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형이하학적인 물건이면서
형이상학적인 깊은 곳까지 관여하는 마력을 지닌 것.'
이것이 돈에 대한 경험칙에 의한 나의 평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큰돈은 아니라도 돈을 버는 일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피와 땀을 흘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쓸 만큼 번다.'
이것이 돈에 대한 나의 소신이라고 큰소리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요즈음 깨달고 있다.
아니, 소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돈에 대한 나의 가치평가가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잘못된 것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30대 후반, 아니 40대 초반까지 저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며 올라오던 주체할 수 없던 자신감도 지금은 없다.
다만, 팍팍한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 말처럼
막연하게 예전의 기백은 맥을 잇는 것 같은 감은 있다.
그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다.
예전에 음식점 같은 곳에 가면 세종대왕이나 퇴계 선생을 코팅해서 벽이나 문 위에 걸어 놓은 곳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좀 친한 주인에게는 그 천박함을 탓하기도 했었다. 그땐 그들의 절박함을 몰랐던 것 같다.
돈이 주는 삶의 무게를 침잠沈潛)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는가 보다.
자다 일어나서 '돈 벌 준비를 했다.'
간단한 광고를 작성했다. 오전 중에 인쇄소에 넘기고 머릿속에 있는 다른 아이디어도 구체화 시키고 이제 예전처럼 뛰어야겠다.
나일 먹으면서 직업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은 '전업투자가'가 꿈이지만 아직은 준비를 더 해야겠다.
임계점이란 닉을 한시적으로 쓰게 된 투자도 아직 몇 날의 시한이 있긴 하지만 실패다. 김정일이 힘을 보탠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무리하게 대박을 노린 결과이다. 승복한다. 갈 길이 바쁘다고 한목에 큰 것을 노
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기 합리화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뻔히 알면서 내린 결정에 후회나 이
견이 있어선 안 된다. 한 번 고꾸라지고 2~3년간 한하운 시인이 겪은 인생 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
혈이지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어려운 일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도 극복할 가치가 있다'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스스로 자신에게 채찍질하f려고 스스로 만든) 금언도 헛되게 생각되기도 했던 시기였다. 그런 고통 끝에 자리잡아 가던 2005년 12월 발생한 화재는 모든 걸 다 가져 갔다.
'그래, 제기랄! 맞으려면 아주 혹독하게 맞아야 해.'
시청에서 난민 지원용 모포와 라면, 쌀, 개스버너 등으로 마을 회관에서 며칠 기거하던 중 자위하며 씨부렸던 말이다. 호주에 가 있는 딸이 전화 했다.
"아빠, 목소리가 피곤해 보여요."
"아니, 뭔 소리"
하고 대꾸를 하면서도 뜨끔하다. 내가 이렇게 죽어 있음에. 이젠 행동해야 할 때다.
2006/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