지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구미나 일본의 사회보장정책에 따른 간접분배는 물론 우리나라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미국의 경우 1985년도 사회보장에 지급된 간접분배는 국가 예산의 43퍼센트나 되는 4,100억 달러, 영국의 경우 총 예산의 35퍼센트인 69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가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 이처럼 사회보장의 규모도 커지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착실하게 사회복지를 실행해가야 할 때다. 정부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5년 동안 총 14조 1,000억 원을 직접적인 사회복지제도에 투입할 계획이다. 그 계획 자체는 훌륭하지만 재원을 어떨게 항구적으로 확보하는냐가 문제다. 여기서 심사숙고해야 할 일은 생산기반 없는 복지의 확대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나 하는 것이다. 완전한 대비와 충분한 검토가 없으면 나중에 불가피하게 재원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때 다시 복지를 줄이려고 하면 국민은 이중의 고통을 당하게 된다. 한번 늘려놓은 가계를 줄이기는 어려운 이치와 똑같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도 기업이 성장 발전하여 국가에 많은 세금을 납부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이병철 경영대전 부록-이병철의 언론 기고문               저자:홍하상   출판사: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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