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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 구 중사

 

1978년.

일병 때였다. 부대는 한겨울에 혹한기 훈련을 했다. RCT(연대단위)훈련이었다. 홍천의 11사단과 승리부대인 우리 부대 간의 모의 전투 같은 거였다. 수마(睡魔)의 무서움을 그때 알았다. 졸음, 이놈은 총알이나 포탄보다도 무서운 존재다. 바로 앞에서 총을 쏘며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적군보다 더 무서운 놈이다. 그러니 대 졸음운전은 하지 마라.

 100여km 이상을 행군하고 우리 부대와 접전을 하던 11사단 병력이 모의지만 공포탄을 쏘니 소음은 실전과 별반 차이가 없을 텐데, 고지를 점령하고 보니 그 소란 속에서 잠을 자는 놈들을 여럿 생포했단 이야길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나야 보급병이니 주로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곤 해서 늘 부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보급품은 1종에서 10종까지 분류되는데
1종은 식량이고 10종은 시체다.

담배나 라면만 가지면 예하 부대를
 계급을 떠나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물자나 돈을 가진 놈이 장땡이라는 것을
그때 또 깨달았다.

  그럼에도 소총부대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전우들에 미안해서 3년 내내 새 군화 한 켤레를 규정 외에 따로 챙겨 신은 적이 없다. 오히려 내무반 고참이면서 중대 보급계인 최민우나 이종하 따위에게 규정 외 새 군화 등을 주지 않는다고 심한 괴로움을 당하곤 했다.

 말년에 부대 앞에 헌병 새끼들에게(영외거주자인 작전관-소령-도 찔찔 맸다.) 군화를 상납하길 강권하는 것을 여러 차례 무시했다. 참모부 사무실 앞에서 영내까지 무단 침입한 헌병 일개 병에게 작전관(소령) 앞에서 멱살을 잡히고 하는 욕도 봤다. 결국, 대대장 실에 불려 갔다. '고생하는 우리 부대원들도 새것을 못 신는데, 줄 수 없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건영 중령. 이분 내가 군대생활 하면서 모신 마음속에서 존경하는 두어 분 중의 하나다. 나중에 육본에 장군으로 근무하신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는데.., 씩~ 웃으며 어쩔 수 없이 "주라. "라고 하면서도 몸짓으론 기특해하셨던 분이다.
 

 탱크가 움직이고, 부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데 군수과 산하에 병기부 담당인 구 중사(이 者는 몸무게가 80kg도 더 나가며 군대생활 20 몇 년 차였다. 준위 같은 중사였다. 몇 번의 시험에 떨어져 준위는커녕 상사도 못했다. 그런데 암호해독이나 암호통신에는 귀재였다.)는 마을 어린이의 장난감을 뺏어 놀고 있었다. 아이는 동동거리며 울며불며 돌려 달라고 난리였고, 그런데 그것을 그는 즐기고 있었고 부대의 누구도 구 중사의 행위를 막지 못했다. 그때도 난 제정신이 아니었는가 보다. 구 중사가 가진 장난감을 얼결에 뺏어 아이에게 주곤 "너 이 새끼 이리 안 와! 죽인다."라며 고함 지르는 구 중사를 피해 훈련 내내 사뭇 도망 다녔다.

 그리고, 밤에 동초를 서는 데 구 중사가 와선 낮에 자신의 권위의식을 짓뭉갠 내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언 손을 지휘봉 같은 작대기로 맞아 봐라. 군화발로 쪼인트가 짓이겨져 본 사람은 그 참혹함을 알 것이다. 훈련 중이기에 M16소총엔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래 그런지 얼마쯤 지나 내게 달래는 말을 던지며 자신이 왜 그래야 했는지를 설명했다. 설명 안 해도 다 아는 일을. 그리고 절대로 그런 일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총기 난사 따위의 짓은 하지 않을 나를 모르고.
 분은 풀고 그래도 혹 있을 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는 자세는 배울만 했다.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초병을 폭행하는 것은 군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안 것은 제대하고 한참 후의 일이었다. 물론 당시에 알았어도 뭐 다른 대응을 할 의사도 방법도 없었지만.

 요즈음 심심찮게 일어나는 총기사건과 불과 3개월 후에 군에 입대할 아이를 보며 잊고 있던 군 생활이 새삼 하나 둘 생각난다. 어줍잖은 독립심을(?) 앞세워 부모님의 사랑을 창피해 했던 젊은 날의 생각이 부끄럽다.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곤 한다. 벌써, 여름은 무너지고 소슬바람이 새벽과 낮을 가리지 않고 느껴진다. 팬티도 안 입고 입은 베 반바지 사이로 불알이 시원하다.

                                                                                                            2006. 08. 18.



그림: 매조지 DB/ 블업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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