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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주체/옷주제/잘 자고, 잘 놀기

* CROSS

  조금 길게 쓴 글이 등록하기 전에 뭐가 잘못됐는지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지나친 여인에 대한 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센티한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어서도 아니고, 뭔 자랑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이십 사오 년 전에 요즈음의 시류와 무관하지 않은 행태를 보인 여자의 태도가 새삼 기억되며 경제와 인간의 관계와 그 각론에 속할 '여자와 돈의 관계'를 곱씹어 볼 뿐이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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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을 운영할 때, 동생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제기동에 가던 길에서였다. 1980년대 초였으니, 물론 총각 때였다. 학원에서 행사가 있어서 원생들과 도봉구의 어느 학교에 있다가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단도리(단속)하라 이르고 잠시 다녀오려고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그녀가 고대 앞쯤에서 합승한 것이다. 그녀의 오빠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예식장에 가는 길이라는 그녀의 행선지가 경동시장 끝자락에 있는 K 회관이란다. 나도 거길 가는 길이었다. 뒷좌석에 탄 그녀의 사진을 찍어 주고 그걸 빌미로 우린 그 후 약 3년 정도를 만났다. 긴 생머리에 아담하며 보기 좋은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를 가졌었다. 택시에서 처음 찍어 준 사진이 어딘가에 굴러다닌다.

대학로로, 태릉으로 철 따라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고 정치/문화/사회/경제/ 등을 안주 삼아 술도 꽤 마셨다. 주량도 상당해서 둘이 앉으면 4홉 맥주로 10여 병은 가뿐하게 치우곤 했었다.

  경제 신문사의 기자라고도 했고 H 미대를 나온 양 행세를 했는데 굳이 확인할 이유는 없었다. 나중에 잘 있는 미술 선생을 내 보내고 그녀를 학원으로 불러들여 미술 분야를 맡겼다. 가끔 이종사촌 오빠라고 하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된 얼굴이 까만 사내가 들르곤 했었다. 40대 후반의 그 치와 횟집에 앉아 술을 마시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려면 그녀가 말을 끊고, 막고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그때쯤, 내가 살던 공동 주택의 마을 일을(감사) 맡아 이미 하자보수 기간이 지났지만, 노인정을 지어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신(건축주)의 건물을 임시로 빌려 주고 있던 불합리한 일을 해결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던 때, 당연하게 시간에 쫓겼는데 늦은 시간에 그녀가 보고 싶었다.

 물론 학원에서 종일 같이 있었지만, 그녀에게 전화 했는데 오지 말란다.
신설동 K 학원 뒤에서 혼자 자취를 하던 그녀의 만류에도 택시를 타고 갔는데 웬걸, 그녀의 방문을 여는 순간 그 이종사촌이란 자는 침대 아래에 있고 그녀는 침대에 엎뎌 있으며 방엔 맥주병이 즐비했었다. 통금이 있던 시절 나는 사내를 불러내어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탠드바에 앉았다. 술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며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대화(?)하느라 악을 쓰곤 했었다. 
  "당신이 M을 사랑하면 이쯤에서 물러서라고..,"
의정부에 거주하던 그는 광화문 세무서의 직원이었으며 당시 두 명의 자녀도 있었던 유부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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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치의 이름은 '박상덕(실명 같은 가명)'이었고 광화문 세무서 재산세과에 근무하던 者인데 그녀가 끌고 다니던 중고차(포니)도 그치가 사 준 것을 나중에 알았다. 더구나, 의정부시 가능동 136~*호에 당시(80년대 초) 가격으로 6,000만 원이 넘는 집을 그녀를 이용해 팔려고 했었다. (학원 전화를 이용해 J 일보에 매도 광고를 낸 것을 내가 전화를 받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그 집을 그녀의 이름으로 해 놓았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른다.  

 어쨌든 그날(당시에는 통금이 있었다.) 신설동 근처의 스탠드바에서 그에게 울분을 터트리다 그가 집에 가려고 잡은 택시에 무작정 동승을 했다. 도봉세무서 뒷길에서 내려 옥신각신 한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그 후는 그자와 어떤 결말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의 차 안에서 끝없는 이야길 나누었지만, 답이 없었다.

 학원의 책장에 둘이 찍은 사진을 놔두곤 했었는데 내가 찢어 버렸는지 그냥 치웠는지도 지금은 기억이 없다. 필름은 2005년 화재로 타 버렸다. 그 일이 있고서 국방부 작전과에 근무하던 그녀의 친구 미란 일 만났었다.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야간엔 동부이촌동의 고급 레스토랑(술을 주로 팔았던) 곳에서 아르바이트했었는데 용산에서 만나서 그녀가 일하는 곳에 가서 깜 씨라 불리는 그 치에 관한 이야길 들었다. 미란 이의 말을 빌리면 나를 만나기 2~3개월 전에 우연하게(?) 그 치를 만났는데 어찌해 볼 도리없이 얽혀 고민스러운 관계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말로 하면 '원조교제'와 다름 아니다. 

 돌이켜 보면 순진하기가 지나쳐 바보스럽기까지 했다. 세무서에서 온갖 못된 짓으로 긁어모은 돈으로 우연히 마주친 처녀에게 집과 자동차 등을 제공하고 그것을 빌미로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한 거다. 그러다, 나와 사귀게 된 그녀를 놓아 주지 않고 제 욕심만 채웠던 것인데 사회경험이 일천하고(짧고) 바보스러운 나는 그냥 그녀와 헤어지는 것으로 일단락하고 말았다.  

  후, 내가 결혼하기 한 주일 전쯤에 신설동에서 동대문 구청 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CROSS란 레스토랑에서 만나 기껏 건넨 말이 '3~40년 후라도 만난다면 목례(눈인사)는 하자'는 투로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일 년쯤 전 창동 언저리에서 내 앞에 가는 '아토스' 빨간 차에 그녀와 비슷한 여자가 있는 것을 그 차를 앞지르며 봤다. 백미러를 통해 그녀의 차를 보면서 잠시 망설였다.  
    
'그녀일지 모르는데 내려서 확인해 볼까?'
     '만나서 무슨 의미가 있는데,?' 
혼자 자문자답하는 사이 뒤에 오던 차가 좌회전하여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래, 그냥 기억은 추억으로만 남겨 놓는 것이 옳은 일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accelerate를 힘껏 밟았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일 뿐이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맞는 것이 지나친 인연이나 지나친 인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옳으리라 다짐하면서...

플래닛 정리를 하다 친구공개로 되어 있는 것을 비밀해제를 했다. CROSS는 동대문 구청 입구에 있던 커피 샵의 이름이고 거기에서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다. 나 결혼 한 주일 정도 앞두고.., 산파 극의 대사처럼 내가 그랬다. 
  "몇십 년 후에 길에서 마주친다면 눈인사는 하고 지내자"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위의 글처럼 생각이 바뀌어
<지난 것은 지난 것일 뿐이다.>라는 태도를 보이게 됐다.
                                                                                                                                   2006/09/02         

그림: 매조지 DB/ Catalog 22/Conce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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