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중국 우화
시민 마하티르(말레이시아 총리)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는 관할 경찰서의 그린스펀을 찾아가 신고하면서 도둑은 전과범인 소로스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린스펀 경관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도둑만 탓할 것도 아니지요.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선생 잘못도 있지 않을까요?"
시민 마하티르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 도둑은 어째서 중국이나 인도는 털지 않는 거요?" 그린스펀 경관이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중국과 인도는 담장이 너무 높아서 소로스가 넘어 다니기에는 불편합니다. 담에서 떨어져 목숨이라도 잃
어보세요. 내 일만 늘어나지 않겠소?"
도둑 소로스가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흥, 담이 높으면 구멍을 몇 개 뚫으면 간단하지 않겠나?"
그린스펀 경관이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더니 속삭였다.
"걱정말게, 벌써 헨리 폴슨을 중국으로 보냈으니 2006년 말쯤에는 아마 큰 동굴이라도 몇 개 파놓을 수
있을 걸세."
도둑 소로스는 크게 기뻐하며 휴대전화를 꺼내 일당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들은 멍청하고 돈은 많은 중국으로 어서 가세나."
◆ 1990년 시작 된 일본의 불황은 1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 증시는 70%
나 폭락하고 부동산은 14
년 연속 하락세를 유지했
다.
◆ 월리엄 엥달은 말했다.
"미국의 경쟁자 중 일본
만큼 레이건 시대의 재정
적자와 거액의 정부 지출
을 충실하게 보완해준 나
라도 없을 것이다. 과거
독일도 워싱턴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주지는 않았
다. 도쿄는 미국 국채와
부동산, 기타 자산을 흔쾌
히 구매했으나 돌아 온 보상이라고는 역사상 최악의 금융재난이었다."
◆ 아래에 책의 내용중 우리와 관계된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아시아 통화 교살전
1990년대 초에 런던과 월기의 금융 세력은 동부 전선에서 조금씩 자신들을 압박해오는 일본 경제에 큰 타
격을 입혔다.
-중략-
정부가 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아시아 경제 모델'은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렸다. 이 모델은 국가가 자원을
집중해서 핵심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수출주도형 경제를 일으키고 국민은 저축을 열심히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970년대부터 동남아 지역에서 이 모델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효과도 대단해서 동남아 각국 경제
는 공전의 번영을 누렸다. 국민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되고, 평균 교육 수준도 훌쩍 높아졌으며, 빈곤층의
수도 크게 줄었다. 월가에서 추진하는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위배하는 이 새로운 경제 모델은 점점 다른
개발도상국의 관심을 끌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국제 금융재벌들의 통제하면서 해체하기라는 기본 전략
방침에 심가간 위협을 미칠 것이 뻔했다. 아시아 통화 교살전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다. 그 취지는 '아시
아 발전 모델'을 공격해서 아시아 화폐의 대달러 환율을 형편없이 평가절하함으로써 미국의 수입 가격을
내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의 핵심 자산을 헐값에 구미의 기업으로 팔아 넘
기도록 함으로써 통제하면서 해체하기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다. 그 밖에 중요한 또 하나의 목적이 있
었는데, 바로 아시아 국가들의 달러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 지역은 달러를 비축
해야 중요한 시기에 요긴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는 달러를 함부로 투매할 생각을 하지 못
할 터였다.
-중략-
국제 금융재벌들은 첫 공격 목표로 태국을 지목했다.
<타임>은 직접적인 태국 바트화의 폭락을 일으킨 금융 해커를 인터뷰했다. 금융 해커의 묘사는 잔혹하면서
도 사실적이었다. "우리는 마치 높은 산등성이에서 사슴 떼를 내려다보는 굶주린 이리 같았다. 태국 경제는 아시아의 작은 호랑이라기보다 상처 입은 작은 들짐승에 가까웠다. 온전한 사슴떼를 더욱 건강하게 보호하고자 우리는 병들고 약한 사냥감을 선택했다."
1994년 이래로 위안화와 엔화의 평가절하 행진이 위아래로 압박을 가하면서 태국의 수출은 현저히 약화되
었다. 달러와 연동제를 취하는 바트화도 달러의 강세에 밀려 위험 수위까지 내몰리면서 위기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수출 하락과 해외 핫머니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부동산과 증권시장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
다. 이와 동시에 태국의 외화보유고는 380억 달러나 되었지만 외채 총액은 그보다 훨씬 많은 1,060억 달러
에 육박했다. 1996년부터 태국에서 국외로 빠져나가는 순유출 자금은 GDP의 8% 수준까지 올라갔다. 심각
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태국의 은행은 부득이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따. 이 조치로 인해 안
그래도 채무의 늪에 빠져 있던 태국 경제는 설상가상의 지경으로 치닫게 되었다.
-중략-
일본은 막강한 금융 실력과 충분한 외화보유고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화폐를 직접 공격하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따라서 국제 금융재벌들은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을 무기로 사용해 시간
적으로 '원거리'사격과 '초단거리' 사격을 함께 퍼부었따. 그 효과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때 새로운 항공모
함 전술로 일본의 주력함을 공격하는 것과 맞먹었다. 일본의 거대한 주력 함포는 제대로 위력을 발휘해보
지도 못하고 바다 밑으로 수장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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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해커들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 동원한 전술은 주로 화폐자체 공격하기였다. 현지 화폐와의
장기적 화폐 협약과 주식선물거래로 양쪽에서 혐공을 가하는 총공세는 동남아 지역과 한국을 반년이나 강타했다. 태국은 금융 해커들과의 교전에서 완전히 패한 후 IMF의 함정에 스스로 걸려드는 우를 범하고 말
았다. '국제기구'에 대한 맹목적인 신임으로 국가의 안위를 남의 손에 맡김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 중략 -
이리에게는 이리의 원칙이 있고 이리 떼에게는 그들만의 분업 방식이 있다. 소로스가 씨티은행이나 퀼컴
등 쟁쟁한 은행 그룹의 책략에 힘입어 사냥감을 잡아놓으니, 상처 입고 널브러진 사냥감은 이내 IMF로 넘
겨져 도살되어 경매에 부쳐진다. 경매대 앞에는 구미의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면서 속속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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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폐전쟁(쑹훙빙,차혜정 옮김,랜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