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다녀왔다.
아들도 반갑고 역시 집이 좋긴 좋다.
그런데 안타깝고 슬픈 일이 있었다.
집을 나서려다 식탁 위에 깨져 있는 컵을 발견한 것이다.
딸 아이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직접 구운 컵이다. 딸은 집에 오면 그 컵으로 물도, 마시고 차도 마셨다.
나도 컵을 딸을 보듯 소중하게 아끼던 물건이다.
직접 만든 서랍장과 몇 가지 소품을 지난 2005년 12월 화재로 다 태웠을 때, 무엇보다 아까워했던 물건이 아이들 어렸을 적 사진과 위와 같은 아이들 물건이었다. 아마도, 아들이 실수로 덜어뜨려 깬 것이리라. 아들이 마침 잠자리에 들었기에 아무 소리 안 하고 집을 나섰다.
'아빠가, 깼다고 미안하다.'라고 딸에게 말할 참이다.
오빠가 깼다고 하는 것보다 덜 화가 날 수 있을 것이고, 남매의 사랑에도 도움이 되리라. 너무 아까워 흐릿한 형광등 불빛에 폰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카메라 꺼낼 성의는 없었다. 사무실에 와서 폰 USB 커넥터를 설치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손잡이도 튼튼하게 잘 붙였고, 유약(釉藥)도 골고루 잘 발라 색감을 충분하게 살린 딸의 손재주를 잘 나타낸 작품이었는데, 아깝다. 문화재 복원하듯 되살릴 수 있을 지 몰라 남은 조각은 챙겨 두었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고등학교 때에 호주에 갔을 적에 마침 화가인 진티(Jinty) 님 집에 기숙하게 된 인연으로 그린 그림이 빼어난 작품이 된 것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게 해 주고 싶은 물건이었기에 더욱 아깝다. 저녁에 딸과 문자를 하면서도 컵 이야긴 하지 못했다. 기쁜 일은 빨리 알리고 슬픈 일은 나중에 알리는 것이 좋으리라.
집에 불이 났을 때도 방학 때 데리러 가서 집에 올 때까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었다.
딸이 그린 그림(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