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였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내가 졌다, 이 지긋지긋한 새끼야."
다른 많은 학교가 그렇듯 우리 학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울타리 안에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말이
축구지 그냥, 우~~ 몰려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먹만한 당시에 20원짜리 공을 가지고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한창 열을 올리고 뛰어다니는 데 고3 규율부 형이 오더니 집에 안 가고 축구 시합하고 있는 것이 무슨 죄라고, 집에 가라고 호통을 치
더니 이 못된 치가 공을 뺏어선 칼로 부~~욱 찢어 버리는 거였다. 그리고 몇 대씩 쥐어박기까지 했다. 슬금슬금 피하는 친구들과 달
리 불만을 강하게 표시하는 표정과 눈빛으로 더 핍박을 받은 것은 나였고, 동병상련 친구들의 위로를 받으며 물러섰는데, 분하고 도저히 이건 아니란 생각뿐이었다. 다음 날부터 운동장을 가로질러 맞은 편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校舍)에 수업만 끝나면 쫓아갔다. 별 볼 일 없는 치들도 고등학생이라고,
"너 뭐냐? 왜 왔어? "
하고 건건이 끼어들기 일쑤였다.
못 들은 체 무시하곤 그 작자의 교실로 내달려
"형! 공 줘~~"
하며 졸라대곤 했다. 그럴 적마다 돌아오는 것은 주먹과 발길질이었다.
한 번은 복도에서 열나게 뺨을 빌려주고 있는데 체육 담당인 박*교 샘이 지나가다 보곤 이유를 묻는데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박*교 샘은 동급생인 박*교의 친형이었기에 관심을 더 보인 것이다. 일주일을 시간마다 뛰어가서 뺨을 빌려줬다. 놈은 하루하루 지쳐갔고, 난 공부는 뒷전이었다. 맞은 게 억울해서 울고, 수업종이 울리기 바쁘게 뛰어 가 '공 사내!'라고 삼십리 강짜를 부렸다. 체육 시간이나 교련 시간에 한참 옷을 갈아입고 분주할 때는 그가 더 진저릴 치곤 했다. 그러면 그 대가는 더욱 혹독하게 돌아오는 악순환이 한 주일 정도 이어졌다.
그리곤 진짜 축구공을 사 줬다. 그게 인연이 되어 학교 졸업하고 성동경찰서 형사로 근무하던 김*곤, 이 형과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내가 지금보다 조금 편한 생활을 할 때, 경찰청 인사부같은 곳에 수소문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 모임도 일부만 유지하고 있는 지금, 그럴 마음은 없다.
소사가 (내가 한 도둑질) 내게 2년에 걸쳐 가르쳐 준 삶의 지혜(?)의 결과였다.
글:매조지 그림: 매조지 DB/ llust Soccer - 축구 관련 디자인 자료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