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장중하고 빛바랜 뒤의 멋있는 추억과 가치를 익히 알면서도 게으름에 쩔어 있다?
아님, 절체절명의 어떤 것에 의한 쫓김인가?
둘 다 인것 같다.
언제나, 자유를 꿈꾸었기에 세상을 열 배는, 만 배는 더 서럽고 힘들게 살았으면서도, 이젠, 갈 데까지 갔음에도 쉽게 生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요. 둘째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올곧게 아는 내가 아이들에게 '절망'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가 아무리 바보 같아도 '형체만 있어도' 아들, 딸이 '최소한의 가질 수 있는 것은 있다.'라는 진실을 잘 알기에 그렇다.
마누랄 멀리 보내고 마포대교를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며 핸들을 순간 꺾을 생각을 하며, 마포대교를 예, 닐 곱 번쯤 왕복했던 때가 있었다. 93년 겨울 밤이었다. 생각이 많은 놈은 쉽게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 '비겁하지만 편한 길(?)인데도 (결코) 선택할 수 없다. 요번에, 그런 경험을 했다. 화재로 팬티만 걸친 채 겨우 목숨을 부지해선 시청에서 주선한 적십자 社의 온정으로 며칠을 보내면서도 이렇게 절망하진 않았었다. 겨우 1년 동안 폭삭 늙었던지, 욕심 주머니가 턱없이 커졌든지 둘 중의 하나 이리라. 아니, 그 둘이 다 맞는 것이리라. 두 시간에 한 갑도 태우던 담밸 일 년에 두어 갑으로 만족하고 말았던 세월은 '아이들이 어렸고 내가 해야할 구실을 명확하게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컸다고 조금씩 흐트러지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이달에 벌써 담배를 거의 두 갑을 태웠다.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있는 것은 20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데, 아무것도 거의 못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울 때는. '어렵다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도 극복할 가치가 있다.'라는 논리를 앞세우며 그땐 스스로 이길 힘이 있었는데, 어인 일이지 자신에게 지는 경우를 많이 느낀다. 나이 50이 넘으며 이렇게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그런 것인가? 나만 그런 것인가? 집안의 모든 일을 작은 두 어깨로 떠받치던 내가 요 몇 년 사이에 변방으로 밀린 것을 스스로 느낄 때의 참혹함이란! 애꿎은 동생이 그걸 대신한다.
설 전날에 "형, 핸드폰은 잘 돼? 아직 그것 써요?" 하고 묻는다.
설날에 식구들 다 모였는데, 조카의 방에서 따로 새 핸드폰을 내 놓으며
"형 줄려고 샀단다"
옛날 같으면 기꺼이 받고 내가 더 좋은 걸 해 줄 텐데,
속 좁은 난 버럭 성을 내고 말았다.
"됐다. 아직 쓸 만하다."라고. 그러며 끝내 무위치고 말았다. 놈도 무안했겠지만, 자신에게 난 무참했다.
3년 차이지만 꼭 존대를 하는 집안 내력은 강점이면서 약점이기도 하다.
이성부 시인의 '깨진 무릎은 쉬이 아문다.'라는 시구를 믿는 바지만, 불알 두 쪽만 차고 화마에 모든 걸 바치고 나온 나는 일어서기가 쉽지가 않다. 현실은, 자존심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하는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군수(軍需)과 일을 보면서 兵이었지만 웬만한 영관급 이상의 역활과 가치를 했다고 자부한다. 훈련을 나가선 개구릴 공병삽으로 (생으로) 반 토막을 내던 6개월 고참인 이*하의 횡포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몰라도 잔밥을 가져가는 이가 부대에 빠다 칠을한 200kg쯤 되는 돼지의 사지를 묶어놓고, 취사병 이하.., 돼질 잡는 것이 큰일이었다. 하루살이나 메뚜기 정도는 죽여 봤어도..,
아!~~ 그런데 그 돼지는 나의 손에 죽지 않고, 결국 다른 병사의 손을 거쳐 죽었다. 그러나 난 그 감촉이 아직도 서럽다.
삼각형으로 깊이 파인 돼지의 목과 칼끝에 느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던 내 손의 감촉이 늘 새롭다.'
그리고 그 죽어가던 돼지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제 '타짜'를 보면서 '구라를 칠 땐 상대의 눈을 보지 마라'라는 말에 얼마나 공감했던지!
나는 평소에 어떤 상대, 어떤 사람과 어떤 이야길 나눠도 상대의 눈을 뚫어지게 보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그 돼지의 눈빛은 서러웠고 원망에 가득 찼었다.
그 뒤로는 하다못해 돼지고기 한 점을 입에 넣을 때도 '돼지 생각'은 거의 하지 않지만, '돼지를 잡는 사람' 생각은 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육질을 음미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절대로 잔혹한 것도, 절대로 아름다운 것도 없다.
다만, 생존과 죽음이 엇갈릴 뿐이다. 아들과 딸에 쓰려고 했고, 써야만 하는 편지에 대한 이야길 한다는 것이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편지 이야길 곧 이어야겠다.
2207. 02. 27.
글:매조지 그림: 매조지 DB/ DC062 Impressive small animals [작은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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