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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雜同散異

* 문장론 사전


영어(囹圄)의 여독(餘毒)이 걷힐 만도 한데 연로해 가니 다시 도지는 것일까. 가끔 어질증이 인다. 

 흐느적이는 육신을 추슬리어 요만한 부픈 책을 낼 수 있었음은 하늘 밖의 복! 동상 걸린 발가락을 수건으로 동여매며 읽었던 문장론 책의 갈피갈피가 고운 빛깔의 무지개로 다가오누나. 
 "문장론 사전을 하나 엮어 두고 죽어야지"-그 희망이 있어, 옥고도 짓이겼고, 30년 세월도 얼넘겼다. 
 "마음에 드는 사전을 하나 엮었다"-자다가 일어나 홀로 손뼉을 치리라. 

 때는 바야흐로 '쉬운 글'의 시대다. 실용주의와 기능주의의 교차점일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려운 한자를 가르치자는, 어린 발목에 족쇄를 채우자는 잠꼬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 법령문들, 문장법(文章法)을 도외시한, 잡초의 들판인 교과서 문장들·····, 하루빨리 문장의 교통정리를 해야겠다. 

 베르그송(H. L. Bergson 프 · 철)만큼, 아름답게, 그러면서도 뚜렷한 언어로 철학을 말한 사람은 아직 없다고 한다. 소설 읽는 것과 같은 흥미에 이끌려 베르그송을 읽었다는 것은 .《달과 6펜스》로 유명한 모음(w. S. Maugham)이던가.「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문장론이 다다를 또 하나의 희망봉이 것다. 그러나 거기엔 하나의 단서가 붙는다. "싫증나는 문장보다 배고픈 문장을 쓰라"는 몽테뉴(Montaigne)의 말이다. '간결체'는 현대문장의 약방감초이기 때문이다. 

 문장술(文章術)은 현대인의 필수과목이다. 문장 표현은 자기 장조의 첫걸음이다. 시인을 바라지 않더라도, 작가를 지망하지 않더라도, 글짓기는 '교양의 제1조다.' 맵시로운 실용문 하나, 깔끔한 생활문 한 편-그것은 그 사람 교양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초등학교와 중 · 고교의 작문지도에, 대학의 교양과목 강의에 요긴히 쓰일 것임을 자부한다. 교사 · 교수의 문장술의 밑절미가 여리다면, 수업의 흥도 안 나거니와, 보람이 없기 때문이다. 표현술 이론으로 무장된 익숙꾼인 교사 · 교수- 그래야 학생들의 실제 현장에 끗발스레 주효(奏效)하리라. 
 "작문지도 못하는 교사 · 교수 물러가라"-저만큼에서 밀물쳐 온다.

 
학교 1학년 때다. 어머니께서 밭 판 돈을 궤 속에 넣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돈 일부를 훔치고 육지로 시험을 보러 섬을 떠났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안달하는 발싸심으로 못 견디는 성미에서일까. 
 일본에서 문장학 연구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서넛 달에 한 번씩 때로, 일본 출입을 계속했다. 내가 근무하던 후쿠오카(福岡)에 가서, 주문해 둔 책을 안고 돌아오는 깊푸른 현해탄! 그 현해탄에 모두 게움질해 버렸다. 그들의, 까딱수없는 꼼꼼성에 경탄하면서도 그 빈자리에 내 나라 '우리 문장론'의 설계도를 그리기 위함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문장학의 건설-남들은 뒤틈바리의 야비다리라고 비웃을 망정, 국어와 문장의 모든 문제들을 머금은 가위다리임만은 부정치 못하리라. 
 이 책을 엮은 냅뜰심(추진력)을 뻗치어,《작문지도사전》·《한국평문장선집》 둥울 꾀해 본다. 어머니의 궤 속 돈을 훔치어 꿈을 이우었듯, 마지막 정열을 그러모아 내 학문의 대마루판을 꾸미리라. 

 '사전 한 권'-여럿의 정성을 모아 빝은 하나의 옥돌은,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받아 무수한 광선을 뻗쳐 날리리다. 피에리아의 샘물'(그 물을 마시면, 영감과 학식이 깃들인다는 희랍신화)이 되어, 읽을 이의 가슴에 희한한 생각의 무지개를 꽃피우리라.

 어젯밤에 시립 도서관에 들러 6권의 책을 빌려 왔다.
그중에 한 권인 이 책, 故 장하늘 님의 <글쓰기 표현 사전>을 머리말 두 쪽만 읽고 다른 이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드문 일이다. 아니 거의 없는 일이다. 머리말만 읽고 다른 이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고, 대단한 책이란 생각이 들어 흥분하는 일은. 

 <대학 국어>정도는 가히 유치원에서 쓸 수 있을 것으로 비교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은 빌려온 6권 중 맨 나중에 볼 것이다. 어차피 이 책은 장만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그리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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