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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M)스트리트/돈

◆ 국민은행 02

 세월이 흘렀다. 악연은 잊어버리고 순전하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국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
았다. 은행은 제일/동화/신한 등 몇 군데를 거래했었다, 
인터넷뱅킹이 활성화되기 전엔 은행별로 프로그램을 따로 깔아야 했고 사용법도 불편했으며 심지어 은
행직원들도 담당이 아니면 모를 정도였고 어떤 은행은 국내 굴지의 제과업체 외에
한두 곳만 펌뱅킹을
쓰고 있을 정도였다. 당연하게 개인으론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밥 먹고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나 보다. 펌뱅킹(인터넷뱅킹의 전신)을 작든 크든 거래하는 은행마다 설치하느라 시간을 할애했었으니.


 1991년 가계당좌 개설을 하는 중에 재산세납부실적, 은행카드소지여부, 결혼유무 등을 점수화하여
격을 정했다. 자기 은행에 얼만큼의 이익을 주느냐가 중요할 터였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중에 직업란에 행상이라 썼다.
직업군에 따라 점수가 높아진다나 뭐라나? 하면서 상업이나 자영업 또는 사업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 직업도 마음대로 못 쓰나 하는 생각과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아왔고 신용을 우선으로 파악
해야 할 은행에서 타성에 젖어 고객에게 직업의 명칭도 바꾸라.
 
"자격이 안 되어 가계당좌 개설을 못 하면 할 수 없지요.' 그냥 행상으로 갑시다.
그랬다. 약속어음과 당좌수표, 가계수표 20매 각각 쓸 수 있지만, 행상의 규모에 맞게 가계수표(당좌-
500만 원권 20매만) 받아쓰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을 굳이 행상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상업이란 것이 단계가 있어 규모에 따라 행상과 상업과 사업의 구분이 필요할 것이란
단순한(?) 생각과 너, 나 할 것 없이 사업이고 자영업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발과 惡童의 발상에
서 자칭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상업의 규모는 월 매출이  몇천에서 1억은 돼야 하고 적어도
사업이라 칭할 수 있으
려면 월 3~5억 이상의 매출규모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상업까진 해 봤는데 발
목을 옥죄는 운명이란 놈의 장난으로
사업다운 사업은 해 보지도 못하고 다시 행상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상계동과 묵동지점을 거래하다 가게를 옮긴 관계로 중랑구에 있는 某 지점을 거래했다.
당시 묵동에 3층 집이 있었고 2가구에 저촉되지 않는 퇴계원에 건영 강남 아파트 32평형을 세 주고
었다. 돈이 필요해 은행에 가서 절차를 밟고 여러 가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라는
대로 해서 가지고 갔
는데 아파트 본사에 가서 뭔 서류를 다시 해 와야 한단다.
그때, 담당 라인에 박 차장이 있었다. 그 친구가 설명한 대로 해 왔음에도 "미안하다. 착오가 있었다."
며 추가 서류를 요구한 것이다.
박 차장에게 그랬다. 그건 내가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당신이 설명한 대로 난 다 갖춰왔으니
다시 할 필요가 있는 서류는 당신이 해 와야 한다. 설득 반 야단
반을 했다.


나중에 아파트 본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은행 거래를 얼마나 많이 하시기에 은행 차장이 운전기살 대동하고 와서 서류를 대신 발급
해 가지고 가냐?"
라고, 확인 겸 놀라움을 표했다.
그것 뭐 별것 아니다. 난 원칙대로 했을 뿐이다.
돈을 빌리는 처지이지만
은행이 어떤 곳인가? 공짜로 빌려주는 것 아니지 않은가?
내가 빌려쓰고 이자 내는 돈으로 월급 주고 운영하며 이익을 창출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은행에 갔을 때 마침 점심때면 은행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곤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박
차장이 의정부 신시가지 시청 앞으로 전근을 갔다. 그쪽에도 거래처가 있어
볼일을 보곤 일부러 한 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 후 얼마, 안돼 죽었다.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나보다 2~3세 정도밖에 더 먹지 않았음에 더 애석하다.
그 몇 개월 전에 고르비의 이마에 있는 문양 같은 것이 커다랗게 이마 쪽에 생긴 것을 봤는데 그게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 그의 죽음은 무슨 볼일로 집으로 전화했다가 그의 부인을 통해 들었다.

                                                                                              2006. 08. 24.

 
그림: 매조지 DB/ PhotoDisc/PD/PD017 세계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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