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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雜同散異

* '벌레'가 보고 싶다!

 아침에 갑자기 김벌래님 생각이 났습니다. 황급하게 검색을 해 봤습니다. 자주 보진 않지만 T.V 등의 드라마 같은 것을 볼 때 줄거리 보다 소품이나 뒤에서 애쓴 분들을 더 체크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 분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열심이고 일가견을 이룰 만큼의 피땀을 흘려 인간승릴 외친 분들이기에 기억하고 싶은 겁니다. 다큐나 논픽숀,토론프로그램 등에 정이가는 개인적인 성향도 물론 작용을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 님의 치열한 삶에 반해서 한동안 onebeat 란 아이디를 쓴 적도 있습니다. 닮고 싶었거든요. 이런 분들은 환경을 극복하는 강한 의지와 신념과 끈질김으로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을 가진 분들입니다.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아침에 그 분들이 문뜩 생각난 것은 시도하는 일이 만만치않기 때문일 겁니다. 행상 20년이 넘은 나는 일가견은 커녕 반(半)가견도 없으니..창피할 뿐 입니다. 다시 기운을 차려 볼 요량이고 이분들을 기억하니 새로운 기운을 얻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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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내가 여성지 기자 생활을 할 때 인터뷰한 사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하나 있다. 옛날 라디오 드라마를 즐겨 듣던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음향효과의 귀재 김벌레 씨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본명을 모른다. 다만 그가 방송국에 다니던 초년병 시절 원로 방송인이 지어준 별칭이란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김벌레 씨는 키가 아주 작은 편인데, 하도 재재바르게 방송국을 휘젓고 다니는 데다 온갖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선배들이 여러 가지 심부름을 잘 시켰다. 원로 방송인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면 이름대신 ‘벌레’라는 별칭을 즐겨 썼다.

“야, 벌레 같은 놈아!”

원로 방송인은 우선 이렇게 불러놓은 후 심부름을 시키곤 했는데, 방송국 내에서 그 별칭이 유명해져 아예 이름을 ‘김벌레’라고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김벌레 씨는 음향효과의 달인이다. 펩시콜라의 병을 딸 때 내는 광고 효과음을 만들어내 백지수표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펩시콜라 광고에서 병마개를 딸 때 “퍽, 피쉬!“하는 소리를 만들어냈는데, 그 소리는 빈 병에 석유를 흠뻑 묻힌 실을 감아 불을 붙여 병이 깨질 때 나는 소리로 병마개 따는 “퍽!” 소리를 재현하고, 남성용 피임기구인 콘돔을 풍선처럼 불었다 놓을 때 바람 빠지는 소리로 “피쉬!”하고 콜라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를 재현하였다고 한다.
당시 김벌레 씨는 펩시콜라로부터 받은 백지수표에 집 세 채 값을 써넣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로서는 대단한 액수라고 생각했겠지만, 펩시콜라로서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광고용 효과음을 얻었으므로 횡재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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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나는 그때 김벌레 씨를 인터뷰하면서 들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김벌레 씨가 한창 음향효과의 천재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그는 돈을 잘 벌었으므로 거의 매일 명동의 나이트클럽으로 술을 마시러 다녔다고 한다.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즐겼는데, 머리에는 늘 챙이 긴 야구 모자를 썼다. 청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그는 얼굴을 어깨 밑에 파묻은 채 턱을 내민 조금 시건방진 자세로 휘파람을 휙휙 불며 나이트클럽 안을 휘젓고 다녔다.
나이트클럽에는 기도를 보는 깡패들이 있었다. 한동안 김벌레를 지켜보던 깡패 두목이 어느 날 졸개들을 시켜 그를 불러오게 하였다. 어깨가 떡 벌어진 험상궂은 졸개 두 명이 양쪽에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꼬마야! 우리 형님이 좀 보잔다.”
그 순간, 김벌레 씨는 너무 까불다가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였다. 원래 재주꾼인 그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나를 보자고? 그래 한번 해보자는 건가?”
김벌레 씨는 당당하게 졸개들의 팔을 뿌리친 채 그들보다 앞장서서 걸었다. 그들은 나이트클럽 바로 옆의 으슥한 골목으로 갔다.
“형님, 데려왔습니다.”
졸개들이 김벌레 씨를 앞세운 채 두목을 향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구부렸다.
그때 김벌레 씨는 여전히 청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턱을 추켜들며 말했다.
“그래, 네가 나를 불렀냐?”
두목은 김벌레 씨의 한 배 반은 될 정도로 키가 컸고, 몸집도 아주 우람하였다. 양복을 입었는데, 겉에서 봐도 팔뚝의 근육질이 느껴질 정도였다.
“헛! 녀석 봐라! 그래, 내가 불렀다!”
두목은 너무 상대의 하는 꼴이 같지 않아 웃음부터 나왔다.
“나하고 한 판 붙자는 거냐?”
김벌레 씨가 두 눈으로 상대를 쏘아보았다.
“그래, 한 판 해보자.”
두목이 팔짱을 낀 채 말하자, 김벌레 씨는 뒤로 돌아서더니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때 두목은 저러나 저 꼬마 녀석이 골목길로 도망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어찌하나 보자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런데 한 50보쯤 걸어간 김벌레 씨는 갑자기 뒤로 돌아섰다. 그러고는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와 두목의 배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덩치가 큰 두목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결국 김벌레 씨는 저 혼자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 김벌레 씨는 두목에게 악수를 청했다.
“내가 졌다!”
김벌레 씨의 말이 끝나자 두목을 껄껄대고 웃었다.
“짜아식! 재미있는 녀석이군!”
두목은 김벌레 씨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흔들었다.
두 사람은 그 순간 배짱이 통했으며, 곧바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김벌레다!”
김벌레 씨가 먼저 자신을 소개하였다.
“얘들아! 앞으로 김벌레는 내 친구니까 형님으로 모셔라!”
두목의 말에 둘러섰던 깡패들은 모두 90도 각도로 허리를 구부려 김벌레 씨에게 인사를 하였다.
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김벌레 씨의 “내가 졌다!” 사건을 듣고 나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내가 지금 ‘사람의 향기’에 김벌레 씨의 “내가 졌다!” 사건을 소개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곤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인간의 냄새를 감지했던 것이다. 깡패 두목과 김벌레 씨의 이상한 만남에서, 나는 두 사람만이 통하는 어떤 때 묻지 않은 감정의 교류를 느낄 수 있었다.



글:매조지   그림:H(만물창고)/Artville_IL.014.Classical.Musician       본문출처:엄광용의 사람의 향기

2007/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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