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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삼삼한 이미지

* 양파

저녁에 두어 시간 잠을 잔 것이 지금 깨어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밤참을 먹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 터에, 더구나 12시가 다 되어 이미 밤참을 먹었음에도.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무슨 욕구불만이 쌓인 것도 아닌 터에 다시 동하는 식욕이 예사롭지 않다.

라면을 끓이면서 문득 내가 [양파 같단] 생각을 했다.
라면을 끓이면서 양파를 늦게 넣었다. 반은 익고 반은 익지 않은 양판, 라면을 거의 다 먹어 갈 무렵에서야 완전하게 익었다. 물론 몇 조각 남지 않았지만, 끓을 때 처음 넣었을 때의 달착지근한 <양파 맛>을 내었다. 익은 양파도 좋지만, 양파는 생으로 된장이나 쌈장을 찍어 먹는 맛이 또 괜찮다. 그런데 반은 익고 반은 익지 않은 상태의 양파의 맛은 별로였다. 그러나 그 별로인 것도 나름대로 맛은 있었다.

'생것도 아니고 익지도 않은 상태의 놈을' 혀끝에 느끼면서 반생 반숙의 양파가 나인 양 생각되었다. 세상을 충분하게 헤쳐나갈 실력도 갖추지 못하고, 그렇다고 생것으로 살 수 있는 뻔뻔함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세월 따라 익어가며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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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Between calm and passion(냉정과 열정사이:앙겔로스)를 보고 있다.
극장에서 팝콘 등을 먹으며 보듯. 먹을거리를 찿으니 눈에 띄는 게 없다. 평소에 간식을 즐기는 편이 아닌 탓에, (제 엄마 닮아서 과자 등을 좋아하는 아들 방에도 없다.) 그래서 라면을 끓인 거다.

이 영화 참으로 볼만하다. CD  두 장 분량인데, 한 장을 다 보고 너무 아까워서 다음 장으로 곧 넘어가질 못하고 전편을 다시 보고 후편을 봤다. (지금 막 끝났다. 04:43분).
타케노우치 유타카(준세 役)과 켈리첸(진혜림:아오이 役)의 잘 어울리는 연기도 일품이다.

 

영화를 봐도 산만하게 줄거리보다 소품, 경치, 의상 등을 눈여겨보다 보니 어떤 땐 주제 파악도 잘 안 된다. 두 번은 봐야 제대로 앵글을 잡을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평소에는 그냥 오락으로 즐기는 정도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연극/음악회 등은 그냥 보고, 듣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는 것이 없으면 말고) 보는 것이 옳다는 주의이기도 하다. 주연이 누구고..이런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이야길 하려니까 배우 이름을 적긴 했는데, 그냥 준세 역을 맡은 자가 누구든 '준세와 아오이' 이렇게 이해하고 마는 주의이기도 하다.

 이 영화, 딸은 먼저 가정학습 때 집에서 보고 갔다. 한두 장면은 눈에 거슬리는 것도 있지만, 딸과 같이 봐도 좋을 영화이기도 하다. 진한 감동과 카메라 앵글도 괜찮고, 이야기 진행되는 배경도 마음에 드는 곳이 많다. 밤을 새우기는 했지만, 양파가 익어가듯. 나도 조금 익은 기분이다.

2006/11/27

글:매조지    그림:영화장면 Ca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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