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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부엉이셈


속담에 '부엉이셈 치기'라는 말이 있다.
"계산에 몹시 어두운 사람의 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매조진 행상이라 자칭하는 장사를 22년 했다. 네 자리 정도의 숫자는 마구 불러도 암산을 능히 해낸다.
그럼에도, 잇속엔 '부엉이셈 치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병이다.
오죽하면, 인터넷에 서핑 중 아구다리(我求多利)란 닉을 발견하곤, 머리에 아로새겼을까?
아로새기면 뭐 하나? 머리와 감정이 따로 노는데.
관성의 법칙도 밖에서 힘을 받으면 바뀌는 법인데, '아구다리 (我求多利)란 닉의 힘도 별 볼 일이 없는가 보다.

어제 권 여사에게서 부탁의 전화가 왔는데 뿌리치지 못하고 파주 넘어 통일 동산의 공동묘지에 다녀왔다.
오늘 일정을 다 무위치고, 위생병원 장례식장을 들렀다가 파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속에서 08시 뉴스를 통해 한미 통화 스와프체결됐다는 메가톤급 호재 소식을 들었다. 삼성전자가 장중에 상한가를 치고 종국엔 상한가에 준하는 상승을 이룬 것도 보기 드문 일이며 코스피 200 전 종목이 상승한 기록을 보였다. 부랴부랴 집에 들어온 시각이 13시 40분. 한 시간 동안 매매하여 약간의 수익을 올렸다. 정신없이 사고팔고 하여 20여 분 동안 20% 정도의 이익을 챙기며 한숨 돌리고 보니, 분 차트도 보지 않고 감으로 하고 있더라. 정신 차리고 1분, 3분, 5분, 30분 차트를 띄우고 보니 感보다 못했다. 때론, 이성이나 분석보다 통박이 유용할 때도 있구먼, 여기서 말하는 통박은 물론, 몹시 날카롭고 매섭게 따지며 공격하는 요런 통박(痛駁)은 아니다. 어림잡아 머리 굴린다는 '통박'이다.

세계엔 나와 같은 개체가 65억에 이른다. 개체가 많으면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일이 많음도 이미 신기한 일이 아니다. 좁은 땅 한반도, 그것도 반 토막인 대한민국의 8도 사나이가 모인 군대만 들여다봐도 쉽게 입증할 수 있다.
통계에 드러난 개체만 13억에 이르는 중국에선 포르말린과 표백제로 범벅인 일회용 젓가락을 7~8센티로 잘라 각종 조미료를 첨가하여 밀봉한 후 숙성하여 음식으로 만들어 판단다. 100원도 안 되는 원가를 들여 10,000원이 넘는 음식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 이것 사람에게 써야 제 格인데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긴 하다.)하여 돈을 버는 사실이 사진과 함께 공개한 것을 지난주쯤 본 것 같다. 건강에 이롭고, 해롭고는 차치하고 대단한 발상이다.

권 여사는 나보다 한 살 많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몇 살 많고 적음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이 인생살이다.
장사할 때, 17~8년쯤 거래했던 처자다. 3~4년 전에 이혼 아닌 이혼을 하고 혼자 조그만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아들, 딸 하나씩 있는데 아이들이 참으로 착하고 성실하다. 아이들이 어머니 생각하는 정도 각별하다. 쬐금해도 통이 크고 당차며 경우에 빠지지 않는 그녀가 마음을 의지하고, 근자에 몇 개월은 동거를 하던 사내가 있었다. 나이 차이는 좀 나는데 끔찍하게 위해주던 사내다. 사내의 아들이 장안동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고깃집을 운영한다. 할망구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권 여사가 살뜰하게 챙겨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그니는 또 각별한 마음으로 위해 준 사이였다. 평소에 우울증이 있었는데, 아들이 가게 하나를 더 내면서 예상 외로 어려워지며 우울증이 더했단다.

어제 지긋지긋한 땅 문제 해결을 위해 밤늦게까지 모임을 하던 중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낼 무엇하세요? 노가다는 나가요? 주식은요? 다른 일은? "
속사포같이 질문해 댄다. 이럴 때, 그녀가 내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무슨 일인지 말해 보라. 권 여사 일이면 만사 제쳐 놓을 테니 말하라우!'
재촉을 했다. 비즈니스 때도 서로 "더 받아라, 덜 줘라."하는 기묘한 사이다.

태릉 설렁탕의 김정수와 동갑인데 이해관계가 얽히면 모든 가치에 우선하여 '돈'을 우선하는 *수와는 극과 극의 가치관이다. 권 여사도 나와 같이 '부엉이셈'에 능하다. 약삭빠른 셈보다 부엉이셈이 더 남는 장사이고 윈윈하는 것임을 서로 증명해 보이는 관계이기도 하다. 언젠가, 정수를 시켜 권 여사에게 가는 물건을 배달시켜서 <개씹단추> 서로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사내가 부쩍 죽겠다는 소릴 하더니 그저께, 자살했단다.
핸드폰을 놓고 나갔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단다. 그래 자살한 것을 알았고 오늘 아침 출상인데, 가 볼 처지도 안 되고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 하관하는 것을 멀리서나마 보고 싶다고 같이 가 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리의 돌쇠다. 연애도 이런 여자(남자)와 해야 한다. 재상의 처가 죽으면 문상하는 인파가 많고, 막상 재상이 죽으면 문상객이 적은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서로 마음을 의지하고 외로움을 달랬다고,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아닌 사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보겠단다. 가게는 일하는 사람에게 맡겨 놓고, 임진각 못미처 통일 공원에 가서 하관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영구차와 일행이 모두 떠난 후에 떠난 이를 위해 잠시 통곡하고 내려오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는 그런 그녀의 기사 노릇으로 한나절을 보냈다.

새벽에, 직업소개소 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 나오느냐고?"
어제도 안 나갔다. 어차피 100번만 할 것이고 어제처럼, 또는 오늘처럼 장이 좋을 때는 본업에 충실해야 하기에 응할 수 없는데, 필수요원이나 기간요원은 아니라도 찾는 이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싶다.

권 여사,
이별은 늘 슬프고,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어쩌겠소.
쉬이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데 머지않아 기별이 오면 서둘러 가서 그때 다시 만나구려.

그림: 매조지 DB /블업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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