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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대 흐름(時流)

◆ 머리 모양



떠도는 머릴 몇 개 주워왔다.
참으로 다양한 모양의 개성 넘치는
머리 모양이 많다.

바죠가 꽁지 머릴 봐 주란다. 봐 주마!

아무리 서양 애들이라도 30년 전에는
이런 머리가 유행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로 조사를 해 보지 않아 잘은 모르겠지만 
2006년 지금처럼 trend까지는 아니었을 거란 말이다. 
 그런데 난 이미 35년 전에 이런 부류의 머리를 하고
다닌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선각자였다.



1972년 난 고 2였다. 휘문고에 다니던 한*이와
우리 학교 1년 선배 그리고 동창인 윤*모
이렇게 넷이서 의기투합하여 금호동 산꼭대기에
방을 얻어 놓고 아이들을 모아서 과외 지도를 했었다.
윤*모 이 친구는 대전에서 동아일보 지국장을 한다.
이놈은 고1 때 부터 신문배달과 태권도장의 사범을 하던 놈이다. 
그런데 우리를 후원해준 분이 바로 이런 식의 머릴 하고 다녔었다.
아마 20대 초반이었는지 후반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 데 목수였다.
책상을 만들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http://maejoji.tistory.com/entry/◆-친구-1


<머리의 반은 빡~빡 밀고 반은 길게 기르고 다녔던>
그 사람이 이런 머릴 보면 생각난다.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은 빤히 보고 있어도
그땐 모르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가 보다.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

참고: 단발령
을미사변 이후 새로이 조직된
김홍집 내각은 양력을 사용하고 소학교를 설치하며 군제를 변경하고 단발령을 내려 이를 강행하는 등 급진적인 내정개혁을 추진했다. 그중 단발령에 관해서는 고종이 먼저 서양식으로 이발을 했으며 내부대신 유길준은 백성에게 강제적으로 상투를 자르게 했다. 그러나 을미사변 이후 극도의 배일적인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행해진 이 개혁은 일반 백성들로부터 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특히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함부로 하면 불효가 된다는 유교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겨오던 선비들이 크게 반발했다. 더구나 김홍집 내각은 친일내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단발령이 일본의 배후조종으로 나온 것으로 판단한 이들은 더욱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인석(柳麟錫)·이소응(李昭應)·이춘영(李春永)·김복한(金福漢) 등이었다. 그결과 정부는 이들 의병을 진압하기 위하여 친위대를 파견해야만 했다. 이 와중에서 이루어진 고종의 아관파천을 계기로 김홍집 친일 내각이 붕괴되고 김홍집은 단발령과 민비의 죽음으로 흥분해 있던 백성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출처: 브리태니커 사전.

을미개혁 때 단발령을 발표한 공문

사진 출처: 중앙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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