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 카페와 번개

생각 2011.05.16 13:37

카페 (음식점) cafe라고도 씀.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소규모 음식점.
프랑스어에서 차용한 영어의 카페(café)는 '커피'라는 뜻의 터키어 kahve에서 유래한다.

행복클럽을 들락거리면서 흔히 쓰는 카페의 정의를 다시 확인해 봤다. 브리태니커에 위와 같이 정의해 놨더라. 미국 국방성 등에서 쓰이던 인터넷이 일반에게 퍼지고 한국에 들어온 것이 대략 1990년대 후반이고 내가 처음, 인터넷을 접한 것은 1997년쯤 되는 것 같다. 2000년 초기까지도 3분에 한 도수씩 올라가는 전화망이 인터넷을 떠받치고 있었다. 전화요금도 요금이지만, 지금의 속도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원시시대에 해당한다. 그때쯤 한글과 컴퓨터가 주식시장에 상장했었다. 1980년대 말에는 하드의 용량이 20MA도 굉장한 용량이었다. 지금은 테라 시대다. 무려 50,000배가 늘어났다. 이를테면 1,000만 원이 5,000억 원이 되어 있는 꼴이다. 1,000만 원의 1,000배인 100억만 벌었으면 좋겠다.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은 지방에 500평 정도의 대지를 확보하여 돌담을 쌓고 한옥을 지어 아이들이 100년, 200년 대대(代代)로 살수 있는 집을 짓고 싶은 것이다. 죽기 전에 이룰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한글이나 V3으로 알려진 안철수 백신은 거대 괴물 마이크로 소프트 社와 맞서 싸운 토종 기술로 세계에서 허물지 못한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을 심어준 우리의 자랑스런 벤처기업이다. 한글 8.15판에 10,000원씩 내어 회사를 살린 것은 나와 같은 유저의 우리 것을 지키려는 사명감이 한몫을 했다는 생각이다. 이름은 잊었지만, 싸이월드의 전신에 제대로 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많은 이들이 몰려 주옥같은 글을 많이 남겼는데, 어느 날 없어져 버렸다. 지금의 DAUM은 플래닛을 폐쇄하면서 블로그로 옮겨 글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는 그런 부담을 기업에서 지려고 하지 않았을뿐더러 기술도 미흡했다.
거기에 남겼던 많은 글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싸이월드를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5년12월 화재로 앨범부터 20
대 때의 일기는 물론, 아이들의 유년 시절의 기록을 몽땅 잃어 버린 뒤로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마니산(마리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 나누어 보관했듯 같은 글을 플래닛과 블로그 등에 중복 게재하였다.  

 

 노을빛과 열린 마당이라는 두 곳 카페에 가입한 것이 2006년과 2009년인데, 어제 확인해 보니 두 곳 공히 총 방문 18회 댓글도 그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 다른 목적으로 왔다가 주 놀이터가 됐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의 3분지 2를 컴을 하는 처지인데, 토막컴을 이용하면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3년에 18회라. 그건 카페나 번개에 흥미가 없었다는 이야기이고, 흥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 것을 다 안다라는 말이겠다. 사실, 2002년 월드컵이란 특수한 사정도 있었지만 새벽 두 시의 사당동 번개에도 나갔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뒤로 9년 동안 솔로 카페는 기웃거리지 않았으니 내가 생각해도 경이롭다. 만나 먹고 마시고 노래방 가고 그게 풀 코스였다. 
 

 나중에 카페를 만들고 회원은 일년에 12명이면 된다라는 생각을 밝혔는데, 머리수가 많아야 무어든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카페지기는 특별한 열정이 있어야 하는 데, 그런 면에서 나는 젬병이다. 2003년쯤 국립 미술관(?)에선가 일정한 인원이 모여 연락을 하면 큐레이터(Curator)나 직원이 출장 나와서 작품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런 번개를 하고 싶었었다. 어느 카페든 회원의 10~20%가 활동하는 인원이고 열성인 회원은 그보다 적다. 그럼에도 행복방은 카페지기 님이 구축한 안정된 시스템 (회원 관리)와 열성으로 보기 드물게 멋진 카페로 보인다. 그건 내가 놀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딸 아이가 초등 1년쯤인가 아파트에 설치한 트리를 보고, 아! 예쁘다!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던 것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심히 지나치는 그것이 어린 딸에게는 생경한 기쁨이었는가 보다. 그 뒤로 감동이 없다는 것은 늙었다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충분하게 늙었다. 다시 젊어지려면 사물의 새로운 면을 보고 감동하는 것을 배워야 하겠다.

사람은 저마다의 기질과 특성이 있다.
번개를 나가 많은 사람을 리드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잘 사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친목은 여러 사람 중에서도 증진되지만, 사랑은 어차피 남녀 간의 개인사이고 1:1의 관계에서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은 사람 앞에서 보이는 자아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친목 도모라면 번개 참석의 명분과 실리도 있다. 어느 날 친목을 위하여 한 번쯤은 나가리라.
그러나 사랑을 목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게 번개를 대하는 내 태도다.

그림: 매조지 DB DC102 Lightening, Eruptions & Rainbows (번개, 화산 & 무지개) 
                   이미지소스/디자인 사진모음1*(webdesign)소스,이미지/12LIFE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카페와 번개  (0) 2011.05.16
* 공간 확대  (0) 2011.05.01
* 프로필  (0) 2011.04.17
* 엄살  (0) 2011.04.13
* 4월!  (0) 2011.04.02
* smart  (0) 2011.03.31
Posted by maejoji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