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다.
D 시장에 들러 먼저 산 와이셔츠(white shirts)를 바꿨다. 같이 몇 장을 똑같은 사이즈로 샀는데 한 장만 목이 꽉 끼어 입을 수가 없었다. 옷을 위 치수로 바꾸곤 계란과 인삼 두어 뿌릴 샀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주인 사내와 몇 마디 주고받다 급기야(及其也) 명함을 건네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왜? 명함을 건넨 흔히 있는 풍경을 거론하는가 하면 명함을 건넸다는 것은 지갑을 꺼냈음을 의미하기에 그렇다. 볼 일을 마치고 몇 걸음 옮기다 보니 돈을 지급하지 않은 것 같았다. 되돌아가선 '돈을 드리지 않았네요.'하곤 내고 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차를 몰고 집에 오면서 생각하니 돈을 지급한 것을 이중으로 지불한 것 같기도 했다. 찝찝했다. 이미 상당한 거릴 왔는데 돌아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설사,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라도 다시 가서 '여보, 내가 낸 걸 또 낸 것 같소' 하기도 그렇다. 이래서, 규모가 있는 매장에 가면
'손님, 000를 받았습니다.'하고 군대에서 졸병이 하듯 복창을 하는 것이다.
건망증이 이리 심한 건지, 영 찝찔하고 찝찝했다.
내 차 옆에 차에 미등이 켜져 있었다.
전화번호도 없고 ×××× 번 하고 소릴 몇 번 질렀다. 바로 앞 사무실에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그 차의 임자가 여기 없느냐고 물었다. 모른단다. '축전지(battery)가 방전되면 고생할 텐데, '하는 생각에 몇 번 더 고함을 질렀다.
엄한 사람들만 나와선 자기 차가 아니라고 한다. 더 수소문할까 하다 문득 내가 작심하고 실행하기로 한 어떤 이의 닉이 생각났다. 요즈음 화두로 삼는 '아구다리(我求多利)'를 이름이다. 주저 없이 돌아섰다. 변한 것이다. 예전의 나에서 조금씩 변하고 싶었는데, 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 기뻤다.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목욕탕 같은 대중이용 시설 등에서 수돗물 등이 그냥 켜져 있으면 지나치질 못한다. 예전에 센서기능이 없던 가로등이 대낮에도 켜져 있으면 구청으로, 시청으로 전화를 걸어 시정을 요구하면 응당 자기들이 해당 부서를 찾아 고쳐야 함에도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다시 전화하란다. 그러다. 내게 혼난 공무원 참 많다. 그래서 관공서 등에 전화를 하면 몇 시, 몇 분에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지금은 이름표 등이 붙어 있지만 얼마나 자신이 없었으면 자기 이름 밝히는 것을 사뭇 주저하던 시절이 있었다.
꽁생원도 아니면서 피곤하게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60년대 빈곤한 시절 학교에서 가르친 잘못된 교육(?)을 잘 따랐기 때문이리라. 이제 내 이익을 더 추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처한 현실의 극복이란 또렷한 현실인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아구다리' 솔직하고 멋진 닉을 발견한 작년 이후에 생각과 행동을 바꿀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 이후이다. 그런데 관성의 법칙이 아직 유효한 것인가? 습관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루에 몇 번씩 <아구다리,我求多利,아구다리> 외치며 살아야겠다.
글:매조지 그림:F:/엔터테인먼트/사진/블업그림
출처:http://planet.daum.net/maejoji/ilog/5653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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