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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M)스트리트

* 보수와 이혼 달(月)의 끝마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어라! 벌써 끝이네!' 하는 감탄사라니.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인가? 해는 지고 갈 길은 먼데, 안간힘을 써도 제자리인 것에 대한 자조인가? 시스템화를 어느 정도 갖춰 갈 때 느낀 것이 돈은 남이 벌어 주는 것이지. 혼자서는 한계가 분명해진다는 명제였다. 1+1=2가 아니고, 100이고 1,000이고 100,000이고 10ⁿ 승이다. 1-1= 그야말로 0 이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0 이다. 한 때는, 그 하날 잘 만들어 10의 49승까지라도 만들 요량이었다. 이젠 포기하고 0 에서 다시 시작한다. 컴퓨터가 이진법으로 + , - 만 할 수 있는데 곱하기와 나누기 등의 연산을 엄청나게 빠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도 보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적은 수.. 더보기
* 상도(商道) 장안동 경남호텔 근처에 '동해~' 어쩌고 하는 제법 규모가 있는 낙지 전문점이 생겼다. 중랑구민회관 근처에 있 있는 거래처에서 소개했다. 자신의 선배란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가관(可觀)이다. 내가 공급하는 특정물품의 가격을 자기에게는 현재 공급하는 가격보다 덜 받고 새로 가게를 여 는 선배에게 '덜 받는 만큼이나 그 이상을' 더 받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거절을 했다. OPEN 하기 수 일 전에 주문을 받아 왔는데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거래를 끊고 다른 업자를 수소문해서 줄을 대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났 다. 어느 정도의 물건이 어떤 경로로 들어 오는지 익히 아는지라 간단한 설득으로 거래하고 있다. 애당초에 소개했던 후배 인가 하는 작자의 이야긴 입 밖에도 내지 않았 다. 그보다 더.. 더보기
◆ ELW 투자지표 이론가 및 민감도지표(Greeks) 주식워런트증권의 이론가치와 민감도지표는 옵션(이항모형)과 동일한 방식으로 구할 수 있음. 옵션이론가는 상장시 매매거래의 기준가격이 되며,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 워런트가격 결정 요인과 민감도 패리티(Parity Ratio) 주식워런트증권의 내재가치를 알 수 있는 투자지표로서, 권리를 만기일이 아닌 현재시점에서 행사할 경우, 투자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 또는 손식을 나타냄 패리티가 100보다 크면 내재가치가 있으며, 100보다 작으면 내재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함. 구체적으로 행사가격 대비 몇 %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를 나타냄 프리미엄(Premium) 프리미엄은 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잔존기간중의 기대가치로서, 주식워런트가격이 내재가치를 상회하는 정도를.. 더보기
◆ 혼마비전(本問秘傳) -베푸는 것은 유리한 것이다.- ● 농사와 투자는 뿌리가 같다. 노력하는 건 사람이나 자라는 건 하늘의 은혜다. 마음을 비우고 하늘에 의탁하는 사람은 풍요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것이다. 손익보다 항상 마음이 먼저다. - 거래는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나쁘면 이후 반드시 어긋나게 된다. 거래를 서둘러 진행하지 말 것이며, 서두르면 시작이 나쁜 것과 마찬가지이다. 매수 매도 공히 오늘만큼 좋은 시장은 없다고 생각될 때 삼 일을 기다려라. 이것이 방책이다. 쌀의 유통을 생각하고, 가격의 천장과 바닥의 정도를 생각하여 매매할 것이다. 이것이 삼위의 방책이다. 천장 가격과 바닥가격을 산출할 수 없는 동안은 몇 달이고 유보하고, 예상이 실현될 때를 생각하여 매매해야 한다. 거래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은 천정 가격과.. 더보기
◆ 거목 당고개 역에서 노원역으로 내려오다 보면 노원역 오른쪽으로 거목이란 식당이 있었다. 노원역과 맞닿아있는 건물의 2층이었다. 허허벌판에 대단지 아파트가 막 조성되던 90년대 초였다. 유난히 부지런을 떨었던 나는 다른 이들이 6~7시면 끝내는 장사를 자정이 가깝게 극성을 떨며 돌아다녔다. 30대 후반의 나이였던 난 30대에 이루어야 할 목표를 나름대로 정하고 있었던 거다. 아파트 건축현장마다 '함바'라고 불리는 식당이 있었다. 지금처럼 시스템이 정비되어있지 않던 관계로 떼어 먹히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그곳에서 소비하는 물량은 대단했다. (지금은 식당 운영하는 자가 지급을 못 하면 하청 또는 원청업자로부터 회수할 수 있다.) 당시에 나는 거래처를 학점 멕이듯 A+/A 등으로 외상매출금 잔고와 경영자의 마인드 .. 더보기
◆ 국민은행 02 세월이 흘렀다. 악연은 잊어버리고 순전하게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국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 았다. 은행은 제일/동화/신한 등 몇 군데를 거래했었다, 인터넷뱅킹이 활성화되기 전엔 은행별로 프로그램을 따로 깔아야 했고 사용법도 불편했으며 심지어 은 행직원들도 담당이 아니면 모를 정도였고 어떤 은행은 국내 굴지의 제과업체 외에 한두 곳만 펌뱅킹을 쓰고 있을 정도였다. 당연하게 개인으론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밥 먹고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나 보다. 펌뱅킹(인터넷뱅킹의 전신)을 작든 크든 거래하는 은행마다 설치하느라 시간을 할애했었으니. 1991년 가계당좌 개설을 하는 중에 재산세납부실적, 은행카드소지여부, 결혼유무 등을 점수화하여 자 격을 정했다. 자기 은행에 얼만큼의 이익을 주느냐가 중요할 터였다. 필요.. 더보기
◆ 맨발에서 정장까지 중랑경찰서를 깃점으로 박외과 쪽으로 한성양복점이 있었다. 지금도 물론 있다. 지금은, 성격이 좀 바뀌었다. 세탁체인점을 병행해서 한다. 90년대 초에 월플 등의 무인세탁소가 대학가 주변부터 하나 둘 생겨나더니 핵가족화와 급격한 가정붕괴 등으로 나 홀로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세탁소와 옷 수선 등의 영역을 합친 세탁체인점이 번성하고 있다. 심지어 운동화 세탁도 신발 빨래방이란 이름으로 대행해주는 업체도 생겼다. 레디메이드가 판을 치는 세상 변화의 물결에 양복점도 하나둘씩 도태되고 생존을 위해 세탁체인점을 병행하는 곳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명동 근처에서 기업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제법 큰 양복점을 운영하던 친구가 있었다. 잘 나가던 친구가 사업을 접은 게 2000년대 초입이었다. 시대의 트랜드는 .. 더보기
◆ 정장에서 맨발까지 여러 곳에서 밝혔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한 것이 1985년 겨울이었다. 22년 동안 겪었던 인간군상에 대한 이야기 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아마, 그건 어느 분야나 대동소이하겠지만 조금 다른 것은 식당업을 하는 이들이 다른 어 떤 직군에 있는 사람들보다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또한 천양지차(天壤之差)이고 운니지차(雲泥之差)며 각양각색(各樣各色)이라 애환도 남다를 수밖에. 그러나 그 애환마저도 즐기고 산 것이 매조지다. 조지는 데엔 일가견이 있다. 어디 한 번 조진 이야 기 좀 풀어 보자. 조선시대 2,000만 남짓했다는 인구 중에 양반이 몇 %였는지는 잊어버려 잘 모르겠다. (무릇 어떤 글을 쓰려면 자료조사 도 해야 하고 그 시대의 정치/문화/사회/경제 .. 더보기