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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 노가리가 웃더라.

자동차가 퍼졌다.
지난 금요일 '크르릉`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금속류를 아스팔트에 질질 끌고 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마후라가 떨어졌나 갸우뚱하며 보니 엔진룸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홴 크럿치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더니 이내, 타임 벨트와 워러펌프 쪽에 문제란다. 가볍게 생각했더니 중증이란다. 용마산역 근처의 S 카센터에 맡기곤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사가정역-면목역-동원 시장을 관통-상봉동 E마트-망우사거리-망우리고개-교문사거리-농수산물센타-동구릉-사노동까지. (사후에 위성지도를 켜고 거릴 재 보니 10km가 좀 넘는다.) 망우역 근처에 오니 벌써 양쪽 사타구니가 아프고 망우리 고갤 넘는 중에 발바닥이 화끈거리더라.
평소에 걷기에 소홀했단 증거다. 기껏 팔굽혀펴기 몇백 개 하는 것이 다였었다. 완전군장을 메고 10km 산길을 구보해도 50분 정도 걸리던 20대가 그립다. 살다 보니 망우리 고갤 걸어서 넘는 날도 있구나 !!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망우리 고갤 향해 오르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순서 없이 되새겨졌다. 고개 중턱에 초소가 있는 곳 근처에서 '명순이'와 차에서 데이트하던 생각도 났고, 춘천가도 쪽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에 그녀가 운전하는 옆에 누워 귀경하던 날도 생각났다.
 망우(忘憂)는 '잊을 망 근심 우'의 한자가 말해주듯
'근심을 잊다.'라는 뜻인데 근심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지난 일이 생각 키워 진다. 생각을 틀어보면 인생에서 <쓸데없는 일이란 없다.>고 믿는다.
<忘憂 !> 무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의 이름으론 참으로 근사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장사익이 <무덤>이란 노래에서        

<마지막이 있다는 것이 / 더없이 편안해 보였는데>라고 소리치고, 이어지는 가사가 좋아 수도 없이 듣는다. <무덤 앞에는 비석 조차 없이/누구를 사랑했는지/누구를 미워했는지/알 길도 없이/새소리만~새소리만 들리는 것이/더욱 맘에 들었네>
22:00가 넘은 공동묘지 입구의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뜬금없는 생각을 이어갔다. 저기 어디쯤에서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 거적을 깐 움막을 거처 삼아 서러운 밤을 보냈다고 했었지.
그가 생각났고 그의 시 전라도 길 이 생각났다.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근데, 왜, 걸어오시는 거예요 ?"
망우사거리쯤에서 망우리 고갤 쳐다보며 '계속 걸을까? 말까?'를 잠시 생각하는데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걷는 것이 삶이기에 걷는 거란다."
답을 보냈다. 주춤하던 것을 일시에 날려버리게 한 것이 딸의 문자 내용이었고 이어진 내 답신이었다. 그냥 걸었을 뿐. 걷는 이율 명확하게 몰랐던 터에 걷는 이율 스스로 자신에게 납득하게 해 준 딸의 문자 메시지였다. "걷는 것이 삶이기에 걷는 거란다."라고 딸에게 문자를 보내곤 피식 웃었다.
 '내가 진정 그 뜻을 알고서 하는 말인가 ?' 하고.., 
교문 사거리쯤에서 버스를 탈까 하다 2시간 반을 걸어온 것이 아까워(?) 집에까지 걷기로 했다.
목이 말랐다. 핑곗김에 목 좀 적시고 싶었다. 동구릉 못 미처 호프집에 앉았다.
생맥주를 3잔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노가릴 집어들고 대가리부터 으적으적 씹었다.
세월을 씹듯, 지난 기억을 씹듯..,
노가리가 씨~익~ 웃고 있다. 씹히면서도 웃고 있는 놈을 어금니로 느끼며 나도 웃었다.
씹히는 너나, 씹는 나나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생명과 무 생명의 차이. 나 또한 머지않아 너와 같은 처지에 이를 테니..


 

                                                      

 

1,500CC의 생맥주가 목구멍을 미끄럼타듯 미끄러질 때 노가릴 씹으며 '노가릴' 깔 수가 없었다.
혼자였기에..,
 <인간이기에 외로운 것이다>는 말에 <외로우므로 인간이다.>라고 댓구를 달며 여러 번 써먹었는데 인간이기에 외로운 것이 아니고 혼자이기에 외로운 것임을 새삼 느꼈다. 짧지 않은 거릴 걸으면서 풋사랑(?) 시절엔 꽤 먼 길도 이야길 나누며 걷다 보면 왜 그리 빨리 닿는지.., 아쉽기만 했었는데, 그래도 둘이면서 혼자라 느끼는 사람들보단 덜 외롭다. 

'걷는 것은 인생이다. 
걷는 것은 삶이다. 
살아 있기에 걸을 수 있고 걷고 있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생각하며 걸었지만
오늘 난 왜 4시간을 걸었는지 나도 모른다.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사타구닌 양쪽이 다 아프다. 
다만,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음을..,> 새삼 갖고 싶었을 뿐이다. 


                                                                                                           2008/08/01  23:56   


  그림: 매조지 DB Clip Art/1151111653 ,  DC022 Foods and Dishes (음식과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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