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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 구 중사 1978년. 일병 때였다. 부대는 한겨울에 혹한기 훈련을 했다. RCT(연대단위)훈련이었다. 홍천의 11사단과 승리부대인 우리 부대 간의 모의 전투 같은 거였다. 수마(睡魔)의 무서움을 그때 알았다. 졸음, 이놈은 총알이나 포탄보다도 무서운 존재다. 바로 앞에서 총을 쏘며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적군보다 더 무서운 놈이다. 그러니 대 졸음운전은 하지 마라. 100여km 이상을 행군하고 우리 부대와 접전을 하던 11사단 병력이 모의지만 공포탄을 쏘니 소음은 실전과 별반 차이가 없을 텐데, 고지를 점령하고 보니 그 소란 속에서 잠을 자는 놈들을 여럿 생포했단 이야길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나야 보급병이니 주로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곤 해서 늘 부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보급품은 1종에서 10.. 더보기
* 할머니 궁둥이는 예뻤다. 할머니 궁둥이는 예뻤다. 그러나 엉덩일 아무 데서나 까는 의식은 추했다. 아무리 시간가치를 다한 볼품없는 방둥이라도 스스로 무참하게 아무 데나 내 놓는 것은 좀 그렇다. 모르겠다. 이것도 보통 사람의 생각이고 할머니가 도 통한 노파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흔치않은 구경거릴 제공해 준 노파에게 고맙단 인사는 차려야겠지. 11일 강화 월곶리를 가던 길이었다. 올림픽 도로의 끝에까지 가서 김포공항과 강화로 갈라지는 뚝방길을 타고 마냥 달리면 오리정이란 곳이 나온다. 여기가 앞서 (클릭: 마니커) 언급했던 탤런트 박*숙이 한동안 숨어 있던 곳이다. 강화, 사실 좀 멀다. 미리 주문을 하면 갈 일이 없는데 요즈음 유동성에 문제가 있어 결국은 직접 가야 할 속내가 있다. 멀기는 하지만 일단 출발을 하면 좋다. .. 더보기
* 입대전야 (入隊前夜) 내일은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다. 새로움에 대한 신기하고 호기스런 감정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고들 한다. 역시, 나도 뭇 사람들처럼 그러한 감정이 없을 수는 없겠다. 지금, 나는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전혀 피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물론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체념'이라고 이야기들 하겠지만 그것마저도 인정하지 않겠다. 이발소에서 생경한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질때 '변하는 과정'을 눈여겨보았다. 보았다. 거울 속의 '나' 를 뜨겁게 응시하면서 나의 눈동자에서 새로움에 대한 동경과 자신을 찾고 있었다. '눈동자에는 '이제까지의 생활 중 자신에 차 있었던 시절만이 선명하게 刻印 되어 있었다. 어떤 구원을 찾아 떠났었던 74년 여름의 자전거 고행 - 信念을 얻었지. 학교에서의 대표자로서의 긍지. .. 더보기
* 노블다방 예전에, 을지로 입구 코너에 노블다방이 있었다. 1975년이었으니 한 30년 전의 일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때, 난 명동, 수하동, 삼각동, 무교동, 북창동 일대에서 화장품 외판사원을 했었다. 물론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만 했던 일이다. 그나마도 오후에만은 일할 기회를 줄 수 없다는 J 화장품 소장을 "근무시간이 무슨 문제냐, 실적으로 말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간곡하게 설득해서 얻은 자리였다. 세상을 살면서 몰라도 될 일을 굳이 알 필요가 없음을 지금은 터득하고 있지만, 그땐, 모든 게 알고 싶었고 고등학교에서 닫힌 교육을 받은 탓에 더욱 호기심이 발동했었다. 본격적인 사회 경험이라면 불과 한 해 전인 1974년 여름에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한다는 계획으로 반도 못 돌아본 것이 다였다. 그때도, 고.. 더보기
* NO PANTS(빤쭈 한 장의 의미) 예전에, 외출했다가 볼 일이 급해 눈에 띄는 화장실을 급히 갔었다. 한숨 돌리고 보니 用具(?)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팬츠를 벗어 뒤처리 하곤 (앞처리도 했었는지는 기억이 없다-요건 지극히 웃자고 하는 야그인데 물 빠진 스펀지처럼 전달되는 한계로 훌륭한 catcher(포수)도 멍청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웬 화장실 야그냐고. 오늘 아침 6시. 정확하게 내 방을 두드린 아들이 여느 날과 같이 "아빠, 오늘 데려다 주실 거예요?"라고 묻는데 제대로 대꾸를 못했다. 짜장을(자장면, 이렇게 쓰면 맞춤법에 맞겠지만 짜장면 맛이 뚝! 떨어진다.) 급히 볶으며 아침에 거래처 몇 군데에 송금하고 잡다한 일을 보고 아들과 같이 나갈 수 있을지를 곰곰 이 따져본다. 그 사이, 아들은 다음 말을 잇는다. "아빠.. 더보기
* 노루 그저께 M 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느 동네나 마찬가지로 길 양옆으로 빼곡하게 주차돼 있는 길을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그때, 전방에 자전거를 탄 40대 정도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클락숀을 거의 쓰지 않기에 그냥 계속했다. 어차피 차량의 소음으로 뒤에 차가 좇아오고 있음을 충분히 알 테니까. 그런데 웬일인지 옆으로 비키질 않고 계속 달린다. 고3인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인데 학교 끝날 시간이 가까워 마음이 바쁘긴 했다. 그렇지만 그냥, 마냥 서둘지 않고 따라갔다. 문득, ‘노루’ 생각이 났다. 사슴과 동물 말이다. 전방에서 군생활 중 야간운행 중인 차 옆에 타고 가다보면 (병참 업무라 차량 탑승 기회가 많았다.) 노루와 자주 마주치곤 했는데 놈은 옆으로 빠질 생각을 못하고 라이트 불빛을 따라 .. 더보기
* 미자야, 미자야 뭐 하니? 얼마 전에 불탄 버린 앨범에 1971년 꿍친 여학생 사진이 줄기차게 꽂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강미자(특별한 관계도 아니었는데)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강씨의 강한 이미지와 미자란 일제의 영향을 받은 '子'자가 이름 끝 자에 흔했던 우리 시대 비애의 역사 잔재 때문이다. 고교 1학년 때, 실력도 없으면서 처음 과외 지도를 했었다. 개인지도를. 당근 초등학생이었다. 뭐 한 4학년쯤 되었는데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초등학교 과정 가르치기가 고등학생이나 일반인보다 몇 배 힘든 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10년도 더 지난 후에 알았지만. 어쨌든 가르치던 아이의 누나였던 그녀는 야간부였는데 내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그때 가방을 들고 나가는 그녀와 마주치곤 했다. 내가 동생인 제자를 꼬여서 사진을 입수했는지, 아니.. 더보기
* 미등(尾燈) 얼마 전이었다. D 시장에 들러 먼저 산 와이셔츠(white shirts)를 바꿨다. 같이 몇 장을 똑같은 사이즈로 샀는데 한 장만 목이 꽉 끼어 입을 수가 없었다. 옷을 위 치수로 바꾸곤 계란과 인삼 두어 뿌릴 샀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주인 사내와 몇 마디 주고받다 급기야(及其也) 명함을 건네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왜? 명함을 건넨 흔히 있는 풍경을 거론하는가 하면 명함을 건넸다는 것은 지갑을 꺼냈음을 의미하기에 그렇다. 볼 일을 마치고 몇 걸음 옮기다 보니 돈을 지급하지 않은 것 같았다. 되돌아가선 '돈을 드리지 않았네요.'하곤 내고 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차를 몰고 집에 오면서 생각하니 돈을 지급한 것을 이중으로 지불한 것 같기도 했다. 찝찝했다. 이미 상당한 거릴 왔는데 돌아가서 물어볼 수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